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퇴임을 앞둔 문재인 대통령의 ‘탈법정치’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취업제한 상태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27일 청와대로 불러서 ‘삼성 일자리 창출’을 당부했다. 심지어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라는 어록까지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정의당 심상정 대표조차 “문 대통령이 앞장 서서 취업제한 조치를 무력화했다”고 맹비난을 했을 정도이다.

대통령의 ‘부하’인 박범계 법무장관이 구속된 이재용에게 지난 2월 ‘5년 취업제한’ 통보

이 부회장에 대한 취업금지는 대통령의 각료인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취했다. 법무부는 지난 2월 16일 구속수감 상태였던 이 부회장에게 ‘5년 취업제한’을 통보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18일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86억원 상당의 회삿돈을 횡령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에게 뇌물로 건넨 혐의 등으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법무부 통보에 의하면, 이 부회장은 2022년 7월 만기출소를 하더라도 유죄가 확정된 범죄행위와 관련이 있는 삼성전자에 5년간 재직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지난 8월 광복절에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됐다.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법 14조에 따르면, 5억원 이상 횡령·배임 등의 범행을 저지르면 징역형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날부터 5년간 취업을 제한한다.

따라서 이 부회장은 가석방된 시점부터 취업제한 상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자리 창출한 6대기업 총수와의 청와대 간담회에 이재용 포함시켜

그러나 문 대통령은 27일 정부의 민관합동일자리 프로젝트인 ‘청년희망ON’에 참여한 6대 대기업 총수를 초청한 오찬 간담회에 이 부회장을 불렀다. 현대자동차 그룹 정의선 회장, SK주식회사 최태원 회장, ㈜LG 구광모 회장, 포스코 그룹 최정우 회장, KT 구현모 대표이사 등이 함께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정우 포스코 그룹 회장, 최태원 SK주식회사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문 대통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 온(ON) 참여기업 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정우 포스코 그룹 회장, 최태원 SK주식회사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문 대통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진=연합뉴스]

이들 6대 대기업은 향후 3년간 총 17만 9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 교육훈련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정부에 약속했다. 그 약속을 받는 행사는 김부겸 국무총리가 담당했다. 지난 9월 KT를 시작으로 해서 6대 기업 총수를 순차적으로 만나서 사진을 찍고 일자리 창출 규모를 발표했다.

하지만 6대 기업이 약속한 일자리 창출 규모는 당초 기업 차원에서 이미 결정했던 사안이었다. 최태원 회장만 김부겸 총리와의 행사 직후 5000명의 추가고용 계획을 밝혔을 뿐이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의 채용계획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문 대통령도 27일 간담회에서 일자리 창출의 주인공은 정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시인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제도 교육을 통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노력했다”면서도 “그러나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몫이고 정부는 최대한 지원할 뿐”이라고 밝혔다.

취업제한 통보했던 박범계 법무장관, 이재용의 경영활동 옹호하는 ‘법치파괴’ 드러내

정부가 기업의 일자리 창출을 ‘자기 공’으로 돌리려는 듯한 정치 행사를 갖는 것은 봐줄 수도 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일자리 창출을 당부함으로써, 삼성 총수로서의 경영권 행사를 공인해줬다는 점이다.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상태임을 문 대통령 스스로 부인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궤변을 펴왔다. 이 부회장은 지난 8월 가석방된 당일에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을 찾아 경영진을 만나 현안을 챙겼고, 10일 뒤에는 240조 원 규모의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이에 다수의 시민단체는 이 부회장의 경영행보가 취업제한 조치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중국 등과의 치열한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면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절실한 상황이었지만, 시민단체들은 ‘국익’보다는 ‘법리논쟁’에 집중한 것이다.

오히려 박범계 법무장관이 이 부회장 지원사격에 나섰다 박 장관은 “(이 부회장이) 무보수·비상근·미등기 임원 상태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취업제한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는 삼성측의 반박논리를 그대로 판박이한 내용이었다.

법을 집행하는 정부부처 책임자가 앞뒤가 맞지 않는 ‘법치파괴’를 드러낸 것이다.

문 대통령, 이재용을 사면에선 제외하고 이재용의 ‘취업제한’에는 눈감아

문 대통령이 27일 오찬에 이 부회장을 삼성 총수 자격으로 초청할 생각이었다면 24일 특사에 이 부회장을 포함시켰어야 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면을 받으면 ‘취업제한’에서 풀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을 받았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면하면서 돈을 줬다는 이 부회장은 사면에서 제외했다. 이는 법률적 일관성은 고사하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 조치라는 게 법조계의 분위기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27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과 청와대에서 오찬 간담회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이게 나라다운 나라인가"라고 물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27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과 청와대에서 오찬 간담회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이게 나라다운 나라인가"라고 물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27일 간담회 직후 “현재 이재용 씨는 무보수·미등기 이사라는 꼼수로 오히려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경영활동을 하며 초법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다”면서 “이재용 씨를 대기업 총수들과의 간담회에 공식 초청한 것은 대통령이 나서서 취업제한 조치 무력화를 공인해준 것과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청년희망ON' 프로젝트에 참여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 준 분들을 초청한 것”이라며 “(오찬 간담회의) 출발점과 본질에 충실하게 초청자들이 결정된 걸로 생각한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이 부회장이 ‘취업제한’ 상태인데 다른 대기업 총수와 대등한 자격으로 대통령과 기업의 일자리 창출 문제를 상의하는 게 ‘탈법’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을 ‘사면’에서는 제외하고, 이 부회장의 ‘취업제한’ 상태에는 눈을 감는 방식으로 ‘탈법정치’를 했다는 평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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