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잘 지는 것이 지저분하게 이기는 것보다 낫다”고 외치는 시한폭탄 같은 책
[신간] “잘 지는 것이 지저분하게 이기는 것보다 낫다”고 외치는 시한폭탄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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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전문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의 신작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총 10권 분량의 대작 시리즈 중 제1권, 한반도의 깊은 잠, 제2권은 개항 전야 발간

=“세계사라는 판 위에 우리 역사를 올려놓고 봐야 그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출판사의 보도자료 첫 머리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눈에 띈다.

<한 줄 소개> 세계사의 판 위에 우리 역사를 포개놓고 보기.

<40자 소개> 조선후기부터 개항과 망국까지, 우리가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최초의 이성적인 작업.

<200자 소개>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조선후기부터 개항과 망국까지, 세계사의 판 위에 우리 역사를 포개놓고 한국 근현대사의 실체와 그 멘탈리티를 찾아가는 최초의 이성적인 작업.

책 제목이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다. 제1권은 한반도의 깊은 잠, 제2권은 개항 전야. 제1권, 제2권이란 넘버가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앞으로 계속 시리즈로 나올 것 같다. 출판사 측에서는 "이 시리즈는 총 10권으로, 앞으로 3~4개월마다 후속작이 발표된 예정"이란다. 

신간안내에서 눈길을 잡아 끄는 대목이 발견된다. ‘조선후기부터 개항과 망국까지 가장 냉철하고 객관적인 한국 근현대사’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의 개항에서부터 망국에 이르는 과정을 세계사라는 바탕위에서 펼쳐가는 책이란 뜻이다.

“한국은 세계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세계사와 날줄 씨줄로 촘촘히 엮여 있어 세계사의 판 위에 우리 역사를 포개놓고 봐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계시리라 믿는다. 다른 나라는 그런데, 한국만 예외다. 현재 우리 역사학계는 ‘일국사적 관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세계사라는 거대한 몸통으로부터 한국사를 떼어낸 다음, ‘국사’라는 특수 시선으로 우리의 모습을 조망하는 방법론이 격류처럼 학계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

일국사적 관점의 역사 서술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와중에 세계사적 관점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조망한 대작 시리즈가 발간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국사적 관점의 역사 서술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와중에 세계사적 관점에서 우리 근현대사를 조망한 대작 시리즈가 발간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나라와 역사를 망치는 일국사적 관점의 역사 서술

일국사적인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해석하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그저 주자성리학의 도(道)를 지키겠다고 맹목적으로 위정척사를 외쳐왔던 시대착오도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정당한 방법론이었다고 빠져나가는 논리를 제공한다. 영국과 러시아의 엄중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 벌어지는 와중에 패권 도전국인 러시아를 지속적으로 한반도로 끌어들여 영국의 글로벌 대(對)러시아 포위망에 구멍을 낸 망국 외교도 ‘고종과 명성황후의 자주적 외교’로 둔갑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근대사는 일국사적 관점에 의해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 판타지나 다름없는 민족주의적·자주적 몽상의 역사로 분식되어 버렸다. 일국사적 관점에서 대한제국의 멸망을 들여다보면 조선 500년의 총체적 부실로 인한 대붕괴가 아니라, 이완용과 을사오적의 매국행위로 인한 결과물로 둔갑되고 만다.

제1·2차 아편전쟁, 페리 함대의 일본 내항으로 불붙은 서세동점의 시기. 세계는 패권 세력 영국과 도전 세력 러시아의 각축장이었다. 영국은 바다를 향해 밀고 내려오는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사력을 다해 봉쇄정책을 펼친다. 청나라는 이미 제국주의 먹잇감으로 전락했고, 일본은 변화의 몸부림을 친다. 이 절체절명의 와중에 조선은 여전히 순한 양처럼 ‘마키아벨리의 국제정치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플라톤의 섬’이었다(강성학 교수, 『시베리아횡단열차와 사무라이』). 주자성리학자들의 무지한 세계인식-소중화주의가 국가정체성을 이루어 위정척사, 쇄국의 빗장을 단단히 채운다.

저자 김용삼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롭고, 엄정하고, 깊이 있는 눈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그야말로 가슴으로 쓰고 있다. 방대한 자료 수집, 냉철한 세계 인식, 진정성. 이 모두를 두루 갖춘 한 탁월한 역사 저술가의 탄생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쓴 제1권, '한반도의 깊은 잠'에 수록된 서문을 통해 이 책의 일면을 엿불 수 있다.

