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의 취임식과 현판 제막식을 시작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21일 공식 출범했다. 김진욱 공수처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끝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20일 전체회의를 열어 여야 합의로 김진욱 공수처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경과 보고서를 채택한 것이다.

비록 여야 합의라지만 야당은 보고서에 ‘수사 경험 부족’ 등의 이유로 부적격 의견을 일부 담긴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가 무난하게게 채택된 건 의외라는 반응이다. 애당초 주식 문제나 위장 전입 문제, 육아 휴직 문제 등에 대해 날선 공방이 예상되었는데, 실제 인사청문회에서는 그런 도덕적인 문제가 크게 거론되지 않았다.

공수처의 정치적 공정성 강조하고, 과거 잘못은 쿨하게 사과

야당이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데는 청문회장에서 보인 김 후보자의 태도나 답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독립성을 지켜낼 수 있겠냐는 야당의 계속되는 추궁에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은 공수처의 생명줄”이라는 모범답안을 되풀이했다. 너무 교과서적이고 원론적인 답변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답변하는 태도에서 진실성이 느껴진다는 평이 많았다.

국회 법사위 소속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도 20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인사청문회에서) 원론 수준 답변이 많았지만 큰 도덕적 하자는 없었다”고 했다. 전 의원은 19일 인사청문회에서 육아휴직과 관련, “국민적 공감 의식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든다”라는 지적을 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일반 국민과 비교해 많은 혜택을 받은 측면이 있어, 그 점에서는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쿨하게 편법 육아 휴직 의혹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뻔뻔한 태도로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에 급급한 고위 공직자들의 모습에 익숙한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갔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이다.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대한 펜앤마이크의 기사에서 독자인 양해율 씨는 “공수처장 괜찮은거 같은데 합리적인 답변에다 몰상식하지는 않은거 같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김학의 출국금지 과정 ‘불법성’ 지적, 문재인 정부는 머쓱

야당 의원들이 김 후보자에 대해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준 답변은 또 있다. 그 답변은 벌써 ‘제2의 윤석열’ 느낌을 준다. 김학의 전 차관 출국금지 의혹 사건의 절차적 정당성을 묻는 말에 김 후보자는 “헌법상 원칙이 유죄 확정 전까지 무죄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누구한테도 이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간접적으로 그 불법성을 지적한 것이다.

김 전 차관 출국금지 과정이 합법적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공세를 펴고 있는 야당 입장에서는 괜찮은 답변인 셈이었다.

김 공수처장은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추천으로 후보에 지명된 인사로, 언론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베일에 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파벌에 둔감한 개인주의자, 서울대 인문대서 고고미술사학 전공

법조계 인사들에게 들은 정보를 종합해 보면 김 공수처장은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정치적인 성향이 거의 없다고 한다. 헌법재판소 내에서도 비주류에 속할 만큼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서 자유로운 편이라는 평이다. 누구누구 라인으로 분류되는 편도 아니고, 아랫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스타일도 아니라고 한다.

김 공수처장은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으로 근무했지만, 처음부터 헌법재판소에 임용된 게 아니다. 판사와 김앤장을 거친 뒤 헌법재판소에 늦게 들어갔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고, 업무처리 능력이 훌륭하고 머리가 천재에 가깝게 좋다는 평을 듣는다.

실제로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 전공을 하다 우연히 법학 강의를 듣게 되어서 법조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사청문회에서도 밝혔다. 우연히 강의를 듣고 사법시험을 준비해서 법조인이 됐다는 것만 봐도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임을 유추할 수 있다.

헌재 시절 취재 기자와도 마찰, ‘영혼없는 공무원’ 아냐

김 공수처장의 성향을 드러내는 일화가 있다. 제4대 헌법재판소 소장인 이강국 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 공수처장이, 이강국 소장 퇴임 후 새로 임명된 조용환 헌법재판관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이를 취재하던 기자와 마찰을 빚었다고 한다. 김 공수처장이 가만히 참고 있지만 않고, 그 기자에게 할 말을 다 했다는 일화이다.

한마디로 고분고분 권력자의 눈치를 보고 따르기만 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 스타일은 아니라는 평가가 대세이다.

“위 아래 소통 잘하고 업무처리 깔끔” 평판

하지만 업무 처리는 깔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랫사람, 윗사람 가리지 않고 의견을 수렴하기 때문에 문제를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평가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부드럽지만, 예의 없는 건 싫어하고, 딱히 돈 욕심이 많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한다.

김앤장의 변호사로 12년간 일하다가 뒤늦게 헌법재판소로 들어간 것을 보아도 ‘상업적인 변호사’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 있다. 오히려 학문에 뜻이 있어 교수 생각도 있었으나 학교에 자리 잡을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김 공수처장에 대해 ‘법조인 특유의 법치주의에 입각’해서 ‘제2의 윤석열’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극단적인' 기대가 나오는 상황이다. 무소불위 공수처를 잘 운영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야당이 적극 참여해, 민변 공수처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기대가 난망하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정치적 신념이나 소신이 뚜렷하지 않아 눈치보기만 할 수 있다는 예상이 높은게 사실이다. ‘영혼없는 공무원’ 스타일은 아니지만 문제를 만드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검찰이나 정권 어느 쪽과도 각을 세우지 않아 존재감을 느끼기 힘든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예상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김 공수처장이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서, 최재형 감사원장이나 윤석열 검찰총장처럼 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울 수도 있다는 평가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소속 한 법사위원은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청문회에서의 답변도 대부분 애매모호 해서 소신이나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고 평가했다.

예상치 못했던 사태 전개가 역사적 진보 이뤄, 공수처가 어디로 튈지 몰라

전반적인 평가를 종합해보면, 김 공수처장은 조직 논리에서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판사, 변호사, 헌법재판소를 두루 경험한 탓에, 특정 조직에 충성하는 성향이 아니기에 중립적으로 공수처를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청문회에서 김 후보자는 ‘야당 의원들이 공수처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으로 채워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거듭 제기’하자, "국민의힘에서 적극 참여해, '민변 공수처'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당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류 역사에서 예기치 못했던 사태가 진보를 이뤄내는 경우가 많았다.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때려잡고 검찰을 길들이기 위해 급조한 공수처가 어떤 방향을 튈지 가늠하기 힘든 형국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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