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7일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방문해 반도체 물리학자인 고(故) 강대원 박사 흉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7일 서울대 반도체 공동연구소를 방문해 반도체 물리학자인 고(故) 강대원 박사 흉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언제쯤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잠행을 이어오던 윤 전 총장이 5·18 메시지를 계기로 정치적인 행보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야권 대선후보로서의 본격 행보를 ‘서진정책’으로 택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향후 실제 망월동 묘역을 방문하게 된다면, 직접적인 정치 선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더욱이 최근 윤 총장의 호남지역 지지율이 여권 대선주자들을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텃밭의 적신호’에 신경질을 부리고 있다. 윤석열이 본격적으로로 등판하기도 전에 차기 대선판세가 지각변동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호남표심 대변화?...광주·전라서 윤석열이 이재명, 이낙연 제치고 부상

윤 전 총장은 지난 16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5·18을 기념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있는 역사”라며 “5·18 당일이나 그 전에 망월동 묘역을 참배할 계획은 없지만, 이후 적절한 시점에 방문해 참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배 시점은 5·18 전이나 당일이 아닌, 본격적인 정계진출 선언 직후가 될 것으로 분석됐다. 정계진출을 선언하지 않은 상황에서 광주를 찾았다가 ‘정치 행보’로 비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은 5·18을 ‘살아있는 역사’라고 표현하면서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이 국민들 가슴 속에 활활 타오르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어떠한 형태의 독재와 전제든 이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잠행하던 윤 전 총장이 첫 정치행보로 5.18을 정조준한 데는 계산법이 담겨 있다. ‘서진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내다본 것이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달 16일 전국 유권자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윤 총장은 광주·전라 지역에서 26.7%의 지지를 얻었다. 오차범위 내이기는 하지만, 이재명 경기도 지사(24.5%)를 추월했다. 이낙연 전 대표(11.5%)는 오차범위 밖으로 여유있게 눌렀다. 호남표심마저도 문재인 정부의 거듭된 실정에 실망해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윤석열의 짧은 5.18 메시지에 여당은 ‘분노 폭발’하는 비정상적 행태 보여

윤 전 총장의 짧은 5.18 메시지에 대해 여당에서는 비정상적인 반응들을 내놓았다. 여당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5.18 정신에 의미를 부여한 것만으로도 여당의 분노는 폭발하는 형국이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5·18에 대해서 윤 전 총장이 언급한 게 잘못된다는 궤변을 펴고 있다.

“정치 검찰이 무슨 낯으로 5.18 정신을 운운하느냐”는 비난에서부터, “친일파가 태극기를 든 격”, “윤 전 총장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닮았다”는 주장까지 맹공이 이어졌다. 유력 대선 후보가 된 윤 전 총장의 정치적 메시지가 본격적인 행보로 이어질 것을 견제하는 의도로 풀이됐다.

가장 수위가 낮은 공격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시작했다. 이 전 대표는 18일 오전 MBC 라디오에서 윤 전 총장의 5·18 메시지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단순한 것은 정치에서 좋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 단순한 것 같은 생각은 든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는 “광주를 독재와 저항으로만 볼 것인가. 기본은 독재에 대한 저항인 건 틀림없지만 다른 요소들도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두관의 견강부회, 5.18 정신 운운하려면 문재인 정부 지지하라

대권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김두관 민주당 의원도 ‘윤석열 비판’에 나섰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윤석열 전 총장이 보수언론과 합세해 5.18 정신을 운운하며 문재인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배은망덕이 아닐 수 없다”고 저격했다. 5.18 정신을 말하려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는 견강부회식 논법인 셈이다.

김 의원은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과 검찰을 자기 정치에 이용했듯, 5.18 광주도 자기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면서 “윤 전 총장은 먼저 그동안 검찰이 5.18 광주에 보여왔던 과거를 반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초선의 장경태 민주당 의원도 이날 YTN 라디오에서 “친일파가 태극기 든 격”이라고 윤 전 총장의 메시지를 비판했다. 장 의원은 “지금까지 검찰이 보여줬던 반인권적, 반개혁적인 (성향과) 5.18은 너무나 맞지 않다고 보인다.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같은 방송에 출연한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당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며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맞대응했다.

