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원고 측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했다 할 수 없지만, 소송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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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기(日政期) 일본으로 강제 동원돼 노역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이 일본계 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7일 법원이 ‘각하’를 결정했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이 사건 원고들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일본 통치 시기 일본으로 동원돼 노역을 강제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그들의 유가족들이 일본계 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법원이 ‘각하’를 결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4부(부장 김양호)는 7일 송 모 씨 등 85명이 지난 2015년 5월 일본제철, 닛산화학,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1인당 1억원을 배상할 것”을 요구하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이같은 판결을 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으로써 원고 패소 판결과 동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소송 원고들은 일정기 일본 기업들에 의해 강제로 노역에 동원돼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피고가 된 일본 기업들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다가 재판부가 지난 3월 공시송달로 선고기일을 정하자 뒤늦게 변호사를 선임했다.

‘각하’ 이유와 관련해 재판부는 “원고 측 청구권이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바로 소멸했거나 포기됐다고 할 수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청구권협정 제2조는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및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청구권협정을 국민 개인의 청구권과는 관계없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내용의 조약이라고 해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지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체결된 청구권협정을 통해 양국 국민들의 상대국에 대한 개인 청구권이 사실상 소멸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또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인 대법원 2018년 10월 선고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과 결론적으로 동일하다”고도 했다.

한편, 이날 판결은 지난 2018년 10월 유사 사건에서 대법원이 내린 판단과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해당 사건에서 대법원은 일본 기업들이 1인당 1억원씩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관 13명 중 11명이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불법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 협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일본이 협상 과정에서도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피해 배상을 부인했기 때문에 위자료 청구권이 협정에 포함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나머지 2명의 대법관은 “청구권협정은 대한민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상대방 국가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며 “청구권협정에서 규정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문구는 한·일 양국은 물론 국민도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봤다.

이날 판결 내용에 대해 이 사건 원고 측 대리인인 강길 변호사는 “오늘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정반대로 배치돼 매우 부당하다”고 말했다. 장덕환 대일민간청구권소송단 대표는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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