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중국 반도체의 과거, 현재,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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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2.04 10:17:16
  • 최종수정 2021.02.0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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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객원 칼럼리스트.

2015년 중국 정부는 야심차게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10년간 1조위안 160조원을 투자해서 15%인 반도체자급률을 2025년까지 75%로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5년이 지난 2020년 현재 반도체 자급률은 여전히 15%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도체 기업들의 실질적 파산도 줄을 잇고 있다. 푸젠진화 반도체, 우한 홍신반도체, 난징 타코마반도체, 쳉두 글로벌파운드리 등의 실질적 파산, 칭화유니그룹의 회사채 디폴트 등이 중국 반도체 산업의 현상황을 잘 보여준다.

실패들이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과거가 되풀이되는 성격이 강하다. 중국 반도체 산업 65년의 긴 역사는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투자가 성과를 냈던 시기는 2000년 이후 10여년이 전부였다. 그 나머지 50여년 동안은 엄청난 돈과 인력을 쏟아 붓고도 실패를 거듭했다. 중국은 지금 다시 그 실패의 습관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는 크게 4 시기로 나뉠 수 있다.

제1기는 1956년부터 모택동 사망까지로 소련식 계획 경제 시대이다. 정신승리로 반도체 산업을 일으켜 보려던 시대였다. 제2기는 1978년부터 2000년까지로 등소평의 개혁개방 시대이다. 반도체 산업은 큰 혼란을 겪었다. 제3기는 2000년부터 2015년까지이다. 반도체 산업이 상당히 성장한 시기이다. WTO 가입으로 중국 경제가 국제화되고 사기업의 활동이 왕성해진 덕분이었다. 제4기는 2015년부터 현재 까지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중화패권 획득의 중요한 수단으로 추진해온 시기이다.

제1기. 정신 승리의 시대(1956-1976): 중국의 반도체 투자는 1956년에 시작되었다. 1949년 공산당 지배체제가 탄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컴퓨터, 반도체, 자동화기술, 무선전자기술을 “4대국가긴급기술”로 선정하고 투자를 시작했다. 해외에 나가 있던 중국인 과학자들을 불러들였고, 北京大, 复旦大 등 5개 대학에 반도체 전공을 개설했다. 1957년 중국과학원이 중국 최초의 트랜지스터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1965년에는 IC집적회로 개발에도 성공했다. 한국에서 강기동 박사가 한국반도체를 설립한 것이 1974년이니까 중국이 17년이나 앞섰던 셈이다.

당시 반도체의 용도는 대부분 군사용이었다. 중국과학원이 만든 시제품을 국영공장들에 넘겨 제조하는 방식이었다. 전국 곳곳에 600여개에 달하는 반도체 공장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부분 돈 낭비였고 속 빈 강정에 불과했다. 중국 최고의 반도체 전문가인 왕수무 박사는 1977년 7월 등소평이 소집한 전국과학자 회의에서 당시 중국 반도체 산업의 상태를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 전역의 600개 반도체 공장들이 1년동안 생산한 반도체가 일본의 대기업 공장 하나의 한달 생산량의 1/10에 불과하다."

공산주의 체제의 속성이 빚어낸 비극이다. 첫째 연구능력은 높은 수준이었지만 생산현장이 받쳐주지 못했다. 1985년 데니스 프레드 사이몬이라는 미국 학자가 상해의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보니 10-15년 전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들을 그대로 사용 중이었다고 하다. 인공위성은 만들면서도 가전 제품은 제대로 못 만들던 소비에트 공산주의 계획 경제의 특징이 중국에서도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시장에 내다 팔 필요가 없으니까 원가절감, 수율 제고 같은 것에 노력을 쏟을 이유가 없었던 때문이다.

둘째,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문혁)이 반도체 산업까지도 정치의 광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중국에서는 1958년부터의 대약진운동 때 철강을 자급한다면서 동네마다 용광로를 만들고 철을 생산하는 일이 벌어졌다. 금속 식기, 농기구까지 용광로로 녹여 버렸다. 그렇게 하면 15년 안에 영국을 추월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정신승리의 광기였다.

똑같은 일이 문혁기에 반도체에서도 일어났다. 길가의 할머니도 만들 수 있는 것이 반도체다(街道老太太在弄堂里拉一台扩散炉也能做出 半导体). 전인민이 나서서 반도체를 만들자(全民搞半导体). 이런 구호 아래 40여개의 반도체 공장이 갑자기 설립되었다. 과학자들 엔지니어들은 자본주의자, 친미주의자라며 모욕과 탄압을 당했다. 그러는 사이에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허울 뿐인 존재로 전락했다. 1976년 모택동이 사망할 때까지 이런 분위기는 지속되었다.

