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파업이 22일로 51일째를 맞았다. 21일 밤 늦게까지 막판 노사협상이 진행됐지만, 손해배상 소송과 고용승계 문제가 걸림돌이 돼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은 하청지회의 장기 파업으로 하루 평균 130억원 상당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오는 23일부터 대우조선해양의 2주간 하계휴가가 예정돼 있는 가운데, 그 이전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상당한 추가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정문 인근에서 열린 금속노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참석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일 오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정문 인근에서 열린 금속노조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참석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우조선 하청노조, 임금 30%인상 및 노조 전임자 인정 등 요구하며 6월부터 점거 파업

대우조선 사내 협력사 22곳의 노동자 400여 명으로 구성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노조)는 올해 1월부터 임금 30% 인상과 노조 전임자 인정, 상여금 300% 인상, 집단교섭 등을 요구했다. 조선업 불황 당시 원청 직원의 임금이 3% 깎일 때, 하청 직원들은 30%를 삭감하며 위기 극복에 동참해온 만큼, 임금이 정상화돼야 한다는 것이 하청노조의 주장이다.

그러나 대우조선은 ‘원청이 하청의 근로조건에 개입하는 건 노동조합법상 불법이라는 이유에서’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하청노조는 지난달 2일부터 경남 거제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의 5개 도크 중 가장 큰 제1도크를 점거해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진수 작업을 막고 있다. 유최안 부지회장은 1㎥ 철제 구조물에 들어간 뒤 출입구를 용접, 스스로를 가둔 채 투쟁을 벌이고 있다.

장기 파업으로 인한 손실액은 벌써 6000억원 넘겨...10여개 협력업체 ‘눈물의 폐업’

하청노조의 장기 파업 여파로 대우조선의 피해는 막대하다. 최근까지 추정 누계손실액은 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우조선 일부 직원들은 휴업을 하고 있으며, 대우조선이 입은 피해는 하청업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10여개 협력업체가 폐업한 상태이다.

이번 사태로 위기를 맞은 대우조선과 협력사들은 하청노조의 실력 행사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이달 초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하청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해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우조선 협력사 대표들은 지난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눈물의 삭발식을 단행했다. 대우조선 사내협력사를 운영하다 폐업절차를 밟게 된 진민용 ㈜삼주 대표는 “하청노조의 불법파업으로 남은 것은 많은 부채와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뿐”이라며 “나머지 협력사 대표들에게는 이런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진민용 대표에 따르면 ‘하청노조는 진 대표의 작업장 입구를 봉쇄하고, 현장에 투입된 작업자들에게 협박 전화를 돌렸다’고 한다. 이 같은 불법파업으로 작업 진행이 어려워지자, 진 대표는 폐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 대표는 “대한민국 조선사업이 금속노조에 흔들려선 안된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말한 ‘공정과 상식’은 민주노총과 같은 힘 있는 권력 집단에선 제외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협의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해결을 촉구하는 삭발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협의회가 지난 1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 파업 해결을 촉구하는 삭발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노총 금속노조는 하청노조 지원 위해 총파업 협박...대우조선 생산직 노조는 21~22일 금속 노조 탈퇴 여부 찬반 투표

하청노조의 불법파업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대우조선 생산직 노조가 21일~22일 양일간 금속노조 탈퇴 여부를 정하는 투표’를 한다는 점이다. 하청노조의 도크 점거로 회사 앞날이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느낀 대우조선 생산직 노조원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노노(勞勞)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 사태를 단순히 ‘노노갈등’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금속노조가 사실상 하청노조 편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임금투쟁이 아니라 ‘사실상의 정치투쟁’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 21일 서울과 거제에서 총 1만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열며 하청노조를 지원하고 나섰다. 금속노조는 거제 집회에 5000여명의 조합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금속산업 노동자의 고용보장 등을 위한 노정 교섭에 윤석열 정부가 응하지 않고 있다”며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이날 서울에서도 4800여 명이 참여한 집회를 열고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파업은 한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이라며 총파업에 나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의도는?...“윤석열 정부 흔들려는 정치투쟁” 분석이 유력

하청노조의 파업에 민노총 금속노조 본부가 직접 진두지휘를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임금투쟁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를 흔들겠다’는 취지의 정치투쟁으로 풀이된다.

민노총 전국금속노조 총파업에 맞서 생산직 노조 역시 지난 20일 ‘맞불 집회’를 열고 파업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오후 3시부터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안에 있는 민주광장에는 회색 현장 작업복을 입은 직원 3000여 명이 맞불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3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에 우산을 쓰고 타월을 두른 이들은 ‘도를 넘은 불법 파업! 지금 즉시 중단하라!’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었다. ‘대우 식구 10만명이 피눈물 흘린다’ 등 손팻말을 든 3000명이 “막가파식 불법 행위, 공권력이 엄정 대응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금속노조 조합원 일부가 이들을 향해 “어용 조직 아니냐”고 소리치자, 대우조선과 협력사 직원들이 이에 맞서 “꺼져라”를 반복해서 외쳤다. 양측 참가자들은 대우조선 서문 앞에 세워진 선박용 스프링클러 장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욕설을 하면서 소리를 질러 긴장감을 높였다.

대우조선 생산직 노조는 ‘정치투쟁’보다 ‘생존권’에 더 관심 커

이처럼 금속노조가 하청노조를 지원하면서, 현재 금속노조 소속인 대우조선 생산직 노조가 금속노조를 탈퇴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생산직 노조는 민노총의 정치투쟁보다 ‘생존권’을 수호하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21일 오전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조직 형태 변경 찬반투표(금속노조 탈퇴 여부)'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1일 오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조직 형태 변경 찬반투표(금속노조 탈퇴 여부)'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노조에는 대우조선 직원 8600명 중 4700명의 생산직 근로자가 가입해 있는데, 21일부터 이틀간 이 사안을 두고 투표가 진행된다. 21일 오전 6시부터 시작된 투표는 반나절 만에 약 70%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재적 인원 과반이 투표하고, 이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대우조선지회는 금속노조를 탈퇴하게 된다.

대우조선지회 인원은 금속노조 경남지부 전체 조합원 중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 생산직 김모(51)씨는 “우리도 같은 노동자인데 금속노조는 대우조선을 투쟁 사업장으로 몰아가고, 정치화하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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