#. 조선은 왜, 어떻게 멸망했는가?

1910년 대한제국(조선)은 왜 멸망했을까? 일본이 악랄해서? 그건 답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적이란 언제나 악랄하기 때문이다. 그때 일본이 병탄하지 않았다고 해서 조선이 몸 성히 자생적 근대화의 길로 착실히 나아가지도 못했을 것이 뻔하다. 정글의 제왕 사자는 배가 고프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얼룩말이나 사슴 등을 잡아먹는다. 사자 입장에서 보면 그저 한 끼 식사일 뿐이지만, 잡아먹히는 얼룩말이나 사슴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 모두가 더불어 평등하게 살아가는 이상향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아무리 외쳐봤자 국제관계란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 통용되는 약육강식의 세계일 뿐이다. 우리가 불공평을 외치면, 저들은 "그렇게 억울하면 너도 사자가 되면 될 것 아닌가?" 하고 답할 것이 분명하다. 나라와 나라 간에 먹고 먹히는 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강약의 문제다. 따라서 물음은 마땅히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첫째, 조선은 왜 약했는가?

둘째, 일본은 왜 강했는가?

셋째, 조선은 왜 하필 일본에 의해 멸망했는가?

이 물음에 대답하려면 자폐적 역사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자기를 알려면 거울만 봐서는 안 되는 법이다. 창문을 열고 남도 보고 나와 비교해 봐야 한다. 폐망에 이르기까지 100년 동안의 조선 역사를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라는 더 큰 판 위에 포개놓고 읽어야 폐망 후 이제까지 100년도 비로소 제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역사 읽기는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시리즈가 길잡이가 돼줄 것이다.

세계사와 포개 읽는 한국 100년 동안의 역사 시리즈는 개항과 망국까지의 우리 역사를 세계사와 포개 읽으면서, 올바른 미래를 위해 과거를 바로 보려는 기획이다. 그 첫째 권, '한반도의 깊은 잠: 아편 전쟁에서 일본의 개국까지'는 서구 열강이 동아시아로 밀려올 때 한·중·일 삼국이 제각기 반응한 모습을 살핀다. 일본은 문을 열고 눈(目)을 열어 서구 문물을 재빠르게 수용하여 제 것으로 삼았다. 중국은 문을 열었으되 눈(目)을 뜨지 않아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조선만 300년 긴 잠에 빠져 있었다.

저자 김용삼은 근현대사 전문기자로서 펜앤드마이크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승만학당 교사로 "이승만의 네이션빌딩", "김일성신화의 진실", "지금, 고종을 천천히 읽는 이유" 등 다양한 저작을 발표했다.
저자 김용삼은 근현대사 전문기자로서 펜앤드마이크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승만학당 교사로 "이승만의 네이션빌딩", "김일성신화의 진실", "지금, 고종을 천천히 읽는 이유" 등 다양한 저작을 발표했다.

 

#. 개국이냐 쇄국이냐?

서세동점의 시대, 아시아의 나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느냐(개국), 닫느냐(쇄국) 두 가지였다. 저자 김용삼은 이 책을 통해 “지난 100년, 이 땅의 사람들을 두 패로 갈라서게 한 모든 대립과 반목의 밑바탕에는 ‘쇄국 대 개국(개화)’이라는 가치관의 충돌이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과 남한, 좌익과 우익,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유시장경제, 진보와 보수, 자력갱생 대 자유통상, 파쇼적 전체주의와 개인의 자유, 대륙 문명과 해양 문명,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친중·친북과 친미·친일….

임진·병자의 난 이후 조선은 더 큰 세계를 향해 눈을 뜰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다. ‘왜놈’이라 깔보던 일본이 조선을 넘보고, ‘오랑캐’라 경멸하던 만주족(여진족)이 조선을 신하로 굴복시킨 데 이어, 한족의 명나라를 멸망시킨 순간이 개안(開眼)의 기회였다. 자체 개발한 첨단 은(銀) 제련법과 인삼·비단·도자기·담배 무역의 이익으로 상공업을 진흥할 수도 있었다. 표착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와 하멜을 통해 서구 문명의 일단(一端)을 접했다. 서학(西學, 천주교)을 서구 문물 수용의 마중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 땅에 살던 사람들은 그것을 실행하지 못했다. 중국과 일본이 열심히 세계와 접촉하고 있을 때, 조선의 역사 시계는 멎어 있었다.

