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에스퍼 전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장관은 11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권이 사드 미군 기지에 임무 수행에 필요한 시설과 자원이 제공되지 않도록 방치한 것은 ‘동맹이 동맹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었다고 꼬집했다. 또한 그는 미국과 안보, 중국과 경제협력을 추구하는 문 정권의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 비판하며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들과 단결해 중국의 강압에 맞서고 ‘쿼드’ 가입을 밀어붙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주한미군에 5세대 F-35스텔스기를 배치해야 한다며 이는 북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중국에 대해서도 강력한 억지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인 2019년 7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국방장관을 역임한 그는 최근 ‘성스러운 맹세(A Sacred Oath)’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판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여러 번 압박했다고 밝혔다. 그는 VOA에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은 단호했고 끊임없이 이를 언급했다”며 “한국뿐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일본에서도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꽤 자주 이 문제를 언급했고 저와 몇몇 각료들(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 등)이 이를 만류했다”며 “우리는 미군 철수를 미연에 방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됐다면 계속 미군 철수를 추진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20년 6월 1일 이후 트럼프 정부 임기 마지막에 지킬 ‘네 개의 노(4 Nos)’ 즉 불필요한 전쟁은 하지 않고, 전략적인 후퇴를 하지 않으며, 국방부를 정치화하지 않고, 군을 오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했다”며 “한국, 일본, 나토 등에서 미군을 철수하는 것은 ‘전략적 후퇴(strategic retreat)’라고 판단했고 이를 막기 위해 트럼프 정부 말기에 매우 유의했다”고 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사드 포대에 배치된 미군의 생활 여건이 너무 열악해 한국정부에 거듭 문제를 제기했지만, 문 정부가 조치를 3년이나 미룬 것은 ‘동맹이 동맹을 대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VOA에 “2018년 사드 기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한국 측이 곧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지만 미군 병사들은 기지에 갇혀 있었다”며 “그들에 임무 수행에 필요한 시설과 자원을 제공하기 힘들었고, 2~3년 뒤에도 같은 상황이었다”고 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미국에 한국 병사들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렇게 대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미군 병사들도 그렇게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동맹으로서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대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상황은 한국 국내 정치뿐 아니라 지정학적 요인도 있었다”며 “중국은 사드 기지에 대해 매우 화가 나 있었다”고 했다.

미국과는 안보, 중국과는 경제 협력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 ‘균형 외교’에 대해 그는 “한국은 중국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고, 중국이 가장 큰 교역국인 현실을 인식하지만 중국은 미국에도 가장 큰 교역국”이라며 “결국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악화시키고 이웃 국가들을 강압하려는 공산주의 국가를 상대해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타협을 하려 한다면 옳은 가치를 지켜낼 수 없다”며 “중국을 경제적 파트너, 미국을 안보 파트너로 정하는 것은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없으며 어떤 시점에 각국은 민주주의 쪽에 더 가까이 기댈 것인가, 중국에 굽실거릴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중국은 한국과 호주 등에 경제적 강압을 행사했지만 그들이 압박할 때마다 굽실거린다고 상황이 더 쉬워지지 않는다”며 “따라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중국의 나쁜 행동에 맞서 용납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정상화에 대해서는 “북한이 한국에 대해 탄도미사일 공격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주한미군 기지들도 겨냥하고 일본도 겨냥할 수 있다”며 “세 나라가 신속하고 빈틈없이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는 능력은 우리의 집단 안보에 매우 중요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세 나라간 유대관계가 강해진다”고 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한국이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에 가입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VOA에 “한국은 훌륭한 역사와 자랑스러운 국민, 매우 강력한 경제, 강력한 민주주의를 가진 기술 선도국이자 큰 교역국”이라며 “쿼드의 다른 회원국들을 보면 한국이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어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역할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며 “지금 쿼드 회원국들이 추가 가입국을 초대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국이 그 문을 강하게 두드리며 가입을 밀어붙여 ‘퀸트’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주한미군의 4세대 전투기를 5세대 F-35스텔스기로 대체하고 싶었지만 한국의 정치적 분위기와 북한의 반응 등을 감안할 때 추진이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VOA에 “우리는 가장 최신의 역량을 가능한 한 가장 전방에 배치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한반도의 경우 그 최신 역량은 F-35 배치가 될 것이며 이는 북한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중국에 대해서도 강력한 억지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대만 해협에서 중국과 타이완 사이에 충돌이 발생해 미국이 개입하는 경우 일본과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하지 않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며 “전쟁수행 지원이 됐든, 무역과 경제 교역 중단이 됐든 대만에 유사시 역내 국가들은 분쟁에 말려들어갈 것이며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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