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간 양자토론이 사실상 무산됐다. 국민의힘 TV토론 협상단 성일종 단장이 최종 시한으로 정한 30일 자정이 지나도록 민주당과 토론방식에 합의하지 못했다.

국민의당과 안철수 대선후보가 지상파 방송 3사를 상대로 ‘양자 TV토론’을 금지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인용함에 따라, 설 연휴 기간 예정됐던 양자 TV토론은 무산되고 2월 3일 4자 TV토론으로 결론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연합뉴스 자료사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런데 지난 27일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에 4자 TV토론과는 별개로 '국회나 제3장소에서 양자토론을 먼저 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양측은 실무협상을 진행해왔으나 난항을 거듭했다.

양측은 서로 다른 핑계를 대고 있지만, 최대 쟁점은 ‘대장동 의혹’이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이다. 윤석열 후보측은 ‘대장동 의혹’을 집중 부각시키기 위해 ‘자료 지참’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재명 후보와 관련된 다양한 의혹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려면 각종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재명 후보측은 ‘무자료 토론’을 주장했다. 마치 윤 후보가 자료가 없으면 토론을 못하는 인물이라는 듯한 분위기까지 조성했다. 하지만 양자 토론회가 ‘대장동 의혹’ 관련 자료로 도배질 당하는 사태를 차단하려는 게 진짜 의도라는 분석이다.

토론회에서 대선후보들의 자료 지참 여부는 상대방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최대한 충족시키기 위해서 후보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측이 ‘무자료 토론’을 고집한 것은 대장동 의혹의 이슈화를 차단해야 할 필요가 절박했기 때문이다.

2월 3일 4자 TV토론회에서도 이 후보측이 ‘무자료 토론’을 주장할 경우, 실무협상은 진통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TV토론과 관련된 3가지 쟁점을 짚어본다.

① 양자토론 고수하는 윤석열, ‘안철수 배제’ 원해?...“맞수 토론을 국민이 원해”

4자 TV토론 이전에 양자토론을 먼저 하겠다는 국민의힘의 입장에 대해 야권 지지자를 두고 경쟁하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4자토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며, 민주당과 먼저 합의한 양자토론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실상 4자토론을 최대한 미루면서 ‘유권자의 알 권리를 위해 다른 후보 참여를 보장하라’는 취지의 법원 판결을 우회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30일 저녁부터 철야농성에 돌입한 안 후보는 “기득권 양당의 편법적이고 불공정한 양자토론에 항의하기 위해서, 지금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말씀드리기 위해서”라며 철야농성의 이유를 밝혔다.

윤 후보는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4자 토론에 대해 "자기의 정견을 제대로 드러내기가 어렵다"며 "맞수토론이 서로 다른 점을 부각하고 국민들께 자기의 입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더 유용한 토론 방식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TV토론 협상단장인 성일종 의원 역시 "국민은 양자토론을 더 보고 싶어하고 더 듣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원의 가처분 취지는 방송사 초청 토론회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으로, 방송사 초청이 아닌 양자 합의에 의한 토론회 개최는 무방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국민의힘의 주장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TV토론이 유권자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대한 상황에서 토론에서 배제된 후보자는 향후 선거에서 불리해질 우려가 있고, 유권자가 이들 후보의 정책·현안 등을 접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등의 이유 때문에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했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022년 1월 30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양당 담합토론 규탄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국민의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2022년 1월 30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양당 담합토론 규탄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국민의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② 4자토론에 무게두는 민주당, 안철수 키워서 야권표 분산?

국민의힘은 지난 28일 오전 민주당에 양자토론 수용을 거듭 촉구하면서 이를 위한 실무협상을 바로 열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이미 잡힌 4자 TV토론 협의에 참여하는 것이 먼저라고 맞받았다.

안철수 후보를 토론에 참여시킴으로써 야권 지지표를 막판까지 분산시키려는 게 이 후보측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법원 결정에 따라 오늘(28일) 오후 2시에 4자토론을 위한 실무 협의가 예정돼 있다"면서 "국민의힘은 자꾸 억지를 부리며 술수를 쓰지 말고 우선 4자 협의에 나오라"고 밝혔다. 하지만 윤 후보 측이 지상파 방송 3사가 주관한 28일 대선후보 4자토론 실무협상에 불참하기로 하면서, 설 연휴 4자TV 토론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4자토론이든 양자토론이든 모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원이 양자 TV토론을 금지한 만큼, 그 결정 취지를 받아들여 지상파 방송 3사가 제안한 4자 TV토론부터 매듭짓는 것이 우선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계속 '양자토론 수용'을 촉구하는 것은 오히려 토론을 회피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고 판단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과 이 후보가 양자토론을 꺼리는 이유에 대해서 “윤석열 검사가 이재명 피의자를 취조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에 민주당은 양자토론을 하자는 국민의힘 측 입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같은 날(31일) 방송사 초청 4자토론까지 연이어 진행해야 한다는 역제안을 내놓았다. 실무협상단장인 성일종 의원은 "국민한테 4시간 이상 시청하라고 하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고통'의 시간을 드리는 것"이라며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등 양당 TV토론 협상단이 국회 성일종 의원실에서 이재명·윤석열 대선후보의 양자토론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등 양당 TV토론 협상단이 국회 성일종 의원실에서 이재명·윤석열 대선후보의 양자토론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③ ‘대장동 의혹’ 집중공략하려는 윤석열 VS. ‘국정 전반’ 토론하자는 이재명

양측의 양자토론 협상이 난항을 거듭한 것은 결국 '대장동'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윤 후보가 대장동과 관련된 의혹을 부각하려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반면, 국민의힘은 ‘윤 후보가 이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대장동을 집중 공격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30일까지도 ‘토론 주제’와 후보들의 ‘자료 지참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주제와 자료 모두 대장동과 깊은 관련이 있다.

민주당은 정치, 경제, 도덕성 등 최소 3개 분야로 나눠 국정 전반에 대해 토론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주제에 한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민주당은 주제를 나눠 시간을 쪼개 배정하면 '대장동 의혹'과 관련한 윤 후보의 질문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반대로 ‘주제를 한정하지 말자’는 국민의힘은 대장동의혹에 집중 공세를 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협상이 계속해서 파행을 겪자 이 후보가 30일 전격적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이) 원하는 대로 주제없이 토론합시다"고 전향적인 양보 입장을 보이면서, 양자토론 실무협상은 타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료 지참' 부분에서 또 막혔다.

국민의힘이 지참을 요구하는 자료는 대장동과 관련된 자료이다. 국민의힘 협상단장인 성일종 의원은 30일 기자들과 만나 "이 후보가 대장동 의혹에 떳떳하다면 어떤 자료도 제한 두지 말고 당당히 받길 바란다"며 "또 고발사주 등 윤석열 후보를 공격할 자료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지고 오라. 그런 진위 여부, 또 국민이 후보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자료는 언제든지 가져오라는 것이 국민의힘 입장"이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자료 지참을 고수하는데 대해 윤 후보가 '실력'이 없어 메모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후보 자질론' 프레임으로 몰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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