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 '근대화 아버지'兼 '개발독재자' 마하티르
정권교체 위해 20여년 숙적과 극적 화해 단행
과거 총리시절 말레이 GDP 4배 넘게 급성장
"많은 이들 마하티르 '돌아온 구원자'로 여겨"

2018년 5월 10일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승리한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의 총리 후보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제공]
2018년 5월 10일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승리한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의 총리 후보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제공]

말레이시아 야권연합이 9일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해 독립 후 61년 만에 첫 정권교체를 이뤘다.

10일 현지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선거관리위원회는 개표를 완료한 결과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가 하원 222석의 과반인 113석을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전해졌다.

PH와 협력 관계인 보르네오 섬 사바 지역정당 와리산도 8석을 확보했다.

반면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를 주축으로 한 집권여당연합 국민전선(BN)은 기존 131석보다 52석이나 적은 79석을 얻는데 그쳤다.

이에 따라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 한 차례도 정권을 놓지 않았던 BN은 집권 61년 만에 야권으로 전락하게 됐다.

특히 PH의 승리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철권통치했던 마하티르(93) 전 총리가 15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하는 것이 확실시된다.

'근대화를 이끈 국부(國父)'와 '개발독재자'란 엇갈린 평가를 받는 마하티르 전 총리는 한때 나집 총리의 후견인이었으나 나집 총리의 국영투자기업 1MDB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총리 퇴진 운동을 벌이다가 BN에서 축출됐다.

이에 반발한 그는 야당 지도자로 변신했고, 작년 말 PH의 총리 후보로 추대돼 야권의 선거운동을 지휘해 왔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10일 새벽 국왕 측으로부터 야권의 승리를 인정한다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이날 중 총리 취임 선서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복수를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법치의 회복이며, 법을 어긴 자는 법정에 서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2018년 5월 9일 치러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승리한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 지도부가 일제히 환호성을 울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제공]
2018년 5월 9일 치러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 승리한 신야권연합 희망연대(PH) 지도부가 일제히 환호성을 울리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제공]

현지에선 이러한 발언에 대해 나집 총리를 비롯한 1MDB 스캔들 관계자들에 대한 재수사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마하티르는 동성애 혐의로 투옥된 야권의 실질적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가 올해 6월 석방되면 복권을 거쳐 적당한 시점에 총리직을 이양할 것으로 알려졌다.

안와르 전 부총리는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대책을 놓고 마하티르 당시 총리와 갈등을 빚어 실각한 뒤 부패·동성애 사범으로 몰려 잦은 옥고를 치러왔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동성애는 최장 20년의 징역이 선고될 수 있는 중죄다. 두 사람은 이후 20년 가까이 숙적으로 지내왔으나 정권교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근 극적인 화해를 이뤄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가난한 농업 국가였던 말레이시아를 제조업 강국으로 변모시켜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린다. 하지만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철권통치한 독재자라는 평가도 따라붙는다.

1925년 영국 식민 치하의 말레이 반도에서 태어나 의사가 된 그는 1957년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1969년 툰쿠 압둘 라만 당시 총리가 중국계의 경제적 지배에 짓눌린 말레이계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다가 한때 정계에서 축출됐다.

1972년 툰쿠 총리의 사임으로 복귀한 뒤로는 각부 장관과 부총리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결국 1981년 후세인 온 당시 총리가 건강 악화로 사임하자 총리직을 승계했고, 이후 2003년까지 무려 22년간 장기 집권을 이어갔다.

이 기간 그는 경제성장을 먼저 이뤄낸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룩 이스트(Look East)' 정책과, 말레이시아를 2020년까지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겠다는 '와와산 2020' 등을 주창하며 강력한 국가주도 경제발전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는 1990년대 들어 신흥공업국 대열에 올라섰고, 국내총생산(GDP)은 1981년 250억 달러(약 27조원)에서 2003년 1천100억 달러(약 120조원)로 급격히 증가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때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일축하고 고정환율제 채택, 외국자본 유출 금지 등 독자적 조치로 경제를 회복시킨 것도 높이 평가된다.

하지만 그는 이 과정에서 언론을 통제하고 사법부를 정부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등 독재를 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반미주의적 태도로 서방과 줄곧 마찰을 일으킨 것과, '부미푸트라'로 불리는 말레이계 우대 정책을 고수해 중국계와 인도계를 차별한 것도 실책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말레이시아 국민 사이에선 그의 총리 복귀에 대한 기대가 상당히 큰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라자나트남 국제연구소의 라샤드 알리 연구원은 "많은 이들이 마하티르를 말레이시아를 구하기 위해 과거에서 돌아온 구원자적 인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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