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 앉은 상태 폭행, 특가법 적용돼...깨우는 과정에서 일어났다고 진술해 달라"

‘택시 기사 폭행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용구 전(前) 법무부 차관이 사건 직후 자신의 행위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에 해당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이 이 전 차관 공소장에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은 ‘반의사불벌죄’가 아니어서 무조건 형사 입건되는데, 이 전 차관은 피해자 택시 기사를 회유해 ‘반의사불벌죄’인 형법상 폭행죄로 처리하게 하고 처벌 불원 의사를 받아내 경찰 선에서 내사 종결케 했다는 것이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사진=연합뉴스)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사진=연합뉴스)

2일 확인된 공소장 내용에 따르면 이 전 차관(사건 당시에는 변호사 신분)은 지난 2020년 11월6일 밤 서울 서초구 소재 아파트 앞 정차한 택시 앞에서 택시 기사 A씨의 목을 움켜잡고 “XX놈의 XX” 등 욕설을 했다. 이 장면은 택시에 설치된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이 전 차관이 법무법인 엘케이비파트너스 대표변호사로 있던 도중 ‘월성1호기 조기 폐쇄 의혹’으로 당시 수사를 받던 백운규 전 산업자원부 장관과 백 전 장관의 서울 강남구 도곡동 자택에서 술을 마신 날 일어난 사건이다.

이 전 차관은 사건 이틀 뒤인 2020년 11월8일 A씨를 만나 사과하고 합의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송금한 후 같은 날 A씨에게 전화를 걸어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지워 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하루 뒤인 2020년 11월9일 오전 8시 18분경 이 전 차관은 A씨에게 또 전화를 걸어 “운전석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폭행이 이뤄지면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이 될 수 있다”며 “(차에서) 내려서 깨우는 과정에서 (단순) 폭행을 당했다고 말해줄 수 있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이 전 차관이 피해자 A씨에게 이같은 진술을 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반의사불벌죄’인 형법상 단순 폭행으로 사건이 처리될 경우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 표시만으로 사건이 종결되나,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죄’로 처리될 경우 피해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입건돼 처벌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전 차관 사건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실제로 단순 폭행으로 처리됐다.

하지만 이 사건이 처음 보도되자 ‘승하차를 위해 정차된 상태’에서 일어난 폭행도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으로 처벌된다는 지적이 이어지며 ‘경찰의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나중에 담당 수사관이 택시 기사가 보여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고도 “못 본 것으로 하겠다”고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확대됐다.

이 전 차관은 처음에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취지로 발뺌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차관 임명 6개월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건을 다시 수사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사건 발생 10개월만인 지난해 9월 이 전 차관을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과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해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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