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근찬 교수] 좌파적 자유주의의 전체주의적 속성에 관하여
[기고/문근찬 교수] 좌파적 자유주의의 전체주의적 속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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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방종이 아니고 '정의의 규칙'과 결부돼야
좌파적 자유주의, 절대주의로 변질되기 쉬운 구조
자유 시스템 실제로 구축된 것은 미국 독립혁명
문근찬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
문근찬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

내가 참여하는 한 세미나 모임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한 어느 교수의 발표를 들었다. 주제는 ‘민주주의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나: 국가철학’이라는 제목이었는데, 발제자는 얼마 전 자신이 출간했다는 책의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방식으로 토의를 진행했다. 아마도 그 책은 오늘날의 한국 정치 상황을 나름대로 해석하며,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 내용인 듯했다.

그는 촛불 시위를 명예 시민혁명이라 칭하며, 당시 촛불 시위자들이 “이게 나라냐’라는 표현을 쓴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국가’라는 표현은 중립적인 국가 제도를 표현하는 단어지만 ‘나라’는 정서적 울림이 큰 표현이며, 촛불이 이 표현을 쓴 것은 폭력을 독점하는 권력 주체인 국권의 시대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하고, 더 나아가 복리를 보장하고 실현하는 기관으로 국권이 정당화되는 민권의 시대로 불가역적으로 이행했음을 보이는 상징이라 했다. 즉 촛불은 과거 권위주의적 국가 지상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라고 했다. 그는 촛불 시위가 끝나고 나면 그 많은 군중에도 불구하고 쓰레기 하나 없는 모습에서 고도의 시민 의식을 볼 수 있었는데, 여름철 해운대 해수욕장에 버려지는 쓰레기 더미와 비교가 된다며 두 군중을 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고도의 정치적 사건에 참여한 군중과, 휴식을 즐기며 다소 풀어진 시민을 왜 비교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면 촛불 참가자는 해운대에는 안 간다는 것인지, 혹은 해운대에 가도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는 것인지 발표자의 의도를 확인해 본 바는 없다. 아무튼, 발표자는 이번 촛불 시위를 과거 유럽 대륙의 역사에 나오는 혁명들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은 그 세미나 모임 후에 내 뇌리에 떠나지 않던 질문들에 관해 확인해 본 내용이다. 그 질문이란 “오늘의 한국은 250년 전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 정도의 수준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진보인가 퇴보인가?”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당시의 여러 혁명 사조의 근원을 다시 살펴봤다.