#. 중국·일본보다 300년 늦었던 개항

1543년, 일본 최남단 가고시마(鹿兒島) 앞바다에 떠 있는 섬 다네가시마(種子島)에 포르투갈인들이 탄 배가 도착했다. 이 섬을 다스리던 15살 소년 영주 다네가시마 도키타카(種子島時尭)는 포르투갈인으로부터 천둥소리를 내는 신무기 두 자루를 구입했다. 요즘 가격으로 환산하면 2자루에 10억 원, 한 자루 당 5억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입했던 신무기의 이름은 철포(화승총)였다. 그때부터 일본의 장인들은 열심히 철포 국산화에 심혈을 기울여 세계적인 철포 대국으로 올라선다.

반세기 후 철포는 조총(鳥銃)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을 유린한다. 소년 영주가 철포를 구입한 해는 조선 중종 37년, 그해 조선은 장차 망국의 온상이 될 서원을 만들었다. 일본은 무(武治)의 세계로, 조선은 문(文治)의 세계로 돌격 나팔을 울렸다.

중국은 1554년 마카오를 열었다. 일본은 1582년 유럽에 소년사절단을 파견했고, 1613년에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넜다. 일본은 쇄국으로 들어간 동안에도 세계를 향해 ‘숨구멍’을 열어두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천하의 중심이라고 착각한 중국은 제대로 문호를 열지 못했고, 그 결과 아편전쟁에서 패배하여 서구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일본도 조선도 아편 전쟁(1840)으로 중국이 무너지는 것을 거의 실시간으로 알고 있었으나, 대응은 정반대였다. 중국·일본보다 300년 늦은 1876년, 일본에게 강제 개항을 당하기까지 쇄국을 고수하도록 만든 주인공은 주자성리학으로 철갑을 두른 조선의 양반 지배층이었다.

#. 부국강병을 포기한 조선

왜란과 호란의 드러난 결과는 참담했으나, 조선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조선을 지배한 주자성리학자들은 왜란과 호란의 굴욕으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다. 특히 병자호란의 침략을 당해서는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국왕이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백성 수십만이 오랑캐의 노예로 끌려가는 고초를 겪었으니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인조반정(1623)으로 집권한 집권 서인(西人) 세력은 나라와 백성의 안위보다 당파의 안녕에 혈안이 돼있었다. 북벌(北伐)은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환각의 전투’였고, 내부 단속용 명분뿐이었다.

성리학은 요·순(堯舜)과 공자라는 석기시대·청동기시대를 이상향으로 삼는 퇴행적 이데올로기였다. 중화(中華)인 명나라가 멸망하자 조선의 왕과 성리학자들은 멸망한 명나라의 죽은 황제들을 제사지내는 대보단(大報壇)과 만동묘(萬東廟)를 세웠다. 스스로 소중화(小中華)라, 나중에는 “조선이 중화”라며 정신 승리와 자기기만에 빠져 나라 문을 닫아 걸었다.

현실 역사에서 오래전에 망해 사라진 나라를 떠받들고, 세계 제국으로 떠오른 청을 거부하는 행위는 당대의 선진 문명 유입을 배척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조선 지도층은 300여 년 문을 닫아걸고 해외와 교류 통상을 엄금했다. 소중화의 세계관을 고수하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이다.

#. 고종, 대한제국을 선포한 까닭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에 함몰된 국사학자들은 고종이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라 청나라 연호를 폐기하고 광무(光武)라는 독자 연호를 선포한 것을 명실상부한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밝힌 상서로운 행위로 해석한다. 이런 주장은 일종의 소설이다.

조선 국왕과 지배 엘리트는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순간까지도 중화(명나라)로부터의 정신적 독립은 꿈도 꾸지 못했다. 칭제건원의 기본 논리는 “조선은 한·당·송·명(漢唐宋明)의 중화문물을 계승한 적자다. 중화의 법통을 이어받아 ‘기자(箕子)의 땅’ 조선에서 진정한 중화가 완성되었으니 우리도 황제의 나라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에 오른 것은 소중화에서 한 차원 더 진보하여 ‘조선이 곧 중화가 되었다는 ’조선중화주의’의 완성을 만천하에 알리는 신고식이었다. 이제 조선이 주자성리학의 본향이요, 지구상 가장 선진문명 집단이 되었으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번창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대한제국이 근대 국민국가?

