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된 다음날 스피커가 작동하지 않는 벤츠 GLS차량의 차주가 2주 후 서비스센터를 통해 트렁크를 분해한 결과, 내부 부품이 부식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 과정을 밝힌 글이 2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다.

출고된 바로 다음날 결함을 발견했지만, 벤츠코리아 측은 교환·환불 조건으로 ‘취득 과정에서 이미 낸 세금 1500만원은 소비자가 그대로 떠안으라 했다’는 것이다. 신차 내부가 부식된 것은 ‘출고 전 침수’가 원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차주는 아무런 과실이 없는데 1500만원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형 레몬법, 출고 전에 침수된 신차도 ‘교환’이 아니라 ‘수리’ 대상

자동차 교환·환불제도인 한국형 레몬법은  2019년 1월부터  시행됐지만, 제도에 강제성이 없는 탓에 시행 초기부터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일러스트=연합뉴스]
자동차 교환·환불제도인 한국형 레몬법은 2019년 1월부터 시행됐지만, 제도에 강제성이 없는 탓에 시행 초기부터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일러스트=연합뉴스]

벤츠 측은 해당 차량이 한국형 레몬법으로 불리는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에서 정의한 교환 및 환불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자동차 교환·환불제도인 한국형 레몬법은 신차 구매 후 결함 파악 시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의 중재를 거쳐 교환 또는 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신차구매 후 1년 이내(주행거리 2만km 이내)에 중대하자 2회 이상 또는 일반하자 3회 이상으로 수리를 했으나, 하자가 재발한 경우(1회 이상 누적 수리기간이 총 30일을 초과한 경우 포함)가 대상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레몬은 불량 중고차를 의미하는 반면, 복숭아는 우량 중고차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레몬이 보기에는 좋지만 시큼하고 맛없는 과일로 통용되는 데 따른 것이다.

한국형 레몬법에 따르면, 이 벤츠는 교환 환불 대상이 아닌 게 맞다. 자동차 구매 후 결함을 파악했다면 먼저 수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순서이다. 수리를 받고도 하자가 재발한 경우에 한해 교환 또는 환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레몬시장’이라는 어원을 따져보면 한국형 ‘레몬법’은 부실입법이다. 불량 중고차를 의미하는 ‘레몬’의 대표적 사례가 ‘침수된 중고차’이다. 침수된 중고차는 겉보기는 멀쩡하지만 속은 곯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량 중고차를 빗대어 만든 입법인 ‘레몬법’에서 침수된 신차를 제외했다는 것은 심각한 입법 결함이라고 볼 수 있다. 침수된 중고차는 레몬이라고 부르면서, 정작 침수돼 부식된 벤츠 신차는 레몬법 적용 대상이 아닌 상황이다. 아마도 글로벌 메이커들이 제작한 신차가 침수됐을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따라서 레몬법 도입 취지에 맞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벤츠 GLS차주 A씨, “벤츠가 썩은 차 팔았다”...서비스센터 직원들, “콘트롤 박스가 침수된 상태”

지난 24일 벤츠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GLS 차주의 황당한 사연. [사진=블라인드 캡처]
지난 24일 벤츠 온라인 카페에 올라온 GLS 차주의 황당한 사연. [사진=블라인드 캡처]

벤츠 GLS차주 A씨는 24일 벤츠 온라인 카페에 “벤츠에서 썩은 차를 팔았다”는 제목을 글을 올렸다. A씨가 글과 함께 올린 사진에 따르면, 새 차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량 부품이 녹으로 추정되는 흰색 가루로 뒤덮여 있는 상태이다. 벤츠GLS 판매 가격은 1억4000만~1억6000만원이다.