정치철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계몽사상과 프랑스 혁명에 그 뿌리가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프랑스 계몽사상과 프랑스 혁명은 19세기 사회 질서의 기반이 된 자유를 구축하는 데 어떠한 공헌도 한 것이 없고, 사실은 그 반대다. 프랑스 혁명이 자유의 출발점이라는 믿음은 그 후에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의 자유주의자(좌파적 자유주의자)들이 ‘자유(liberty)’라는 단어를 독점하고는 자신들을 ‘자유주의자(liberalist)’라고 명명해서 생겨난 오류일 뿐 사실이 아니다. 좌파적 자유주의는 인간 이성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갖고 전통과 역사를 쉽게 부정하는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에서 생겨난 패러다임이다. 이들은 철학적으로 데카르트, 루소, 홉스로 이어지는 구성주의적 합리론 전통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인간을 우주 속의 물리적 개체처럼 원자적 인간관, 예를 들면 호모에코노미쿠스 - 이기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고립된 인간 – 식의 단순한 가정으로 개인을 정의한다. 이들이 그리는 인간이란 가족, 전통, 역사도 없고, 단순한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 같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좌파적 자유주의는 사이비 자유주의이라 할 만하다.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의 이성주의적 자유주의(좌파적 급진 자유주의)와 달리 스코틀랜드 전통의 자유주의(우파적 온건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 근원적 가치로 여기며, 자유는 방종이 아니고 '정의의 규칙'과 결부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정의의 규칙을 존중하는 이유는 개인이 타인의 자의적 강제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어떤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규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코틀랜드 전통의 자유주의는 질서를 존중하며 원자적 인간관이 아니라 전통, 관습, 도덕 규칙으로 서로 연결된 개인들, 그리고 누구나 보호된 범위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할 자유를 중히 여긴다. 이런 전통은 자연히 시장에서 행동 규칙을 지키며 각자 분업과 협력을 통해서 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점진적으로 발전하며 품위를 유지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이에 반해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의 이성주의적 자유주의는 현실 세계에서 정치적 결실을 보기보다는 혁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좌파적 자유주의자들은 전체주의적 독재의 길을 여는 역할을 했는데, 그 메커니즘은 이렇다. 이성주의적 자유주의가 현실 세계에 부딪히면 실제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고, 정치적으로 기존 체제에 반대만을 할 수 있을 뿐 그 스스로는 철저히 무능하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가지려면 오직 혁명적 전체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렇게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의 이성주의적 자유주의자들은 그 자체가 전체주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 사회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법칙으로 포장한 전체주의적 혁명가로 변모하거나 그런 혁명가에게 길을 깔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성주의 좌파 혁명의 계보는 장 자크 루소에서부터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로 이어지고, 그 연장 선상에 마르크스와 스탈린이 있다. 그들 모두는 이성을 무한히 신뢰하는 프랑스 계몽주의에 그 뿌리를 두면서, 원자적 인간을 모델화 하기 위한 반 이성적인 단순한 교리를 덫 씌운다. 예를 들어 루소는 모든 사람이 공동선을 추구하는 도덕적 관점을 가질 수 있다면서 이를 일반의지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일반의지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냥 그것은 완전하고 절대적이기 때문에 우주 만물에 보편적으로 수용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로 선언될 뿐이다. 루소가 소규모 도시국가를 완벽한 정부의 유일한 체제라며 구성원 전체가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주장했다는 것과 “자연으로 돌아가라.”며 자신이 속한 사회의 속박에서 벗어남으로써 체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했지만, 이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고, 낭만적인 선동일 뿐이다. 장 자크 루소의 사상에 깊이 공감했던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혁명 내내 급진적 공포 정치의 중심이 있다가 자신도 군중의 냉소 속에 처형되었다.

루소의 일반의지와 유사하게 마르크스도 이성주의적 단순성으로 사회를 규정했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합리적 경제인으로 인식하는 경제적 결정론에다가 인간의 행동은 개개인이 속해 있는 계급 상황에 의해 규정된다는 계급 결정론을 선언했다. 그의 이론에 사회 발전을 위해 전통을 존중하면서 점차 나아지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 같은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계급 결정론은 인간 개개인의 창의적 행동, 사고, 분석 능력 모두를 부정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은, 인간의 의지와 이해의 차원을 초월하는 계급의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궁극적 인간 완성의 실현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국한하면서, 지상천국으로 가는 혁명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오늘날 ‘국민’ 대신 ‘사람’이라는 말을 굳이 쓰려고 하는 의도에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은 찰스 다윈과 더불어 시작된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인간 사회를 단순화 했다.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후 60여 년 동안 인간을 생물학적 존재 또는 심리학적 존재로 해석하는 철학이 유럽의 이성주의적 사조가 되었다. 우생학이나 행동주의 심리학을 인간에 적용할 때 개인은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히틀러는 이를 민족적 기반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프로파간다와 같은 심리학의 수단을 동원하여 사회를 관리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이성주의자는 이전의 이성주의자들이 했던 것처럼 인간 본성에 대해 절대적 개념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인간을 유전자, 염색체, 선(線)의 창조물로 형성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인간이 완전해질 가능성을 ‘객관적 진리’로 선언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로 보자면,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의 좌파적 자유주의는 절대주의로 변모되기 쉬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개인의 다양성이나 개성, 나아가 개인의 자유는 철저히 무시되고, 인간 존재의 정의를 단순한 과학 이론이나 권위를 내세운 결정론으로 짜 맞춘 후, 그 신념을 진리인 것처럼 퍼뜨리는 전체주의자에게 길을 내 준다.

