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노정희)가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단일화 과정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금태섭 전 의원은 제3지대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한 TV토론 일정을 가까스로 합의, 18일 채널A를 통해 양자토론을 방송하기로 했다,

하지만 안철수 대표가 추후 국민의힘 나경원 혹은 오세훈 예비후보와 또 다시 야권후보 단일화를 위한 TV토론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선관위 관계자, 본지와의 16일 통화서 “안 대표측 서면질의에 대해 검토중”

팬엔드마이크가 선관위를 취재한 바에 따르면, 안 대표측은 지난 15일 선관위에 관련사항을 서면질의했고, 선관위는 답변내용을 검토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16일 팬엔드마이크와의 전화통화에서 “안 전 대표와 금 전 의원측에 TV토론 1회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지난 10일 두 후보측에 ‘지난 2002년 대선에도 후보단일화 TV토론을 1회만 했다’는 사실을 안내했다”면서 “안내한 것이지 가이드라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정몽준 후보 간 후보단일화 TV토론회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측은 ‘TV토론회 1회’가 ‘안내사항’이지 ‘가이드라인’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도 큰 상황이다.

황당한 선관위의 고민,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위한 TV토론 횟수 제한 검토중”

이 관계자는 “안 대표측이 지난 15일 서면질의를 해온 것에 대해서 답변내용을 검토중이다”고 말했다. “질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으니 국민의당측에 질의하라”고 답했다. 국민의당측 관계자는 펜앤드마이크와의 통화해서 “애초에 금 전 의원과 합의한 대로 2회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다. 선관위측에 질의한 답변이 나오는 대로 상황은 좀 달라질 수 도있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안 대표 등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들이 단일화 과정에서 TV 토론회를 여러 번 해도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현재 그 답변도 언제 나올지 미지수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선관위의 횡포가 ‘안내사항’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가 이슈화 되면 안 되나?

안 대표와 금 전 의원은 설 연휴 전, 제3지대 단일화를 위한 두 차례 TV토론에 합의했지만, 시작부터 벽에 봉착했다. 중앙선관위의 ‘이상한 지침’이 화근이 됐기 때문이다. 안 대표측이 “선관위가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후보당 1번의 TV토론만 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면서, 금 전 의원과의 TV토론회가 어렵다고 통보한 걸로 전해진다.

실제로 중앙선관위는 지난 10일 안 대표와 금 전 의원 측에 2002년 대선 국면에서 후보단일화 토론 사례를 토대로, 후보당 TV토론 1회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이 국민에게 널리 알려질 기회를 제한하는 효과를 빚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선관위측이 근거로 2002년 사례를 내세웠다면 ‘시대변화’를 무시한 처사라고 볼 수 있다. 당시에는 공중파 3사 정도만 선거후보 토론을 개최할 역량을 가진 방송사였다. 토론회 개최 횟수를 제한할 명분이 될 수도 있었다.

‘이상한’ 중앙선관위, 수많은 종편채널은 정책토론 말고 연예오락만 송출하라고?

반면에 현재 후보토론회를 개최할 수 있는 방송사로는 공중파 3사 이외에 JTBC, TV조선, 채널A, MBN, YTN, 연합뉴스TV 등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다.

선거 후보별 토론회를 1회로 제한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제한하려는 것 이외의 의도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6일 펜앤드마이크는 중앙선관위 측에 전화를 해 진행상황을 취재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10일 안철수 예비후보와 금태섭 예비후보에게 2002년 대선 국면의 후보단일화 토론에 대한 사례를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단순한 안내라는 의미였다.

선관위 논리대로라면, 종편 방송들은 서울시장 선거와 같은 민생과 직결된 정치경제 현안에 대한 정치 지도자들의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보다는 연예오락프로그램 송출에 매진해야 한다.

선관위 어깃장으로 안철수와 금태섭 간 불협화음 촉발

어쨌든 선관위의 개입으로 인해 15일로 예정됐던 안 대표와 금 전 의원 간 단일화 토론은 무산될 뻔했다. 양측은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안 대표측은 한 번만 가능한 단일화 토론이라면,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때 쓰겠다는 입장이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전략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예비후보를 꺾기 위해서는 국민의힘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정책논쟁을 벌임으로써 표심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양측이 일주일간 실무협상을 벌였지만,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첫 토론회가 불발될 뻔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18일에 첫 토론회를 하기로 양측은 15일 오후 늦게 합의했다. 그렇다면 안철수 후보는 한번만 가능한 토론회를 금 후보와의 토론에 쓰겠다는 것일까?