이태진 같은 학자는 대한제국이 18세기 영·정조 이래의 민국 정치이념을 계승해 일본의 천황대권을 규정한 메이지헌법과 제국의회에 비견되는 대한국(大韓國) 국제(國制) 및 중추원을 기반으로 수립된 근대 국민국가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은 대한제국의 성격이 이태진의 주장과는 정반대임을 증명하고 있다. 1899년 8월 17일 공포된 대한국 국제, 즉 대한제국 헌법에 의하면 제2조부터 제9조까지 황제에 관한 대권만 규정되어 있을 뿐 국민의 권리에 대한 규정은 없다. 대한제국 황제는 육해군 통수권, 입법권, 행정권, 관리임명권, 조약체결권, 사신임면권 등 모든 권한을 독점한 전제군주였다. 고종은 민국 정치이념을 계승한 계몽 군주가 아니라, 러시아의 전제군주제를 따라 배워야 할 이상적 모델로 본 것이다.

황제가 육해군을 직접 통수하는 체제에 따라 군부 외에 별도로 원수부를 설치했고, 황제가 직접 서울과 지방의 모든 군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1900년 6월에는 원수부 내에 육군헌병대를 설치하여 전국 군대의 헌병 업무를 관할했다. 당시는 세계가 근대화를 통해 입헌군주제, 삼권 분립으로 권력 분점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정치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종이 선포한 대한제국은 세계사적 조류와는 정 반대의 극단으로 질주했다. 고종은 오래 전부터 오매불망 원했던 절대 전제권을 불과 한 달여 만에 법적으로 확보했다. 황제 1인 독재국가를 헌법으로 보장받은 것이다.

조선은 왕도정치에서 사림으로, 사림에서 노론으로, 노론에서 가족(세도정치)통치로, 가족에서 황제 1인 독재로 권력이 집중되는 반(反)시대적 행보를 거듭했다.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있던 구한말 지식인 윤치호는 “세상에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황제 칭호가 있을까”라고 자신의 일기에 썼다.

#. 주자성리학자들은 무엇을 지키려 의병을 일으켰나?

조선주차군사령부가 간행한 『조선폭도 토벌지』에 따르면 1910년 8월 말 한국병합 때까지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 횟수는 2,819회, 전투에 참여한 의병은 4만 1,603명이었다. 1906년부터 1911년까지 6년간 일본군은 조선 의병 1만 7,779명을 사살했다. 의병 봉기의 주역은 대부분이 주자성리학자들이었다. 유인석이 그랬고, 최익현이 그랬다.

일본군의 가혹한 토벌로 한반도 내에서 의병활동이 불가능하자 그들은 강 건너 러시아로, 간도로 이주하여 투쟁했다. 해외까지 나가 고군분투한 의병들의 투쟁 목표와 활동지침은 무엇이었을까? 조선(대한제국)의 독립?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

프랑스 시인 앙리 미쇼의 시구(詩句)처럼 새가 미치건 말건 나무는 관심 없는 법이다. 동족을 노비로 사고파는 악질적 노예제 국가라는 비난이 제기되든 말든, 가렴주구로 백성들이 죽어나든 말든 양반들 알 바 아니다. 그들 세계에선 조선왕조가 지상천국이자 유토피아, 에덴동산이었다.

주자성리학은 조선왕조였고, 조선왕조는 자신들 부와 권력의 원천이었다. 이처럼 위대한 ‘플라톤의 섬’을 개혁·개방·개화시켜 근대화를 함으로써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로 이행하라고 앞장 선 나라가 일본이었다.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주자성리학을 수호해주는 조선왕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조선(대한제국)이 망하면 자신들의 권력이 해체된다. 주자성리학자들이 죽기 살기로 의병을 일으켜 위정척사, 쇄국으로 근대화에 저항한 진짜 이유는 이것이다.

#. 신채호의 ‘한놈 정신’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해석한 인물이 신채호다. 오늘날 신채호의 화끈하고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투쟁사관은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는 물론 문화적·정신적·사상적 영역마저 완벽하게 석권했다.

신채호가 자신의 투쟁사관을 표출하기 위해 1916년 상하이에서 쓴 단편소설이 『꿈하늘』이다. 이 소설 주인공이 ‘한놈’이다. 신채호의 ‘한놈’은 그가 꿈꾸어 왔던 독립운동가의 표상이다. 신채호의 ‘한놈’은 죽기 살기로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여 무한 투쟁을 반복하는 존재다. 투쟁 과정에서 동지가 배반하면 동지를 죽이고, 부모가 나를 배반하면 부모도 서슴없이 죽인다.

