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배민 교사]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중간이 아닙니다
[기고/배민 교사]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중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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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속 사람들이 서 있는 곳은 중간이 아니다. 대부분 한참 왼쪽이다. 이미 이렇게 된지도 한참 되었다. 최근에 보듯, 신천지 같이 소위 ‘이단’으로 낙인 찍힌 집단과 관계되는 것이라면 사진 한 장에 대한 설명 만으로도 명예 훼손으로 몰아갈 수 있을 정도의, 워낙 집단주의성이 강한 사회다 보니 개개인들이 그걸 느낄 기회가 잘 없을 뿐이다.

나 역시 무지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건, 인간이 먹어야 산다는 사실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인식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무지의 빈자리를 겸손으로 채우게 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 그 빈자리는 늘 우월감이나 열등감, 그리고 증오와 친밀감 등의 근거 없는 (사실 감정에는 논리적 근거 따위가 없다) 감정으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지적이고 도덕적인 인격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도 증오와 같은 감정은 그의 이성을 흐리게 하는 위험한 것이다. 그런데 이성이 결여된, 이성을 쓰지 않아서 뇌가 화석화된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친밀감의 감정 조차도 위험할 수 있다.

가령 대깨문과 같은 집단 감성 중독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자신의 감정 만’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다. 집단 감성의 큰 물결에 자신의 존재를 과감하게 내던지고 살아가는 결과로 감정이 인간을 괴물로 만들 수 있음에 무방비한 채로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들도 자신들과 똑같이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등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는 놀라운 모습이 아니다.

사회주의를 비롯한 인간의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집단주의 이데올로기들 (가령 유교 성리학이나 근대 이래의 사회주의 등)은 그 교조적 신념에 반하는 이단의 존재, 즉 그 이데올로기를 위협하는 존재를 그들 세계관 안에서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런 자들은 감옥이나 수용소에 보내거나, 살아 숨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여긴다. 과장이 아니라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이 그런 짓거리를 500년간 했었고, 20세기 나치즘이나 파시즘 일당들, 정확하게는 그들을 지지한 세뇌된 집단 감성 중독자들이 물리적으로 자행한 일들이 그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 해도 그들 ‘자신’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건지 제대로 말하는 것을 좀체 들을 수 없다. 이는 내가 나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적 편향성을 드러내고 사상의 스펙트럼 상에서 우파에 서있음을 인정하는 것, 가령 ‘한국 사회는 개인이 아직 미분화(未分化)된 사회이며 보다 개인주의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을 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내 생각의 바탕 위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균형점을 모색해 나가려는 자세와 선명히 대조를 이룬다.

가령 내가 대깨문들에게 ‘그럼 당신의 주장이 무엇인지’, ‘당신이 바라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지’ 물었을 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해지는 사회,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아무도 돈이 없다는 이유로 천대받지 않는 사회’ 등 대개 교과서적인 원론적 문장일 것이다. 일반적 고등학생 수준의 사고이다. 즉 아름다운 말만 하는 이들 앵무새들은 화석화되어 이제 한 줌도 남지 않은 그들 뇌의 이성의 조각들을 동원해 그런 교과서적인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자신의 주장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좌파) 정책들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단지 그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논하는 모습이 의미하는 바는, 그들은 특정 인물 혹은 이슈에 대한 자신들의 시각이 주관적인(subjective) 혹은 논쟁적인(controversial) 사고임을 거부함을 의미할 뿐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아름다운 문장이 자신들의 역사적 시각의 근거가 될 수도 없다. 그러함에도 그들은 가령 ‘5.18은 민주화 운동이다’, ‘일제시대 한국인은 수탈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등 사회적으로 주입된 ‘역사적 해석’을 자신들의 판단에 유일한 근거이자 객관적인 진리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들의 사고 회로를 따르게 되면 학문이 존재할 이유도 없고 토론이 존재해서도 안된다.

즉, 그들은 자신의 의견이 ‘right opinion’이 아닌 그저 ‘one opinion’이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래서 마치 그들의 사회적 시각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들의 어줍잖은 논리 회로를 돌리며 ‘상식’을 언급하면서, 그를 사회적 ‘이단’으로, 즉 자신들이 그리는 아름다운 세상의 실현에 방해가 되는 인간이자 ‘wrong person’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이들의 정치적, 역사적 시각에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극우파로 낙인 찍힌) 우파 사람들, 가령 지만원이나 윤서인은 단지 사회에 해악을 일으켜 다수의 사람들을 상처주고 명예를 훼손하는 악당일 뿐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좌파적 사고’를 하는 한국의 집단 감성 중독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좌파라는 사실에 무지하다. 즉, 자신이 집단주의자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큰 정부’와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입장이 좌파 사회관임을 모르기에, ‘차별 금지법’처럼 개인의 인격과 양심에 관한 부분에까지 국가가 간섭하여 개인의 발언에 옳고 그름을 가려 내겠다는 사회통제(social control)적 법안에 찬성하면서도 자신이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실 듣기 좋은 것(what sounds good)은 다 자신이 생각할 줄 안다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이고, 듣기에 불편한 것은 자신은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지극히 유아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좋아 보이는 것(what feels good)은 실제로 좋은 것(what really works)과 당연히 다르다.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그래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차이를 알지만, 테이블에 앉아 잡담으로 세상을 파악하는, ‘탐욕스런 시장’에서 멀리 떨어져 편안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를 느끼긴 힘들다.

나는 그런 집단 감성 중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 편견의 기원이 책도 아니고, 사유의 결과도 아닌, 단지 그들을 둘러싼 (이성에 기반을 두지 않는) 동질적인 집단 감성 중독자들과의 아편과 같은 대화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철저히 자신의 동류 집단과만 공유하는 편파적인 ‘친밀감’으로 자신의 옹졸한 세상을 장식하고, 그 안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부류의 인간임들을 알고 있다. 알량한 이기심에 입각한 자신들의 편안함과 유익을 추구하는 때를 제외하곤, 그들의 철학적 사고나 사회적 시각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개인으로서의 나’는 없으며 ‘우리’만이 중요한 의미를 차지할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애당초 ‘우리’를 내세우는 집단 감성은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의 욕구이다. 생존을 위해 탁월하게 진화된, 특히 집단 속에서 탁월하게 자신을 보존하고 권력을 안겨주기도 하는 생존 기제이다. 사회학이나 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인간은 집단주의적 사고를 한다. 이게 하나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인간이 그렇게 진화해온 것이다. 인간은 백로 보다는 개미에 훨씬 가깝게 행동을 하는 종이다.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말임을 의미하진 않는다. 대부분의 인간은 ‘갈매기 조나단’처럼 자신의 인생에서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개인주의의 체험을 결코 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자들이 통탄해한 비참한 현실이지, 그들이 인생을 잘살았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한국의 많은 집단 감성 중독자들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 자신은 약자고 피해자고 억울하게 손해 당하는 쪽이라는 값싼 자기 감정의 합리화 속에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더욱이 그들의 말과 생각은 하나같이 한국사회가 인정하는 ‘안전하고 올바른’ 사고와 일치하기에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다. 너무 무지해서 내가 무지함을 심지어 ‘자각’하고 있고, 게다가 한참 오른쪽에 서 있는 나야말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다. 점차 강화되는 집단주의 속 한국 사회에서 나는 개인주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회적 이단이며, 불순분자이자 사회적 위험인자, 즉 악당임을 요즘 들어 점점 느끼게 된다.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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