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당 지도부를 대신해 출범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첫 출발부터 삐그덕거리고 있다.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임명된 박지현씨의 행보에 대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지현(26세)씨는 N번방 추적단 '불꽃' 활동가로 당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정치에 입문한 지 50일 남짓한 정치 신인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2030 남성에게 어필했다면, 박위원장은 2030 여성에게 어필한 것이다.

26세 나이로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 된 박지현은 이재명 라인

윤호중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13일 비대위 인선 발표에서 ‘청년, 여성, 민생, 통합의 원칙’으로 비대위 구성을 마무리지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에 대해 "박 공동위원장은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불법과 불의에 저항하고 싸워왔다. 청년을 대표하는 결단과 행동이야말로 지금 민주당에 더없이 필요한 가치라고 할 수 있다"라며 "박 공동위원장은 앞으로 성범죄 대책 및 여성 정책은 물론 사회적 약자인 청년의 편에서 정책 전반을 이끌어 줄 것이다. 기대가 참 크다"고 덧붙였다.

윤 위원장은 박 위원장의 발탁 배경에 대한 내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박 공동위원장은 비대위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고, 파격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 저희에게 따가운 질책을 해준 2030 청년께서 마지막에 과감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고 우리 (이재명) 후보를 지지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보면 될 것 같다"며 "앞으로 2030세대가 가까이 할 수 있는 정당으로 쇄신하겠다는 방향성을 예고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패배에 직면한 민주당이 ‘정치에 입문한 지 50일 남짓한 26살의 여성을 공동비대위원장으로 선임한 것’이 돌파구가 되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더욱이 이재명 상임고문이 대선 패배 이후 박 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하다. 죄송하다.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 위원장의 선임에 이 상임고문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박지현 전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월 이재명 대선후보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된 박지현 전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월 이재명 대선후보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대담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 위원장, 안희정 부친상에 조화 보낸 문 대통령 맹비난

게다가 N번방 추적단 ‘불꽃’의 활동가인 박 위원장이 성범죄 소굴인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여성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는 사실 자체를 두고도 비판이 이어졌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피해자에 대해 ‘피해호소인’이라 부른 민주당과 N번방 추적단이 처음부터 성격이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 위원장을 발탁함으로써 여성 인권을 대단히 중시하는 당처럼 분칠을 하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오로지 표만 의식한 정치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박 위원장의 SNS 글을 두고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박 위원장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부친상에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해 민주당 인사들이 근조화환을 보낸 것에 대해 지난 12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비판했다. “민주당이 내로남불 소리를 듣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라며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배려하지 못하는 바로 이런 행동 때문”이라고 적은 것이다. 정치 신인이 대통령을 직격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 [사진=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 [사진=연합뉴스]

박 위원장은 “‘부모의 상에는 원수도 간다’라는 의식은 알겠다. 하지만 본인의 위치와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며 “행동 하나하나에 책임이 따른다는 게 정치인이라는 것, 정치권 안에 들어온 지 50일도 안 된 저도 알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위원장은 “피해자가 실제로 느끼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고자 노력했으면 이럴 수는 없다”면서 “특히나 가해자의 출소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 인사들의 조화 세례는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더 견고하게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안희정 모친상에 조기(弔旗) 보낸 이재명은?” 질문에는 함구

국민의힘 선대본부 청년보좌역을 지냈던 곽승용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박 위원장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곽씨는 “몇 년 전 안희정 전 지사의 모친상에는 이재명 지사가 조기(弔旗)를 보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면서 “‘공부하세요’가 아닌 정확한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적었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청년보좌역을 지낸 곽승용씨는 SNS를 통해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에게 '이재명 전 지사의 조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을 했다. [사진=곽승용 SNS 캡처]
국민의힘 선대본부 청년보좌역을 지낸 곽승용씨는 SNS를 통해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에게 '이재명 전 지사의 조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라는 질문을 했다. [사진=곽승용 SNS 캡처]

곽승용씨의 지적처럼, 안희정 전 지사의 모친상 빈소에는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등이 조기를 보냈다는 기사가 있다. 당시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 박병석 국희의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도 조화를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박 위원장의 SNS 글은 여기에 나온 사람들을 전부 저격하는 것이다. 박 위원장의 논리대로라면, 자신을 추천해 준 것으로 보이는 이재명 고문은 2030 페미니즘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곽승용씨의 지적에 대해 분명하게 답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곽씨의 지적에도 불구, 박 위원장은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박 위원장은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문 대통령까지 비난한 박 위원장이 이재명 상임고문의 행태에는 침묵하는 ‘내로남불’인 셈이다.

이재명 비판 못하면 ‘내로남불’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박 위원장은 14일 개최된 첫 비대위 회의에서 ‘권력형 성범죄에 무관용 원칙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화상을 통해 발언했다. [사진=연합뉴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화상을 통해 발언하며 3가지를 약속했다. [사진=연합뉴스]​

박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N번방 사건을 비롯해 디지털 성범죄를 추적해온 기자이자 활동가"라고 본인을 소개한 후 "새로운 사람이 책임자가 된 만큼 민주당 변화와 쇄신의 모습을 국민 여러분께 보여드릴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민주당의 내로남불' 행태를 정면 비판하며 쇄신을 예고했다. 그는 "민주당은 닷새 전 선거결과만 기억할 게 아니라 5년 동안 국민과 지지자들에게 내로남불이라 불리며 누적된 행태를 더 크게 기억해야 한다"며 "뼈저리게 반성·쇄신해야 하는 게 우리 앞에 놓인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민주당에 '기득권과 불통'의 모습만 남았다고 작심 비판하며, 3가지를 약속했다.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 도입, ▶여성 청년에 대한 공천 확대, ▶정치권 온정주의 근절 등이다.

이 상임고문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 모친상에 조기를 보낸 것과 관련해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는다면, 박 위원장 역시 ‘내로남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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