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지지율에 갇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을 영입한 것은 일종의 승부수로 풀이된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나온 이 후보의 고육지책이다. 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총괄선대위원장이라는 직제를 신설하면서까지 이 전 대표를 영입한 데는 친문과 호남으로 대표되는 ‘집토끼 민심’을 수습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 총괄선대위원장은 송영길 상임선거대책위원장보다 높은 위치라는 점에서, 이 후보가 이 전 대표를 우대하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지난 9일 이 후보는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총괄선대위원장직 제안을 수락한 이 전 대표를 향해 "정말로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경험과 경륜을 가지고 계시고 역량이 뛰어나시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 국면을 슬기롭게 잘 돌파해 주실 거라 믿는다"며 박수를 보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이 지난 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비전 국민통합위원회 평화비전회의에서 기조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전 대표는 총괄선대위원장을 수락하면서 분위기 일신을 예고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① ‘김혜경 사과’ 주도했지만 효과 없어

위기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이 위원장은 이 후보 배우자인 ‘김혜경씨의 사과’를 끌어내며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경기도 9급 별정직 공무원의 폭로 이후 12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김씨는 이 위원장이 등판한 당일에 급작스런 ‘사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9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대위 회의에서 이 위원장은 “선거는 국민의 신임을 얻기 위한 예민한 경쟁"이라며 "민주당의 모든 구성원은 국민의 신임을 얻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씨 논란에 대해 "진솔하게 인정하고 겸허하게 사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선대위 총괄본부장인 우상호 의원은 이후 기자들에게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의 입장 표명도 있고 해서, 지금 그 문제(사과)를 준비하고 있다"며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혜경씨는 이날 오후 5시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과잉 의전' 논란 등에 대해 사과했다. 너무나 급작스런 진행을 두고, 그 배경에 이 위원장이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이 위원장으로서는 위기 타개책으로 김씨 사과를 이끌어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다. 단순한 과잉 의전을 넘어서는 ‘공금 횡령’ ‘직권 남용’ 등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 없이, “나중에라도 책임지겠다”는 진정성 없는 사과에 그쳤다는 점에서 큰 비판을 받고 있다. ‘하나마나한 사과였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다.

1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김재원 최고위원은 “최근 빅데이터상에서 김혜경씨 내용이 1위부터 10위까지 차지하다 보니, 선거 전력상 ‘사과를 했다’고 하기 위해서 나온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용이 없는 사과는 사실 그렇게 좋은 사과가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이 위원장이 주도한 김혜경씨의 사과가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② ‘정권 재창출’ 이미지, 송영길의 ‘사실상 정권교체론’과는 모순

이 후보가 이 전 대표에게 사실상 선대위 지휘봉을 맡긴 건 당 핵심 지지층인 호남과 친문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에게 박빙 열세를 보이는 핵심 요인이 ‘집토끼를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서’라는 자체 분석에 따른 것이다.

이 후보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정성호 총괄특보단장은 이 위원장 영입과 관련해 "그동안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면서도 이재명 후보를 적극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 중도층이라든가 여성층들 이런 분들에게 민주당의 신뢰감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가장 중요한 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인 호남 출신 유권자들에 대해서 이 전 대표가 상당한 호소력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 전 대표를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 건 기존까지 밀던 '사실상의 정권교체론'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후보와 송영길 당대표는 정권교체론이 우세한 대선 정국에서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해 정권재창출론이 아닌 사실상 정권교체론을 강조해왔다.

사실상의 정권교체론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위원장을 영입한 것은, 이 후보의 상황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반증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이 드러내놓고 ‘정권 재창출론’을 표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③ 추미애의 이낙연 저격은 ‘친문세력’내 입지강화 포석?...‘친문 규합’ 쉽지 않을 듯

더불어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광주·전남 합동연설회가 열린 지난해 9월 25일 오후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 1층 다목적홀에서 경선 득표 결과 발표 직후 이낙연 후보와 추미애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위원장은 지난 9일 개최된 선대위 첫 회의에서 “SNS를 자제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SNS 자제령’을 내렸다. 이 후보와 후보 가족에 대한 각종 의혹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민심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한 사례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 의원은 “이 위원장이 특정 인물을 꼬집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SNS로 표 깎을 일은 하지 말라는 경고”라고 표현했다. 한마디로 이 위원장이 본격적인 기강 잡기에 돌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위원장은 이날 오후 비공개로 진행된 선대위 회의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의 페이스북 글’을 놓고 “내가 온 첫날부터 이러면 어떻게 하나”라며 “이런 식으로 하면 선거에 망하자는 것”이라면서 불쾌감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추 전 장관은 9일 오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지난 경선 과정에서 이 전 대표가) 이재명 후보를 대장동 비리 범인으로 몰았던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을 시인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 후보가 비공개 회의 시작 직전 추 전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 ‘페이스북 글 삭제를 요청’하면서, 해당 글은 삭제됐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중진은 “이 위원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복귀를 하자, 추 전 장관이 배가 아파서 그런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추 전 장관은 참 독특한 사람”이라며 “지난 경선 과정에서 보인 명추연대에 대한 배신감이 작용한 것이다”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추 전 장관의 페이스북은 간단하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추 전 장관으로 대표되는 친문 강성 지지자들에게는 아직도 이 위원장이 대장동 사건의 범인으로 이 후보를 몰았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추 전 장관은 이처럼 친문 강성 지지자들의 아픈 기억을 소환해 자기 정치를 하려는 측면도 있다. 상당수 친문 핵심세력이 이 후보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현실에 주목, 친문세력 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이 위원장이 ‘친문세력 규합’이라는 이 후보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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