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이 난항을 겪으면서 ‘총리 없는 새 정부’ 출범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후 김부겸 총리의 협조를 얻어 추경호 경제부총리를 임명한 뒤, 추 부총리 후보자가 총리직을 대행하는 체제가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증인 답변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증인 답변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정부 출범을 불과 이틀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한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총리 후보자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150명)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하는 만큼, 168석 민주당의 동의가 결정적이다.

더불어민주당, ‘복심’ 한동훈 후보자 등의 사퇴와 한덕수 총리 인준을 연계시켜

더불어민주당은 한 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낙마와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자진 사퇴한 김인철 교육부 후보자 외에, 한동훈 후보자를 포함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 및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까지 겨누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한덕수 총리 후보자의 흠결이 많이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 민주당이 용납할 수 없는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윤석열정부가 강행한다면 한덕수 후보자의 인준 표결에도 당연히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덕수 후보자의 인준에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거취를 연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윤 당선인이 자신의 복심으로 불리는 한동훈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동훈 후보자 본인이 사퇴할 가능성 역시 거의 없다. 따라서 윤 당선인은 민주당이 장관 임명을 막을 경우 문재인 정부의 장관을 일단 유임시키고 차관 체제로 끌고 나가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장관 임명까지 차관이 당분간 역할을 대신하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총리를 제외한 국무위원은 총리의 제청만 있으면 국회의 인준 없이도 임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윤 당선인의 ‘차관 체제 발언’은 민주당에 정국 주도권을 내주면 향후 정국 운영에서 번번이 어려움을 겪을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월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2차 내각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월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2차 내각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종필, 고건, 한승수, 김용준, 이낙연 등 역대 새 정부 총리 후보자들 한결 같이 수난 겪어

야당의 정략적인 발목잡기에서 비롯되는 ‘새 정부 총리 인준 난항’은 1998년 김대중정부에서 처음 시작됐다. 당시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정부 협약에 따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가 야당인 한나라당 반대로 정부 출범 후 6개월 동안 ‘서리’ 꼬리표를 달고 일했다. 당시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 대상은 아니었으나, 인준은 거쳐야 했다.

노무현정부 때도 초대 총리 수난이 이어졌다. 초대 총리로 고건 총리가 지명돼 인사청문회를 마쳤지만, 한나라당이 DJ정부 때 이뤄진 대북송금특검법안 처리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대통령 취임 다음 날에 특검법안 처리와 총리 인준이 동시에 이뤄졌다.

2008년 이명박(MB)정부 초대 한승수 총리 임명동의안은 정부 출범 나흘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새정부가 대선에서 공약한 통일부·여성부 폐지를 철회한 이후였다.

박근혜정부 때는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초대 총리로 지명됐지만, 두 아들의 병역 문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지명 닷새 만에 자진 사퇴했다. 이후 정홍원 총리는 박근혜정부 출범 두 달 뒤 총리로 업무를 시작했다.

문재인정부 이낙연 초대 총리는 위장전입 의혹 등을 이유로 야당이 반대하면서 정부 출범 21일 뒤에 인준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여야의 대치로 인한 총리 공백은 심각한 국정 차질로 이어진다. 총리가 장관 제청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017년 5월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가 2017년 5월 2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부겸 총리의 추경호 부총리 제청- 추 부총리의 장관 후보자들 제청’ 수순 밟을 듯

국무위원 제청권을 갖는 총리 인준이 늦어지면, 윤석열정부의 첫 내각 출범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첫 국무회의가 정족수 미달로 파행하거나 이전 정부 각료들과 회의를 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윤 당선인의 취임 직후, 김부겸 총리가 추 부총리 후보자를 제청하면, 추 후보자가 총리직을 대행하면서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들을 제청하는 방안이 고려되는 것이다.

김 총리 역시 지난 3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에도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가 사표를 내고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총리 대행을 했다. 새 정부 출범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겠다”며 초기 내각 구성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새 정부 발목잡기’를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김형동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의 한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 어깃장은 윤석열 정부의 발목잡기를 넘어 출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새정부 출범을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또다른 폭거”라고 비판했다.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도 기자들에게 “한 총리 후보자는 산업, 통상, 외교까지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분”이라며 “국민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새 정부가 이제 출범하는데 민주당에서 잘 출범할 수 있게 협조했으면 좋겠다”며 '윤석열 정권의 총리는 한 후보자 밖에 없다'는 윤 당선인의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