한국전 이후 심화되는 냉전은 중국 산업을 더욱 낙후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물론이고 소련과의 관계마저 악화되어 중국은 과학기술 측면에서도 완전한 고립 상태로 빠져들어갔다.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다 보니 공장도 오지에 건설하게 되어 생산성을 높이지 못했다.

적의 군대와 직접 대면할 동부 해안지역을 1선, 중부 지역을 2선, 내륙 깊숙한 서부와 서북 지역을 3선이라고 정하고 주요 군수 시설과 중공업 시설, 과학 시설 등을 3선에 배치했다. 반도체 공장 역시 오지인 산서성, 귀주성 등 3선에다 건설했다. 글로벌 시장과 연결이 되어도 될까 말까 한 반도체 공장들을 산골 깊숙이 끌고 들어갔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제2기. 개혁개방과 시행착오(1976~2000): 1976년 모택동이 사망했다. 새로운 권력자로 등장한 등소평은 정신승리식 모택동 방식을 버리고 1978년부터 개혁개방으로 나아갔다. 반도체 산업에도 투자붐이 일어났다. 33개 지방정부가 외국 설비와 기술을 들여다가 24개 반도체 제조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시설만 들여왔을 뿐 다룰 줄 아는 인력이 없어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986년부터는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 정부가 주도해서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 정책을 시작했다. 외국 반도체 업체들에게 중국의 노동시장과 상품시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신 기술을 이전을 요구하는 정책이다. 시장과 기술을 교환한다 해서 시장환기술 정책이다. 이때에 네덜란드의 필립스, 일본의 NEC 등이 중국에 합작 공장을 설립했다. 하지만 말이 합작공장이지 실제로는 국영기업과 비슷한 수준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외국 기업들도 첨단신기술이 아니라 철지난 설비와 기술만을 가지고 들어왔다. 이 정책도 실패했다.

기업이 아니라 국가와 관료들이 사업 주체라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지만 인재의 고갈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었다. 문혁 기간 10년 동안 교육이라곤 모택동 어록을 외우는 것 뿐이었다.  반도체 같은 고급 기술에 대한 교육이 이뤄질 리 없었다. 반도체를 다룰만한 인재도 키워내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설비만 사들여 놓으니 실패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의 반도체 투자도 결국 돈 낭비였다.

제3기. 민간 참여, 반도체 산업 부흥(2000~2015): 2001년 WTO가 중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WTO 회원국이 되려면 자유무역 시장경제를 해야 하는데 중국은 여전히 공산주의 국가였다. 중요 산업은 모두 국영기업이 몫이었다. 당연히 WTO 회원국들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미국, 특히 클린턴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중국이 WTO 회원 자격을 부여 받았다. 그러다 보니 중국도 WTO 회원국으로서 어느 정도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반도체를 포함한 중요 산업에 대해서도 민간 기업의 참여를 허용했다. 덕분에 많은 민간 반도체 기업들이 생겨났다.

대표적 사례가 2000년 대만 사람 장루이진이 설립한 SMIC이다. 설립지역은 상해였고 사업방식은 위탁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파운드리로 시작했다. 그후 여러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디램 사업으로도 진출했지만 삼성전자, 하이닉스와의 가격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실패했다. SMIC의 2019년 매출액은 31억 달러, 3조원 수준이며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5위에 해당한다. 같은 해 2000년 기존 패키징 공장을 개편한 패키징 전문 기업 장수창장기술 JCET 가 설립되었다.

그후로 수많은 웨이퍼 가공 공장들이 세워졌다. 하이닉스와 삼성전자도 이 시기에 중국에 공장을 세웠다. PWC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중국 전역에 170개의 웨이퍼 가공공장, 123개의 패키징 및 검사 공장이 있다. 중국의 지방정부들이 경쟁적으로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선 결과물이다.

반도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기업들도 많이 생겨 났다. 사실 중국이 스마트폰, 가전 제품, 자동차 분야에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그 제품들이 대부분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AP(Application Processor)라고 부르는 맞춤형 반도체들이다. 그러다 보니 AP를 설계해주는 기업들이 많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 사례가 2004년 설립된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다. 2017년 현재 중국의 팹리스 업체는 1300개에 달한다.

기업의 숫자가 많아진 것에 비해서 역량은 그리 대단한 수준에 오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시장점유율은 5%로서 47%의 미국, 19%의 한국에 훨씬 못 미친다. 그래도 2000년 당시 0%에 비하면 큰 발전인 것이 분명하다. WTO 가입 이후 민간 기업의 참여를 허용한 덕분이었다.

