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N수첩/홍준표] 전 세계를 상대로 생중계한 '남북 평화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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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PenN 기자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생중계로 시청하면서 뭉클한 시청자도 있을테다. 필자 또한 그렇게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한계에 대해 비판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눈물이 고일 뻔 했다. 당면한 국가적 최고 현안을 생중계로 보도하는데 그 누가 냉정하기만 할 수 있을까. 순간 문제의 본질은 놓치고 가시적이고 일차원적인 감정이 부풀어 오르는 것은 한반도에서 태어난 국민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보자. 이 같은 일이 진작에 없었을까? 도발을 일삼아 대한민국의 장병들을 죽여나가도 남쪽 '동무'들이 평화를 외쳐주고 최고 존엄의 심기만 건들지 않으면 사실 회담 한 번 해주는 것은 북한 입장에선 사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세력은 제쳐두더라도, 남북간의 역사를 잘 몰라도, 화끈한 평화 '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상을 탔다는 것 쯤은 알테다.

사실 그 어린 나이에 나도 대단한 뭔가가 일어나는 줄 알았다. 심지어 북한의 토지개혁 때 월남하신 황해도 출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선 매일 이산가족 상봉 뉴스를 보며 혹시라도 가족의 얼굴이 보이진 않을까 TV를 매일 켜놓고 잠에 드셨다. 그랬다. 북한에게 그 정도의 '쇼' 쯤은 알아서 기는 남한의 '동무'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호의이자 관대함이었다.

1991년 12월 비핵화 공동선언을 비롯해 숱하게 많은 평화협정을 맺어왔어도 뒤돌아선 핵개발을 해오고 폭격도발을 해왔다. 그럼에도 북한을 끝까지 믿어주는 우리 남한의 '동무'들이 있기에 그들은 맘 놓고 안심할 수 있었다. 미국을 필두로 세계 각국이 대대적인 경제적 압박을 해와도 남한의 '동무'들은 평화를 외치며 기꺼이 북한을 믿어줬다. 김일성을 믿었고 김정일을 믿었으며 오늘은 김정은을 믿고 있다.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인 1928년 미국 국무장관 켈로그와 프랑스 외무장관 브리앙이 체결한 켈로그-브리앙조약은 모든 전쟁을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세계평화가 이 조약 하나로 이뤄질 줄 알았다. 켈로그는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선 이 조약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전쟁들이 숱하게 이어져왔다. 온갖 듣기 좋은 문구들로 채워 놓은 '문서화'라는 것은 돌이켜 보면 이처럼 우스운 한 낱 종이조가리일 뿐인 것이다.

경제개방? 북한도 우리보다 잘 살고 싶을 거다. 애플 매니아인 김정은이 굶어 죽고 싶을리 없다. 스위스 유학가서 뭘 배웠는진 모르겠지만 자본주의의 경제 발전이란게 대단한 것 쯤은 인식하고 있을거라 믿고 싶은 구석도 있다. 백 번 양보해 자기 조상들이 쌓아올린 '우리민족끼리' '쇄국' 등의 단어 등으로 상징되는 업적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긴 쉽지 않을테다.

한국의 좌파정권 시절 남북 권력자들은 파주와 맞닿은 지역에 개성공단을 세워 뭔가 해보려 했고, 백령도를 시작으로 해상경계선을 허물어 평화지대를 구축하겠다는 주장도 했다. 북방한계선을 이른바 '평화·경제지도'로 덮자는 구상도 내놓았다. 그러나 일찍이 북한 정권을 꿰뚫어봤던 선배 세대들은 이를 강력히 반대했고 판단을 달리했다. 국가 지도자의 판단 미스에 대해, 환상에 사로잡힌 국가 수뇌부들을 향해 끝없이 호소했다.

민족이란 뭉클함이 덜 작용했던 것일까? 아니면 근대사의 민낯을 2030세대의 시각에서 들여다 본 탓일까?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이어져 온 평화적 대북정책의 한계를, 북한 문제는 결국 '신뢰'로 귀결된다는, 북한 정권의 수뇌부들이 '믿을 수 없는 부류'인 것에 대해 스스로를 설득하기까지엔 다행스럽게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통일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국가적 최우선 과제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북유럽과 같이 살고 싶다면 이북 땅을 반드시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점은 꼭 견지하되 '평화'라는 단어에 속아선 안된다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부탁 하고 싶다. 통일로 향하는 방법론 중에 가장 하책(下策)이 굽신거리며 평화를 말하는 주장이라는 것은 그동안 역사가 증명해왔다. '평화통일'은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평화통일를 주창하는 자들에게 북한이 3대에 걸쳐 비로소 완성한 핵에 대한 포기를 문서만으로 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유럽의 석권을 대대적으로 준비해 온 히틀러를 상대로 평화협정 체결이 옳다며 주장하다 결국 나라를 잃을 지경까지 오게 만들었던 영국 체임벌린의 우매함을 되풀이 할 셈인가?

세상에 어느 국가가 말로 설득하고, 친절하게 대한다고 자기 생명줄을 담보하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겠나. 군사적 압박, 경제적 압박이 답이다. 다시 말해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북한과의 전쟁이 두려워 평화를 가장한 나약함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국가적 '쇼'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 국군들을 살해한 정권을 상대로 굴욕적인 평화조약 한 번 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방영하는 모습에 수치스러워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잠시동안 느껴지는 뭉클함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이 나라를 이끄는 국가의 지도자라면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2030세대들은 지금이라도 환상에서 벗어났다면 이들을 밀어준 자신의 신성한 투표권과 선거권에, 댓글로 그들을 옹호했던 자신의 손가락에 반성해야 한다. 나이 50이 넘고도 미몽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를 담당하고 있다면 투표와 선거로, 댓글과 아스팔트 시위로, 그리고 끝없는 교육과 학습으로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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