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지난 2년 동안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산 규모 약 70억 달러
이란 정부, 그간 한국 정부에 자산 동결 해제 요구해 왔지만 관철되지 않은 데 대해
한국 국적 선박 나포해 자산을 돌려받기 위한 담보 삼은 것이라는 분석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사진=연합뉴스)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에 나포된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사진=연합뉴스)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를 나포한 것과 관련해 이란 정부가 “인질을 잡고 있는 것은 오히려 한국”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한국케미’ 나포의 이유가 한국 정부의 국내 이란 정부 자산 동결에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5일(현지시간) 알리 라비에이 이란 정부 대변인은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선박 나포가 ‘인질극’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일축하면서“이란 자금 70억 달러(한화 약 7조6000억 원 상당)를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그런(이란이 인질극을 벌인다는) 주장에 익숙하지만, 만약 인질극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금 70억 달러를 근거 없는 이유로 동결한 한국 정부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 정부 측이 말한 ‘70억 달러’는 지난 2년 동안 이란 정부가 한국에서 출금하지 못한 8조원 안팎의 돈을 말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이란 정부가 보유한 해외 자금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지난 2010년 미국 정부가 이란에 대한 금융 제재를 내린 데 대해 한국과 이란 정부는 제재를 피할 방편으로 수출입 대금 결제 용도의 원화 결제 계좌를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에 각각 개설했다. 이란이 한국에 원유를 수출하면 달러 대신 원화로 대금을 결제하고 이란이 한국 기업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할 때 원화 계좌를 사용해 대금을 치르는 식의 거래를 해 온 것이다. 이런 식의 거래를 통해 한국은 이란에 대한 달러 결제를 피함으로써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를 피내 나갈 수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들어 대(對)이란 제재 강도가 높아지며 이란과의 교역 길이 완전히 차단됐다. 이란 중앙은행 명의의 우리·기업은행 계좌는 동결된 것이다. 여기에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영업이 정지된 후 멜라트은행이 한국은행에 예치한 돈을 더하면 국내에 동결된 ‘이란 자산’의 규모는 이란 정부가 말한 70억 달러 정도가 된다는 것이 한국 정부 측 설명이다.

이란 정부는 그간 한국 정부에 자산 동결을 해제하라는 요구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 해결의 방편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하는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공동 구매 미 배분 사업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 통해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확보하고 이 대금을 한국 내 동결 자금으로결제하는 방안이 논의돼 왔다고 한다. 이는 한·미 양국 정부가 모두 협의를 바친 사항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란 측은 이 자금이 달러로 환전돼 미국 은행으로 송금되는 과정에서 미국이 이 돈을 동결할 가능성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에 자금을 확실히 받아내기 위한 ‘담보’로 한국 선박을 나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편, 이란 외무부는 6일(현지시간) 이란에 급파 예정이었던 한국 대표단에 대해 “외교적 방문은 필요 없다”고 밝혔다.

이날 이란 외무부는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한 대면인 명의 성명에서 “한국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며 “이번 사안에 대한한국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고 거절한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란은 해양 오염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으며, 향후 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오는 6일과 10일 각각 이란을 찾을 예정이었던 고경혁 아시아중동국장과 이종건 1차관의 이란 방문에 대해 “이미 논의 중이었던 것이고 미래에 이뤄지겠지만, 이번 사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양국이 아직 어떤 형태의 방문에도 합의에 이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앞서 한국 선박을 나포한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 조치는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 규제를 반복적으로 위반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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