조선의 22대 왕 정조임금(正祖, 재위: 1776~1800). 이산(李祘)은 오랫동안 개혁군주의 표상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국운이 기을어가는 조선왕조에서 개혁군주를 찾을 수 없었던 국사학계는 영·정조(英·正祖) 시대를 ‘조선의 르세상스’로 규정했다.

국사학계는 특히 정조임금은 문예부흥(文藝復興)과 각종 개혁정치의 업적을 들어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같은 반열에 올렸다. 정조에 대한 ‘우상화(偶像化)’는 좌우를 가리지 않았다.

정조를 따르던 소론(少論),영남 사림(士林)의 실패한 개혁을 박정희 대통령의 5·16과 연결시키는 이문열 이인화 같은 소설가도 있었고, 좌파의 정조임금 추앙은 노무현 대통령시절 절정에 달했다.

정조의 우상화에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바로 양반 기득권 세력, 노론 벽파(老論 僻派)의 거두 심환지(沈煥之,1730~1802)였다. 지난 수십년간 영화와 사극, 소설에서 심환지는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정조시대의 각종 개혁정책에 제동을 거는가 하면 정조에 대한 반정 쿠데타에 독살음모까지 꾸민 인물로 묘사되곤 했다.

2009년 경기도 수원지역에 사는 심환지의 후손이 정조임금이 1796년부터 4년동안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3백여통, 이른바 ‘정조어찰’을 공개할 때 까지만 해도 국사학계의 이런 ‘가설’은 공고하기만 했다.

정조어찰이 국사학계에 던진 충격은 엄청났다. 곧은 품성의 개혁군주 정조가 거악(巨惡)의 상징인 심환지에게 밤바다 비밀 편지를 보낸 것 조차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정조는 편지에서 자신을 따르는 소론 개혁파를 향해 ‘호로새끼들’이라고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매번 편지의 마지막에는 “읽은 즉시 편지를 태워 없애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정조어찰은 이전까지 극소수였던 정조임금에 대한 학계의 재평가 작업에 기름을 부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 ‘윤핵관의 핵심’,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 의해 공개된 대통령의 휴대전화 메시지는 국정운영을 꼬이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다. 이준석 대표를 지지하는 젊은층이나 당내 소장파들은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를 읽은 기분일 것이다.

대통령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사람에 대한 감정, 호불호에 적대심이 없을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시절 황교안 야당 대표에 대해 가졌던 감정은 어떤 행사장에서 부인 김정숙씨가 대통령과 함께 참석자들과 악수를 하다가 황교안 대표 차례가 되자 고개를 홱 돌리며 지나간 모습에서 잘 드러난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또한 자신의 최측근들에게 정조나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런 내용이 버젓이 공개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는 윤핵관의 정치수준이 이번 사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휴대폰에 담긴 대통령의 메시지를 읽자마자 지워버린다던지, 혼자 감춰두고 몰래 읽는 것이 아니라 수십개의 망원렌즈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고 또 읽으며 감상하는 수준의 정치인들이 윤핵관들인 것이다.

여름 휴가를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초등학교 조기입학 문제로 여론의 못매를 맞고있는 박순애 교육부장관을 교체하는 정국돌파 카드를 꺼냈다.

자금 윤석열 대통령에게 시급한 것은 윤핵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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