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시설에 520억달러(약 69조원)를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반도체지원법’을 7월 중 처리할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다.

이 법안이 발표되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달러(약 22조5000억원) 규모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공장을 건설하기로 한 삼성전자도 미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텍사스주와 테일러시 당국의 세제 혜택, 보조금 지원 등과는 별건이다.

삼성전자의 미국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건설 부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삼성전자의 미국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 건설 부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69조원 규모의 반도체지원법, 삼성전자 등 미국 내 반도체 생산기업에게 보조금과 세금공제 지원

이 법안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는 미국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대해 보조금, 세금 공제, 기타 재정적 인센티브 등을 제공하게 된다. ‘중국 견제’와 ‘미국 내 반도체 산업 육성’이 목적이다.

미 상하원은 각각 관련 법안을 마련해 병합심사를 해왔으나, 세부적인 이견으로 인해 최종안을 도출하지 못했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상원은 지난해 6월 '미국혁신경쟁법안(USICA)'을,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올해 2월에 '미국경쟁법안(ACA)'을 각각 처리했다.

이 중 ACA가 대중국 견제면에서 더 강도 높은 정책 등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반덤핑 규정 강화, 최대 면세한도 제한 조항 등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이런 조항들을 관철하려 했으나 공화당이 반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7월 중 반도체지원법 통과 가능성 강력 시사

이와 관련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반도체지원법은 내용이 축소돼, 이르면 19일 첫 표결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보도한 바 있다. USICA와 ACA 중 보조금 지급 및 세금공제 등을 포함해 520억 달러(69조원)를 지원하는 ‘반도체지원법’만 따로 떼어내서 입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게 척 슈머 원내대표의 발언에 담긴 의미이다.

척 슈머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미국의회가 이번에 ‘반도체지원법’을 처리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 배경은 3가지이다.

① 11월 중간선거 감안하면 7월이 물리적 데드라인, 공화당 지도부도 긍정적 반응

우선 물리적 데드라인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8월이면 휴회에 들어간다. 여름 휴가가 끝나면 11월 중간선거 선거전에 들어가게 된다. 양당은 경쟁적 정치행보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협상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반도체지원법만 따로 떼내서 처리하자는 민주당 제안에 대해 공화당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CNN방송은 공화당 지도부도 특히 축소된 법안 처리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법안 처리 가능성이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다만 반도체지원법 중 일부 내용 조정 여부가 관건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공화당 지도부는 보조금 등 예산지원 방안에는 찬성하지만, 투자에 대한 세금 공제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공화당(좌)ㆍ민주당(우) 상징물(PG). [일러스트=연합뉴스]
미 공화당(좌)ㆍ민주당(우) 상징물(PG). [일러스트=연합뉴스]

② 미 의회가 국가적 의무 저버리면 독일에 투자하겠다는 인텔 CEO의 ‘협박’

미 의회와 행정부를 겨냥한 ‘인텔의 협박’도 반도체지원법 통과를 압박하는 변수로 꼽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서 인텔을 반도체 제조업에 끌어들였다. 인텔은 시스템반도체의 글로벌 최강자이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브레인’이다. 전세계의 반도체 생산기업들은 인텔이 설계한 프레임에 맞춰서 메모리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한다.

그런데 미 제조업 부흥을 정책 비전으로 내세운 바이든은 4차산업 혁명시대 최대 제조업은 반도체 생산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중국, 한국, 대만 등이 주도해온 반도체 제조업을 미국 내에 유치함으로써 새로운 중심축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기업인 인텔에게 막대한 보조금 지급과 세제지원을 약속했다는 후문이다. 따라서 인텔은 미국 오하이오주에 200억 달러(약 25조900억원)를 들여 파운드리(위탁생산)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미 의회의 반도체지원법 통과가 지리멸렬해지면서, 당초 바이든이 약속한 각종 지원지원의 이행이 불투명해졌다. 인텔은 최근 오하이오주 파운드리 공장 착공식을 연기했다. 대신에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68억 유로(약 9조2400억원) 규모의 보조금 지급이 확정된 독일 마그데부르크 공장 건설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인텔은 오하이오주 반도체 공장에 향후 10년 동안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단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보조금 지금 규모와 투자계획은 연동돼 있다는 입장이다.

반도체지원법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오하이오주 공장에 대한 투자 계획을 독일 마그데부르크 공장쪽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는 ‘협박’의 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팻 겔싱어 CEO는 최근 SNS에서 “반도체지원법은 국가적 의무이기 때문에 의회는 초당적인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의회가 반도체지원법을 무산시킬 경우 국가적 의무를 소홀히 한 집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겔싱어의 논리대로라면, 사실 반도체지원법을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중국 견제를 의회가 발로 걷어찬 셈이 된다.

미 반도체기업 인텔 로고. [사진=연합뉴스]
미 반도체기업 인텔 로고. [사진=연합뉴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공략해야 하는 민주당과 공화당으로서는 이같은 책임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게 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③ 11월 중간선거에 몰린 바이든 행정부 ‘이상’보다 ‘현실’을 선택

세 번째 변수는 바이든 행정부의 변화이다. 당초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지원법만 떼내서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나, 최근 그 입장에 변화가 생겼다는 관측이다.

USICA와 ACA 중 민주당과 공화당이 합의할 수 있는 부분만이라도 입법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정리됐다는 이야기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지난 14일 일부 하원의원들과 비공개 회동을 갖고, 이 같은 방안에 대해 깊이있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러몬도 장관은 비공개 회동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부 반도체지원법안만 먼저 처리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우리는 가능한 포괄적인 법안을 원하지만 하원과 상원 의원들이 가능하다고 느끼는 것이라면, 그것이라도 해야 한다”면서 “미국 반도체 산업을 부흥시키고 대중국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의회가 다음주에는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미국을 반도체 제조대국으로 건설한다는 비전을 작동시키기 위해 ‘이상(USICA와 ACA)’보다는 ‘현실(반도체지원법)’을 선택했다는 해석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