A씨는 콘트롤 박스 고장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탈 뻔했고, 시간이 지나서 발견했더라면 본인이 뒤집어쓸 뻔했다고 썼다. 출고된 다음날 바로 스피커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해 딜러에게 알렸고, 서비스센터 예약은 2주 뒤로 잡혔다. 차량을 점검한 서비스센터 직원들은 “제작 당시 문제로 보인다고 했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서비스센터 직원들은 “콘트롤 박스가 침수된 상태로 오래 부식되어 먹통이고, 배선도 잠겨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센터 직원들은 “차량 어디까지 (물이) 침투했는지 모르니 교환을 권했다”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분통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정상적으로 진행이 됐다고 볼 수 있다. A씨를 더욱 화나게 만든 것은 ‘교환요청 이후 벤츠코리아 측이 보인 태도’였다. 보상문제를 총괄하는 벤츠코리아 이사 B씨는 “제조상 문제를 인정해 조용하고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다”면서도 “차량을 등록하고 주행했으니 취‧등록세와 감가상각비를 더해 1500만원을 A씨가 지불하면 교환‧환불을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A씨는 이에 대해 “소문대로 악랄하다”고 썼다.

벤츠코리아 측의 입장은 “서비스센터에서 해당 고객의 차량 스피커 일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해당 현상이 발생하게 된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차량 출고 전 자체 조사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벤츠 코리아 이사 B씨, “1500만원이 큰 돈도 아니지 않느냐”

“제작 당시 문제로 보인다”는 서비스센터 직원들의 입장과 보상문제를 담당하는 측의 입장이 분명히 다르다는 점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벤츠코리아 측은 "고객분께서 겪으신 불편을 고려하고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차량의 수리를 진행하는 방법 대신, 중재심의위원회에서 정의한 절차 수준 등을 고려한 교환 조건을 고객분께 제안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단, 1500만원은 A씨가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500만원 지불 요구에 대해 A씨가 "이게 무슨 배짱이냐"고 따져 묻자, 이사 B씨는 "차량 감가와 취‧등록세는 구매자가 부담하는 게 당연한 거고, 1500만원이 그리 큰돈도 아니지 않느냐"며 빈정거렸다고 한다. 일부 수입 외제차들이 한국 소비자들을 호구로 취급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적반하장식 태도이다.

벤츠 GLS 차주가  글과 함께 올린 사진. 새 차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량 부품이 녹으로 추정되는 흰색 가루로 뒤덮여 있는 상태이다. [사진=블라인드 캡처]
벤츠 GLS 차주가 글과 함께 올린 사진. 새 차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량 부품이 녹으로 추정되는 흰색 가루로 뒤덮여 있는 상태이다. [사진=블라인드 캡처]

A씨는 "벤츠는 일단 등록하고 주행을 했다면 어떤 문제라도 취‧등록세와 새 차 감가 비용을 구매자에게 부담시키는 것 같다"며 "구매자에게 뽑기를 잘못한 죗값을 물린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레몬법 시행 3년 동안 교환‧환불된 차량은 174건에 불과

A씨 차량 사진을 본 전문가는 차량에 물이 들어간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새 차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사고가 나서 침수된 차인지, 장마철 노상에 차를 세워놨을 때 물이 들어간 건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트렁크 외에 같은 높이의 차 앞부분에도 녹이 있다면 차 전체가 물에 빠졌다는 뜻이고, 다른 곳은 멀쩡하다면 트렁크 사이로 물이 들어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레몬법’을 적용하기 힘든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쨌든 물이 들어간 건 맞으니까 차주로선 황당할 것”이라고 했다.

레몬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나도록 교환‧환불이 이뤄진 것은 174건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4월 17일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이 입법조사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동차 교환환불 중재규정 수락 제작사 현황' 자료에 따른 것이다. 교환·환불 중재를 신청한 건수는 총 1천592건이었고, 이 중 종료된 건수는 1천447건이었다. 현재 중재가 진행 중인 건수는 145건이었다. 1천447건 중에서 12%에 불과한 174건에 대해서만  중재가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벤츠 GLS차주의 사례처럼, 황당한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요구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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