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짧은 생각
[남정욱 칼럼]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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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나는 윤석열 대통령이 고맙다.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윤통 덕분에 아침 뉴스에 이기적이고 재덕 파탄에 명예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인간이 대통령이랍시고 설치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정신 상태를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딸들을 데리고 다니며 권력은 좀 잔인하게 써야 한다는 평소의 신조를 사방으로 구사하는 끔찍한 꼴을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실은 고마운 게 아니라 생명의 은인이다. 지난 5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혈압이 올랐다. 그런데 또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한 5년을 산다? 생각하기도 싫다. 장담컨대 흡연과 불성실한 식생활로 협소해진 내 혈관은 절대 그 기간을 버틸 수 없다. 대선에서 윤통이 간당간당한 차이로 이겼을 때 지지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들 10년 감수 했네, 했을 것이다. 윤통을 지지한 사람이 16,394,815명이다. 여기에 10년을 곱하면 지지자들은 다 합쳐 1억 6천 3백 9십여만 시간의 수명을 윤통에게 빚진 것이다. 많이 고마워해도 하나도 안 이상하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윤통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사람들이 있다. 청년은 라면 먹는데 윤통은 극장에서 팝콘 먹는다고 난리치는 분이 있다. 여전히 현실 인식이 80년대라 그런 소리 한다. 라면 먹는 청년도 극장 가면 팝콘 먹는다. 뭐 그런 걸로는 비난하고 싶지 않다. 물려받은 머리가 나쁜 걸 탓하면 안 된다. 이런 무작정 시비 말고 윤통을 지지한 사람들이 윤통을 비난하는 것을 보면 좀 안타깝다. 우리는 윤통이 경제를 잘 할 것이라고 믿어 지지한 게 아니다. 환경 문제에 기민하게 대처하고 외교도 기막히게 풀어갈 것이라 기대해 지지한 게 아니다. 우리는 이제껏 윤통이 잘했고 앞으로도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보고 지지했다. 그게 사방에서 물이 새고 만신창이가 된 대한민국을 정상화할 수 있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고치고 되돌려놔야 미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윤통은 실력발휘를 안 했다. 15라운드 경기 하러 링에 올라간 복서가 1라운드부터 악착같이 굴면 그건 프로가 아니다. 1라운드 공 울리자마자 상대를 눕히겠다고 사생결단 달려드는 건 아마추어나 하는 짓이다. 그보다는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복싱만 그런가. 잘 뛰는 마라토너는 정해진 구간을 정해놓은 속도로 주파한다. 오죽하면 필요 이상으로 신나게 뛰지 말라고 페이스메이커라는 타이머 선수까지 곁에 붙여 놓겠는가. 계획이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 계획을 신뢰해야 한다. 비판하고 시비 걸 시간에 할 일이 있다. 그 시간에 각자의 분야에서 5년 동안 얻을 수 있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실력과 체력을 기르고 5년 뒤를 도모하기 위해 뭐라도 하는 것이다. 교육에서, 문화에서, 일상의 안보에서 할 일은 많다. 그건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할 일이다. 그러니 이것도 해 달라, 저것도 해 달라 윤통에게 들러붙지 말라. 남이 해주길 바라는 건 노예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품격은 불편함에서 나온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다음 해 청와대 회의실에 춘풍추상春風秋霜족자를 내걸었다. 실상은 반대였다는 비판도 많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나에게는 차갑게, 남에게는 살갑게, 춘풍추상은 인간이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생활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선행관계다. 추상의 결과가 춘풍이다. 자신에게 엄격한 것이 체화된 인간만이 남에게 관대할 수 있다. 엄격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기에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껴 관대한 것이다. 공인이라면 그 범위는 자신을 넘어서 가족까지 확대된다. 가족에게까지 엄격한 사람만이 타인에게 관대할 수 있다. 문통은 엄격했는가. 별로 아닌 것 같다. 생각이 바랐다면 철없는 아내가 장소와 상황을 불문하고 음악만 나오면 몸을 들썩이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외교 결례와 비정상적인 행동에도 따끔하게 주의를 주었을 것이다. 아들의 수상과 상금 타먹기도 오해의 여지가 있으니 자제하라 타일렀을 것이다. 딸의...아, 그만하자 입이 아프다. 며칠 전 김동연 도지사가 문통을 방문했다. 문통은 허름한 옷에 면도도 하지 않은 얼굴 그리고 낡은 신발을 신고 방문자를 맞았다. 일상생활이라면 상관없다. 그러나 김동연은 시간이 남아돌아 그 먼데까지 마실 간 게 아니다. 그것은 정무적인 방문이다. 그렇다면 문통 역시 정무적으로 김동연을 맞았어야 한다. 최소한 수트 정도는 입었어야 전직 대통령의 품격을 지킬 수 있었다는 얘기다. 소탈과 무례를 혼동한 결과요 엄격하지 못한 처신이다. 영화 ‘킹스 맨’의 주인공은 개싸움을 하러 갈 때도 정장을 입는다. 수트는 몸을 움직이는데 최적화된 옷이 절대 아니다. 입는 순간부터 불편한 게 수트다. 편하기로, 실용적이기로 하면 트레이닝복을 입고 갔을 것이다. 그래도 주인공들이 죽어라고 입고 다니는 건 품격을 위해서다. 그게 엄격함이다. 지난 5년이 참 품위 없게 느껴진 것은 그가 엄격하지 못했던 결과라고 나는 믿는다. 자신의 생각에, 주변에, 가족에게 참 지긋지긋하게 친절했던 5년이었고 그게 연장되지 않아 정말 행복하다. 다시 한 번 고맙다. 고맙습니다 윤통.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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