선관위, “박영선-우상호 TV토론은 정당내 행사라 무제한 가능”

국민의힘 박영선 예비후보와 우상호 예비후보의 경우에는 3차례 TV토론이 예정돼 있고, 어제 1회 토론을 했다. 그 부분에 대한 질문에 선관위 측은 “공직선거법 57조 3항에 의해, 정당이 주관해서 하는 정당 내 후보자 간 TV토론은 횟수에 제한이 없다”면서 “안 후보와 금 후보는 같은 정당이 아니라, 새로운 사례이기 때문에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15일 오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 사이의 첫 TV토론은 무산으로 결론날 뻔했다. 무산됐음을 알린 쪽은 금 전 의원이다. 그는 14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안철수 후보와 1차 티브이 토론을 진행하기 어려워졌다. 야권 단일화를 위한 열띤 토론을 기대하신 시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토론 무산의 원인이 안 대표 측에 있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안 대표측, “1회로 제한된 TV토론은 국민의힘과 2차 단일화 때 써야”

그러나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은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지난 10일 중앙선관위에서 단일화 과정에서 후보당 한 번만 티브이 토론이 가능하다는 통보가 왔다"며 "국민의힘과의 '2차 단일화'에 대비해야 하는 우리로선 고민이 크다. 만약 우리가 이번에 토론 기회를 쓰면 다음에는 티브이 토론에 못 나간다"고 무산 배경을 설명했다.

금 전 의원과의 제3지대 단일화를 하기 위해서, 한번만 해야 하는 TV토론 카드를 써버리기는 부담스럽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안 대표 측은 "TV토론 카드를 이번에 쓰면 다음(토론)에는 TV토론에 못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그 카드를 쓰겠다고 양보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금 전 의원은 ‘두 차례 토론회’를 고수했다. 그는 "선관위가 단일화 TV토론을 한 번만 허용한다는 건, 방송사가 지상파밖에 없던 20년 전 얘기"라며 "안 대표와 내가 15일, 25일 티브이 토론을 갖겠다고 약속했으니,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에서는 안 대표와 금 전 의원의 단일화를 위한 TV토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다만, 양 측이 큰틀에서 합의한 ‘제3지대 단일화 협상’을 깨지는 않을 전망이어서 토론회가 열리지 않을까 라는 전망이 있었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15일 아침 YTN에 출연해 "기왕 3차례 실무협상을 통해 진행한 바 있기 때문에, (금 전 의원 측이) 실무협상만 임해주면 예정된 부분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게 시민들에게 토론을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TV토론회에 큰 의미를 두는 쪽은 존재감을 알리고 싶은 금 후보측이다. 금 후보는 계속해서 여러 차례 TV토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정해진 질문에 외워온 답변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 방식을 요구했다. ‘자유롭고 진지한 토론 공방’이 시민들의 선택권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안 대표 측은 최소한의 형식을 갖춰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게다가 안 대표와 금 전 의원이 선호하는 방송사가 다르다는 점도 예민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 대표와 금 전 의원은 초반부터 삐걱거려서는 시너지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3지대 단일화의 판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했다.

결국 양측은 18일 채널A에서 TV토론을 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양측은 모두 발언, 사회자 질문, 주도권 토론, 자유 토론, 마무리 발언 순서로 약 1시간30분 간에 걸쳐 토론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다른 종편사 중계를 원했던 안 후보가 일부 양보하고, 큰 틀의 주제만 정해놓는 자유 토론을 원했던 금 후보가 각자 조금씩 양보한 결과로 해석된다.

선관위가 야권후보 간 TV토론회 1회로 제약할 가능성 남아

다만, 애초 25일로 계획했던 두 번째 토론회 일정과 내용은 확정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양측은 "실무 협의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중앙선관위 측의 답변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선관위로 넘어간 국민의당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은 언제 나올지 아직은 미지수이다. 선관위가 “정당내 TV토론회는 무제한 가능하고, 정당 간 TV토론은 1회만 가능하다”는 황당한 결론을 도출할 경우, 서울시장 야권 후보들의 정책토론 기회는 극도로 제약당하는 비극적 사태가 초래될 전망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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