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제 1야당인 국민의힘이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있다. 180석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요정치 쟁점을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한 뒤, 법원으로 달려가 사법적 판단을 호소하고 있다.

민주당의 숫적 우위 감안해도 이처럼 무기력한 야당 없었다

그 과정에서 타협을 도출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거나 실력저지를 위한 단호한 대여투쟁 국면도 찾아볼 수 없다. 민주당이 압도적인 숫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다고 해도, 대한민국 헌정사상 이처럼 무기력한 제1야당의 모습은 존재한 적이 없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를 주축으로 한 국민의힘 지도부의 정치력은 역대 최악의 수준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민의 힘은 최근 1주일 동안에만 해도 3차례나 민주당의 일방통행식 독재정치에 패배한 뒤 사법부에 그 판단을 구하는 행태를 보였다.

① 변창흠 장관 임명 강행하자 지난달 28일 대검찰청에 고발장 접수

첫 번째는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에 대한 고발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의 격렬한 반대와 민심의 따가운 질타에도 불구하고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자, 국민의 힘은 지난달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변 장관을 강요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변 장관이 서울도시주택공사(SH)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의혹과 지인을 특혜 채용한 의혹에 대해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제기된 의혹들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번갯불에 콩 볶듯이 국토부 장관 인사를 단행한 것은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처사이고 문재인 정부의 독주를 알린 것"이라며 "의회민주주의를 무시당한 만큼 변 장관의 위법행위를 사법적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성토했다.

민주당은 앞서 지난 달 28일 변 국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단독으로 채택했다. 국민의힘은 “논의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위원장석을 둘러싸고 거세게 항의했지만, 상임위 과반 의석인 여당이 표결을 밀어붙였다.

② 29일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공포되자, 시민단체 등 뒤에 숨어 헌법소원 제기

두 번째 무기력한 풍경은 민주당이 지난달 14일 강행 처리한 ‘대북전단 살포금지법’과 관련해서 펼쳐졌다. 국민의힘은 통과된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에 대해 헌법재판소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이 법이 지난달 29일 공포되자 국민의힘은 시민단체 등 뒤로 숨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등 시민 단체 27곳은 이날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 전단 금지법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가운데서는 태영호 의원만 동참했다. 당초의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태 의원만 개인자격으로 헌법소원에 동참한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대한민국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독소 조항이 담겨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하원에서 관련 청문회를 추진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었으나, 국민의힘이라는 제1야당 차원의 대책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다만 탈북민 출신 지성호 의원(국민의 힘)은 전단금지법의 처벌 조항(3년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삭제하는 조항을 담은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지 의원은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날치기로 처리한 이번 법은 국민의 기본법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반인권적 과잉입법"이라고 질타했다.

③ 공수처장 후보 추천권 박탈당한 뒤 행정법원 판단에 의존

세 번째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 최종 2인이 선정된 것에 반발해 야당 측 추천위원들이 무효확인 소송과 함께 추천의결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과 관련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야당 추천위원인 이헌 변호사와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지난달 28일 최종 후보 2명을 선정한 것’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에 집행정지 신청을 접수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 효력을 법원이 정지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공수처 무력화’에 나서겠다는 의도에서다.

이헌 변호사와 한석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공수처장 후보 추천권을 침해당한 당사자로서 직접 소송에 나선 것이다. 이 소송 역시 국민의힘이 직접 하지 않고 두 변호사의 등 뒤에 기대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일방적인 공수처장 후보 추천이 합의 정신을 짓밟은 '독선의 극치'라며 강하게 비판했지만, 사법부의 힘을 빌어 여당의 안하무인식 독주에 제동을 걸려고 한다는 점에서 또 다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암울한 ‘정치의 실종 시대’가 장기화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즉시 인용하면 문재인 대통령은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수처장을 임명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윤 총장 징계 사태와 똑같은 형태로 법원 판단에 따라 공수처장 임명 여부가 결정되는 셈이다. 이번주 목요일인 7일에 서울행정법원이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을 살펴보는 집행정지 심문을 연다.

야당 추천위원들은 야당의 비토권을 없앤 개정 공수처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신청할 계획이다. 이 변호사는 펜앤드마이크와의 통화에서 “비토권은 야당 위원에게 부여된 특별한 허가와 같은 것인데, 그런 권리 자체를 없애 버렸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난 2월 국민의힘이 제기한 '공수처법' 헌법소원도 아직 위헌 여부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사법부를 통한 견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여당의 18개 상임위원장 독식체제 ‘헌납’한 게 근본 패착

이처럼 국민의힘이 국회 내에서 최소한의 정치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사법부 판단에 의존하려는 상황은 21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독식하면서부터 예견되었다는 지적이 높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해 6월 29일 국회의장 주재로 만나 최종 담판에 나섰지만, 30여 분 만에 협상이 결렬되었다. 관행적으로 야당 몫이었던 법사위원장 자리마저 차지하겠다는 여당의 고집에 주 대표는 판을 깸으로써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결과 야당은 국회의 상임위원장을 단 한 곳도 맡지 못한 가운데,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이는 민주당이 180석이라는 압도적 숫적 우위를 점한 것보다 더 치명적인 힘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국민의힘이 국회 내에서 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최소한의 권력을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국회를 보이콧하지도 못했다. 그럴 경우 국민적 비판의 화살이 야당을 겨냥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4.15총선에서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상임위원장 협상 전략에서도 대실패한 게 제1야당의 무기력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적 비극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힘만 못 쓰는 게 아니라 힘을 쓰려는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이 여당의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강행 처리 등을 이유로 간사직 사의를 표명한 후, 아직도 법사위 여당 간사가 임명되지 않고 있다. 누구 하나 관심을 가지는 의원이 없다는 표현이 더 맞다고 봐야 한다.

文 정부 실정으로 지지율 오르는 국민의힘, ‘도덕적 해이’ 조짐

국민의힘 지지율은 최근들어 반등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리얼미터 발표에 의하면 국민의힘은 지난주보다 2.2%포인트 오른 33.8%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 29.3%(1.3%포인트↓)와는 오차범위 밖 격차였다. (YTN 의뢰로 21일~24일 18세 이상 2008명 조사.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 수치에 차이는 있지만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국민의힘은 상승세(국민의힘 11월 둘째 주 18%→12월 셋째 주 21%)를 타고 있다.

이런 상승세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잘해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총체적 난맥상 및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에 불과하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연말 사석에서 “정부 실정 때문에 당 지지율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한 참석자의 지적에 “야당은 원래가 정부·여당 실수로 먹고사는 거야”라고 답했다고 알려졌다.

그야말로 ‘도덕적 해이’를 드러내놓고 즐기고 있는 셈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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