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호칭을 놓고 보수성향의 시민단체와 친민주당 성향의 방송인 김어준씨 사이에 공방이 오가는 상황이다. 김씨가 김 여사에 대해 ‘김건희씨’라고 표현한 것과 관련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법세련)가 “김 여사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면서다.

지난 3일 법세련은 방송인 김어준씨가 김건희 여사에 대해 '김건희씨'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시정 권고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일 법세련은 방송인 김어준씨가 김건희 여사에 대해 '김건희씨'라고 표현한 것을 두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시정 권고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진=연합뉴스]

법세련은 지난 3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대해 ‘시정 권고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인권위에 제출’했다. 김씨가 지난달 30일 해당 방송에서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씨가 용산 청사에서 반려견과 함께 보낸 사실이 주말 언론을 장식했다”며 “김건희씨가 대통령 집무실에 앉아 있는 사진이 팬클럽을 통해 공개됐다”고 발언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김씨는 통상 영부인의 이름 뒤에 붙는 ‘여사’라는 호칭 대신 일반인에게 붙이는 ‘씨’라는 표현을 쓰며 “대통령 동선이나 집무실을 개인이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듯 하고 ‘좋아요. ’대상으로 하는 건 김건희씨 개인 활동”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법세련은 “방송 공정성과 정치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영방송 TBS 진행자가 자신의 정치성향에 따라 현직 대통령 배우자 호칭을 ‘여사’가 아닌 ‘씨’라고 하는 것은 인격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법세련, “김어준, 김정숙은 ‘여사’ 김건희는 ‘씨’”...비하하고 무시하려는 의도라 주장

법세련의 주장에 따르면, 김어준씨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정숙 여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배우자인 권양숙 여사에 대해서는 꼬박꼬박 ‘여사’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반면 현직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만 ‘김건희씨’라고 부른다는 것이 법세련의 지적이다. 즉, 편향된 정치성향에 따라 김건희 여사를 비하하고 무시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세련의 주장이다.

법세련의 이런 주장에 대해 김씨는 6일 해당 방송을 통해 “당사자가 여사로 불리고 싶어하는 게 맞느냐”는 취지로 반박했다. 그러면서 법세련의 주장을 두고 “이상한 일”이라며, 자신이 김 여사를 ‘김건희씨’라고 부른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 김건희 여사는 지난 3월 취임 직후, ‘영부인이 아니라 대통령 배우자라는 표현이 좋다’며 자신이 어떻게 불리고 싶은지 밝혔다는 것이다. 배우자라는 표현이 더 좋다는 김건희 여사의 말은, “특별한 호칭을 원하는 않는다는 의미”라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김씨는 ‘배우자’라는 표현에 대해선 “배우자(라는 단어)는 부부로서 서로에게 짝이라는, 호칭이라기보다는 관계를 드러내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배우자라는 말보다는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호칭인 ‘부인’,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서 높이는 말 ‘씨’, 이 둘을 병렬해서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특별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여전히 높임말인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어떤 부분이 인격권 침해인가”라고 했다. 자신이 ‘김건희씨’라고 부른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6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 어떤 부분이 인격권 침해냐?"고 주장했다. [사진=TBS 유튜브 캡처]
방송인 김어준씨는 6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 어떤 부분이 인격권 침해냐?"고 주장했다. [사진=TBS 유튜브 캡처]

김어준, “‘씨’는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서 높이는 말”이라고 주장

연이어 김씨는 “법세련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 부인 뜻을 잘못 이해한 것 아닌가”라며 “당사자가 여사로 불리고 싶어하는 게 맞느냐. 잘 알아보시고 알려달라. 원하는대로 불러드리겠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국어는 인권위원회가 아니라 국립국어원에 문의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자신이 사용한 ‘씨’라는 단어가 ‘높이는 말’이라고 주장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의존명사 ‘씨’는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로 쓰이지만, “공식적·사무적인 자리나 다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에서가 아닌 한 윗사람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로,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쓴다”고 풀이되어 있다.

실제로 ‘씨’라는 의존명사는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쓰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비슷한 위치에 있거나,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대접하는 차원에서 이름 뒤에 ‘씨’를 관용적으로 붙여 쓰는 것이다. 직장에서 자신보다 직책이 높은 사람에게 OOO씨라고 부르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준국어대사전, “‘씨’는 윗사람에 쓰기 어려운 말, 대체로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써”

따라서 김어준씨는 ‘씨’가 높이는 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발언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지만 ‘궤변’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호칭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7년 5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취임 직후에도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일부 언론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배우자는 김윤옥 여사라고 부른 대신, 문 전 대통령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김정숙씨라는 호칭을 사용해 논란이 제기됐다. 이들 언론사는 논란 이후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호칭을 기존 ‘씨’에서 ‘여사’로 바꾸어 사용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잠잠해졌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배우자에 대해서는 ‘영부인’과 ‘여사’라는 호칭이 주로 사용돼 왔다. 영부인은 사전적인 의미로 타인의 아내를 존칭하는 뜻을 내포하는 단어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The first lady’와 동일한 개념으로 ‘한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부인’을 부를 때 주로 쓰였다. 따라서 김건희 여사가 영부인이라는 단어를 어색해 한다면, ‘김건희 여사’라는 호칭이 무난하다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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