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회의장 배경판에 대선 주자들의 완충을 의미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회의장 배경판에 대선 주자들의 완충을 의미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의 합당 논의가 일단 결렬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협상시한으로 통보한 날짜가 지난 6일이기 때문이다.

외관상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합당논의를 지속하려면 이 대표에게 통사정을 해야하는 모양새가 됐다. 더욱이 그동안 양당과 두 대표 간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합당이 되기는커녕 양측 간 전선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이대로 갈 경우 합당이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대두된다.

국민의힘과 이 대표의 태도가 이렇게까지 고압적으로 변한 것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부터’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국민의힘 회의장 뒷배경인 배터리 모양 백보드 칸을 다 채우면서 “우리 승객 이제 다 탔다”고 할 때부터라는 지적이다.

안 대표는 아예 안중에도 없는 태도였다. 윤 전 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으로 충분하다는 이 대표의 인식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윤 전 총장, 최 전 감사원장, 안 대표 등을 포함한 야권 대선주자들을 게임판의 아이템 정도로 격하시켰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윤석열과 최재형이라는 아이템을 득템하면, 안철수라는 아이템이 없어도 내년 대선이라는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휴가 일정에 맞춰 합당 시한 정한 이준석, 상대방에게는 모욕적인 발언

두 당 사이의 합당 논의를 꾸준히 지켜본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다. 많이 가진 쪽과 양보할 것이 별로 없는 쪽이 있다면, 많이 가진 쪽에서 양보하는 게 순리라는 주장이다. 양보할 것이 없는 쪽에서 어떻게 양보를 하겠느냐는 의견이다. 정치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 도리에서 크게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합당을 둘러싼 협상이 길어지는 가운데,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서 “안철수 대표가 합당을 위해 만남을 제안한다면 언제든 버선발로 맞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시한은 다음 주로 못 박겠다”고 밝혔다. 8월 9일부터는 이 대표 자신의 휴가 일정이기 때문에, 그 전에 마무리를 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관련 실무협상단 회의에서 권은희 국민의당 단장(왼쪽)과 성일종 국민의힘 단장이 대화하고 있다. 이날을 끝으로 실무협상은 결렬됐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국민의당 합당 관련 실무협상단 회의에서 권은희 국민의당 단장(왼쪽)과 성일종 국민의힘 단장이 대화하고 있다. 이날을 끝으로 실무협상은 결렬됐다. [사진=연합뉴스]

자신의 휴가 일정에 맞춰서 합당논의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은 상대방 입장에서는 모욕적인 발언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러자 국민의당 안혜진 대변인은 같은 날 “매우 고압적인 갑질”이라는 논평을 냈다. “휴가 일정을 이유로 합당 시한을 일방적으로 정해 통보하는 모습에서 합당의 진정성을 찾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권은희 원내대표 역시 페이스북에서 “이준석 대표 휴가 일정이 정권교체를 위한 대선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정인 줄 몰랐다”며 “휴가 잘 다녀오시길 바란다”고 불쾌감을 숨기지 않으면서 비꼬았다.

이준석이 제시한 합당 마지노선인 6일에도 양측은 날선 공방전만 벌여

결국 이 대표가 합당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6일에도 양측은 날선 공방을 벌였다. 합당 협상이 재개되기 어렵게 됐다.

이 대표는 지난 6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당에서 선을 그어서 우리는 합당 안한다, 이래 버리면 저도 그렇게 매달릴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안 대표가 윤석열 후보 측에 접근한 것도 알고 있다는 식의 고압적 태도를 견지했다. 이 대표는 “안 대표 측에서는 뭔가 굉장히 비밀스럽게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알고 있지만, 안 대표 측이 예를 들어서 윤석열 후보 측에 접근했다는 것들도 거의 실시간으로 저희는 알고 있었다"고 직격했다.

이 대표는 이어 "결국 만나기 싫으니까 어떻게든 만나자는 말에 답을 안 하고 못하고, 말꼬리 잡고 저한테 '철부지 회동'이라고 그러고 '전범'이라고 그러고 다 나오는 것"이라며 힐난했다.

안철수 대표 최측근인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도 이 대표를 향해 비판으로 맞받아쳤다. 이 의원은 같은 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꽃가마 타고 비단길 가는 거 바라지 않는다”라며 “자갈밭이라도 함께 달릴 진정한 동지를 원하는 것인데, 국민의힘에 과연 그럴 의지가 있는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 실무협상이 중단된 건 지난달 27일이다. 그 이후로도 국민의힘과 이 대표는 연일 안 대표를 향한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대변인은 지난 1일 논평을 내고 “정권교체를 향해 힘차게 달리라는 국민의 뜻, 안철수 대표가 응답할 차례”라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에게 이미 수차례 대화에 나서 담판을 짓자고 했고, 합당 이후 대선 출마의 가능성까지 제안했다”고 강조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6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야권 통합·정권교체라는 큰 흐름에서 삐죽 나와 '내 것 챙기겠습니다'하면 5% 지지율이 0%가 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 불발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안 대표가 독자적으로 대선 출마를 고집하면 지지율을 전부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안철수 대표가 독자적으로 대선 출마를 고집하면 지지율을 전부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김현정의 뉴스쇼 캡처]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안철수 대표가 독자적으로 대선 출마를 고집하면 지지율을 전부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김현정의 뉴스쇼 캡처]

이현종, “이준석은 상대방 제압하려는 듯 행동해”...이정현, “안철수가 가진 중도확장성에 집중해야”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를 향한 비난이 거세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채널A ‘뉴스탑텐’에 출연해 “이 대표가 하는 언행을 보면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태도이다. 게임을 하듯이 상대방을 제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계속 승부를 걸어야 뭔가 정치를 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이정현 전 의원은 모 유튜브 방송에서 “안철수 대표가 가진 중도 확장성에 집중해야 한다. 한 표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제1야당이 양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 전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와 대선주자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했다. “지난 4‧7 보궐선거에서 안 대표의 역할을 다 잊은 것이냐? 마치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것처럼 행동한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진정으로 정권교체를 하겠다면, 대선 주자 중의 누구라도 안 대표를 찾아가서 진심으로 포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고 비판했다.

보수 유튜버로 활동 중인 진성호 전 의원은 이준석 대표를 향해 “신선했던 젊은 정치인이 이제 오만해졌다”고 평가했다. 안철수 대표를 너무 몰아붙이는 이 대표의 행태에 대해 국민들이 피곤해하고 있으며, 이는 결코 내년 대선을 위한 바람직한 행보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장예찬 윤석열 캠프 청년특보는 이런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장 특보는 지난 5일 채널A의 프로그램에서 “이준석 당대표 선출되고 나서 노원구의 카페에서 만났을 때 분위기 좋았다. 그때처럼 두 사람이 다시 직접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오해나 감정이 풀리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도 정권교체의 무게추가 국민의힘으로 많이 기울어 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 부분에서 분명한 확장력을 가지고 있는 안철수 대표 없이 정권교체가 가능할 것인지를 반문했다. 국민의힘이 양보를 해서라도 잘 모셔왔어야 한다면서, 서로 전향적인 자세로 한발 물러설 것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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