김의겸의 어거지 논법, 후배들이 따르는 ‘진짜 사나이’는 모두 전두환

청와대 대변인 출신의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아예 전두환 전 대통령까지 소환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윤 전 총장이 5.18을 언급하니, 젊은 시절 전두환 장군이 떠오른다”면서 두 사람이 ‘2단계 쿠데타’를 거쳤고, 후배들이 따르는 ‘진짜 사나이’ 스타일이라는 점, ‘조선일보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후배들이 따르는 ‘진짜 사나이’는 모두 전두환이라는 어거지를 부리는 모습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4월 2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본인 인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4월 2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1동 주민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본인 인증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전 총장을 향한 여권의 맹공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난 17일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윤 전 총장의 메시지를 두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며 “정권의 앞잡이가 돼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검찰, 선택적 수사로 정치와 선거에 개입해서 민주주의를 훼손하려 했었던 정치검찰이 무슨 낯으로 5·18정신과 헌법정신을 운운하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신동근 의원 역시 “독재에 맞서 싸우면서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아는 체하며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며 “독재-민주 구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 지 언제인데, 이건 뭐 복고도 아니고 뭐라 해야 할지 어처구니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청래 의원은 윤 전 총장의 5.18 메시지가 전해진 16일 “윤석열씨가 5.18 정신을 운운했다. 5.18 민주주의 정신을 제대로 아는가”라며 “윤씨가 5.18에 대해 한마디 걸치는 것을 보니 안 어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고 비아냥댔다.

길지 않은 윤 전 총장의 5.18 메시지에 대해서 여당이 수준 이하의 공격을 퍼붓자, 야당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국민의힘 하태경, “윤석열이 5.18 정신을 계승하면 안 되냐” 직격탄

윤 전 총장의 5·18 메시지에 여권의 맹폭이 쏟아지자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지원에 나섰다.하 의원은 페이스북에 "5·18 정신이 민주당만의 것이냐"며 "히스테리 반응"이라고 여권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윤 전 총장은 5·18 정신을 계승하면 안 되느냐"면서 "3·1 운동 때 독립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운동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면 안 되느냐"고 비판했다.

지난 18일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광주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개최된 광주민주포럼 개막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8일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광주 5·18기념문화센터 민주홀에서 개최된 광주민주포럼 개막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는 이어 "3·1 운동 정신을 우리 국민 모두가 계승하듯이 5·18 정신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계승해야 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오만과 독선이 극에 달한 나머지 대한민국의 역사까지도 독점하려 한다. 5·18 정신에 가장 반하는 것이자 독재로 가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사정에 밝은 한 정치컨설턴트는 "여당이 윤 전 총장의 5·18 메시지에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는 그만큼 아프게 받아들이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5·18은 대한민국 모두의 역사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해야 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역사이다. 거기에는 여야가 없고, 진보 보수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죽마고우 이철우 교수, “민주당만 5.18 계승하겠다는 게 5.18정신 훼손” 비판

여당의 맹공에 대해 윤 전 총장은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의 통화에서 메시지를 밝힌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 교수는 “윤 전 총장은 ‘5·18이 우리 국민에 널리 공유된 역사 기억으로서 교육적인 의미를 띠고, 다음 세대도 계속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말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여권 일각에서 윤 전 총장을 향해 "5·18을 말할 자격이 없다"며 공세를 쏟아낸 데 대해 "민주당이 만일 '5·18을 우리만 기념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5·18의 의의를 오히려 훼손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은 지난해 2월 검찰총장으로서 광주를 방문해 검사들에게 5·18 정신에 관해 얘기한 바 있다"며 "1년 남짓 지난 지금 다시 그 5·18 정신을 일관되게 강조한 것에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여당이 왜 5·18로 윤 전 총장을 공격할까? 대단히 잘못된 인식이다”면서 비판했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은 서울대 법대 재직 시절 모의재판에서 검사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는 일화를 예로 들며, 윤 전 총장과 5·18의 인연을 강조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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