제4기. 전쟁 같은 반도체 굴기 (2015~현재): 2013년 시진핑이 최고 권력자가 되면서 중국은 부쩍 반도체 자급자족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선포해서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를 위해 2015년부터 10년간 1조위안 우리 돈으로 16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2020 현재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15.9% 이다. SK 하이닉스 삼성전자, 인텔 같은 비중국 기업을 제외하고 순수한 중국에 본부를 둔 기업만 따지면 5.8% 불과하다. 그것을 70%로 높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중국이 반도체 자급에 나선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보인다. 경제적으로는 반도체 수입을 줄여 외국으로 나가는 돈을 줄이자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 더욱 큰 이유는 미국과의 패권 쟁탈에서 승리하기 위함이다. 중국은 세계 곳곳에서 미국과 대결을 벌이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그 패권전쟁에서 이기자면 미국 기술로부터 독립해야 하다. 반도체 자급은 일대일로 정책과 더불어 시진핑 시대 중국의 세계 패권 도전의 핵심 수단으로 떠올랐다.

중국이 도전 의사를 분명히 밝혔으니 패권국인 미국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인 제재에 나섰다. 화웨이, ZTE, SMIC 같은 중국 기업이 미국 대만 한국 등 서방의 반도체를 수입하지 못하게 차단했다. 또 중국 스스로 첨단 반도체를 만들지도 못하도록 첨단 장비의 공급도 막았다. 반도체 자급을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오던 중국으로서는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를 대규모 투자와 한국 대만 일본의 인력 빼 오기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제재의 효과를 무력화 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DRAM 생산을 위해 6조원이나 투자해온 푸젠진화 반도체는 제재를 못 견디고 2019년 디램 사업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세계2위의 화웨이는 TSMC에 대한 반도체 위탁생산이 차단되면서 스마트폰 사업을 접어야 할 지경에 처했다. 

반도체 굴기의 상징 같았던 칭화유니그룹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반도체 펀드로부터 1387억 위안, 우리 돈으로 무려 24조원을 투자받은 기업이다. 막대한 자금으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외국의 기존 반도체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웨스턴테크놀로지, 한국의 SK 하이닉스, 미국의 대만의 미디어테크 등에 인수, 합작 제안을 했지만 각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나마 자회사인 YMTC 는 제법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니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2020년 12월에 삼성전자 SK 하이닉스와 같은 수준인 128단짜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율도 70% 수준으로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재정적으로는 엄청난 자금난에 처해있다. 2020년 11월, 13억위안 22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부도를 선언했다.

국영기업이기 때문에 회사 전체가 파산하지는 않겠지만 뭔가 뜻대로 잘 안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의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금지가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하다. 이러다 보니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한다는 목표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2020년 현재 자급률은 15.9%로 2015년 수준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실패가 미국의 제재 때문 만은 아니다. 무자격자의 투자, 사기성 투자로 보이는 사례들도 많다. 우한 홍신반도체의 실패가 대표적이다. 7나노급 디램을 생산하겠다며 우한에 공장을 짓고 있었다. 대만 출신 엔지니어들도 확보했다.  7나노 급이면 삼성전자, TSMC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뤄지기만 한다면 중국은 단숨에 반도체 세계 정상에 거의 근접하게 된다. 우한 시정부는 중국 중부지방의 반도체 허브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런데 2020년 9월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1280억 위안 우리 돈으로 무려 20조원이 투자되었는데 공장 건설조차 마치지 못한 것이다. 애초부터 사기에 가까운 사업인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2020년에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며 등록한 기업의 숫자가 13,000에 달한다고 한다. 워낙 돈이 풍성하다 보니 어중이떠중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기꾼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이처럼 중국 정부의 계획과 달리 반도체 기업들이 부진한 성과를 보이자 공산당 정부가 직접 나섰다. 칭화유니그룹의 경우 민간 지분은 49%에서 33% 줄고 국가 지분은 67%로 늘었다. 실질적으로 국유기업이 된 것이다. SMIC, HSMC 홍신반도체도 모두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체제로 들어갔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2019년 10월 현재 중국 민영 기업 중 적자내는 비율이 17.7%인데 국영기업은 33%이다. 거의 두배나 적자 기업이 많다. 반도체도 국영기업 비율이 늘어날수록 실패한 투자들이 많아질 것이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호기일 수 있겠지만.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 시기 열정에 들떠서 반도체 투자를 했지만 공장은 고철 덩어리가 되었고 투입된 돈들은 모두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과학자들과 공산당과 공무원들이 반도체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반도체 자급율을 15%정도까지라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민간 기업들, 외국 기업들의 자유로운 비즈니스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공산당이 직접 사업에 나서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국영기업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 중국은 다시 그런 길로 들어서고 있는 듯하다. 연이어 터지고 있는 부도 소식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앞날을 예고해주는 듯하다.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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