앞에 살펴본 바와 같이 프랑스 혁명은 흔히 생각하듯이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그동안 가꾸어온 자유의 유산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사건이었다. 왕을 비롯한 수만 명의 사람이 처형되었고 혁명을 완수하려고 공포정치를 동원한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전제정치를 끝내고 공화정을 하겠다며 시작한 혁명이었지만 수년 뒤 권좌에 오른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스스로 다시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가 일으킨 유럽 전쟁으로 또 수백만이 희생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대비하여 볼 때, 실제로 자유의 시스템을 구축한 것은 1776년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를 명기한 독립선언서에서 출발하는 미국의 독립혁명이었다. 역사가들은 프랑스 혁명이 미국 독립혁명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고 같은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기술하지만, 피터 드러커에 의하면 두 혁명은 오히려 반대되는 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프랑스 혁명이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의 이성주의적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라면 미국 혁명은 영국 전통의 경험주의적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보수주의 혁명이었다. 정치 체제 면에서 미국 혁명은 프랑스 혁명에 따른 국민 의회, 공포 정치, 그리고 나폴레옹의 체제보다 몇 단계 진보한 체제다. 미국 혁명에서 비로소 자유의 이름으로 이성주의나 계몽주의 독재에 맞서 싸운 정치이념이 정치 체제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영국이 프랑스 혁명의 파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조지 3세 국왕이 식민지와의 전쟁에서 패퇴한 후 영국 정부의 권력이 윌리엄 피트와 에그먼드 버크 같은 휘그당으로 넘어가, 보수주의자들이 자유의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전통에 기반을 둔 정부를 세우면서 가능했다. 그들은 과거의 전통을 혁명에 의해 제거한 것이 아니라, 전통의 기반 위에 가능한 수준에서 하나씩 쌓는 식으로 내각 제도를 확립했고, 내각의 의회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했으며, 국왕과 의회 사이의 관계도 새로 규정했다. 그리고 자유당과 보수당이라는, 둘 다 자유 사회라는 동일한 이념에 기반을 둔 양 당 체제를 확립했다. 두 정당은 자유의 유무에 의해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한계, 즉 권위주의와 개인주의의 스펙트럼 차이를 조정하는 주도권을 다투는 정당일 뿐이었다.

이렇게 미국과 영국에서는 자유가 중요하고 당연한 존재로 인식되는 정치 체제를 만들어나갔다. 그들은 철학적으로는 이성주의보다 덜 멋있을지라도 현실 세계에서 오랜 전통에 의해 정착된 제도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새로운 변화는 하나씩 조심스럽게 지식과 사실을 바탕으로 타당성을 검증하면서 해야 한다는 경험주의적 전통을 정치 체제에 반영했다.

이에 비교해 19세기 유럽 대륙이 누린 자유란 전체주의가 맹위를 떨치다가 잠시 힘을 잃었을 때 누리는 불안정한 것이었다. 유럽 대륙의 구성주의적 합리론 전통은 인간의 완전성을 추구한다는 이성에 대한 오만으로 자유를 자주 희생했다. 마르크스, 히틀러, 스탈린 같은 전체주의자는 하나같이 전체의 이상을 추구한다며 개인의 재산권을 빼앗았다.

이 글은 서두에 밝혔듯이 어느 정치철학자가 촛불을 유럽식 명예혁명을 염두에 둔 듯한 논조로 예찬을 했을 때 들었던 의문을 확인해 보기 위한 것이다. 당시 질문을 고루 다 받겠다는 발표자의 말에 나는 단지 “내 성향은 이성주의자라기보다는 경험주의 쪽에 가까워서, 인과의 배열보다는 실질적인 사실에 더 초점을 두고 싶다.”는 취지의 말만을 했었다. 내 말의 속뜻은, 촛불이 민권의 나라 즉 자유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 사실로써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촛불은 구성주의적 합리론이 지녔던 이성에 대한 지나친 신뢰나 오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 즉 비록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가 짧은 역사 때문에 그 원리대로 잘 구사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전통을 어렵사리 세워 나가던 것을 촛불이 일거에 역 주행시킨 반동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 퇴행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문근찬 숭실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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