저자 김용삼은 신채호 류의 일국사적 사관, 투쟁사관을 비판하고 거부한다. 신채호 류의 역사서술의 종착역은 국수주의적, 주관적, 파시즘적 주체사관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세계사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를 조망할 때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우리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철학이자 가치관이다.
저자 김용삼은 신채호 류의 일국사적 사관, 투쟁사관을 비판하고 거부한다. 신채호 류의 역사서술의 종착역은 국수주의적, 주관적, 파시즘적 주체사관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세계사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우리의 근현대사를 조망할 때 보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우리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 저자의 철학이자 가치관이다.

 

왼팔이 배반하면 왼팔을 베고, 오른팔이 배반하면 오른팔마저 베어버린다. 몸뚱아리 데굴데굴 굴려가며 일제와 투쟁하는 화끈하고 강렬한 투쟁정신과 민족감정….

이러한 ‘한놈’ 정신의 완벽한 표출이 김원봉의 의열단이요,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며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시고, 가랑잎 타고 바다를 건너시며, 모래알로 쌀밥을 지어 먹으며 왜놈을 물리친” 백두혈통 김일성 장군 신화였다.

#.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는 개혁·개방 세력

대한민국 건국 세력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주자성리학이 판을 치던 구한말에 개화·개혁·개방의 봉화를 올린 세력들이 나타난다. 대부분 의사와 역관 출신의 중인으로 구성된 개화세력은 명분과 공론이 아닌 실사구시, 사농공상(士農工商)가 아닌 상공농사(商工農士)의 신분구조, 강고한 반상의 신분제도 타파, 여성 인권 신장, 타고난 신분의 세습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예우 받는 사회, 만민평등 사상을 이땅에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위정척사 쇄국세력의 강력한 저항으로 독자적인 힘으로 개혁·개방이 어렵게 되자 그들은 외부의 힘을 빌려서라도 이 땅의 백성들에게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천부적 인권과 자유를 보장해주는 체제를 만들기 위해 투쟁했다.

그 결실이 열매를 맺기 전에 대한제국은 폐망했고, 나라가 망한 후엔 현실적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국제정세의 흐름을 읽고 세계 공론에 호소하는 외교독립운동을 추진했다. 그러한 노력들이 켜켜이 쌓여 1943년 12월 카이로선언에서 조선의 독립을 국제사회가 공약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항복했을 때 국제사회는 카이로선언에서 약속한대로 일본으로부터 조선을 분리시킨 다음, 유엔총회 결의에 의해 대한민국을 탄생시켰다.

#. 잘 지는 게 지저분하게 이기는 것보다 낫다

이 나라의 독립과 해방, 건국은 만주벌판에서 신채호의 ‘한놈’ 식 항일무장 결사투쟁의 결과물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도움 덕분이란 역사적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세계사의 흐름에 무지한 채 국수적 민족주의에 집단 세뇌된 전근대 사회의 시민들에게 보장된 미래는 중세적 암흑뿐이다.

우리에게 과연 근대는 있었는가? 있었다면 그 시작은 어디서부터인가? 세계사가 격동할 때 이 나라 지도층은 어떤 대응을 했기에 이 나라가 폐망의 낭떠러지로 추락했을까? 대한제국은 을사오적이 나라를 팔아먹어 망한 것이 사실일까?

지금까지 우리는 망국의 원인을 단 한 번도 이성적이고 지성적으로, 심지어 역사적 사실이 무엇이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성찰한 적이 없다.

잘 지는 것이 지저분하게 이기는 것보다 낫다. 잘 망해야 교훈이라도 얻기 때문이다. 그러한 교훈을 얻기 위해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의 회오리가 몰아치는 아편전쟁 시기부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의 순간까지를 추적하여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이 책의 집필에 도전했다.

세계사의 판 위에 우리 역사를 겹쳐놓고 우리의 진짜 모습을 조망하는 작업. 그것은 우리 근대사의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일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 노력의 결실을 10권의 책에 담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 책의 마지막권이 완성될 쯤에는 대한제국 폐망의 진짜 원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서….

이 책의 저자 김용삼은 조선일보 기자, <월간조선> 편집장을 역임했고, 1997년 황장엽 망명 사건 특종 보도로 제1회 대한민국 언론상 수상했던 민완 기자였다. 2015년 저서 『대한민국 건국의 기획자들』로 전경련 시장경제대상을 공동수상했으며, 『이승만의 네이션빌딩』, 『박정희혁명』 등 다수의 저작을 발표했다. 현재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이승만학당 교사로 있다. <펜앤드마이크>의 유튜브를 통해 함재봉 교수와 함께 '한국인 너는 누구인가?'를 매주 한 차례씩 방송하고 있다. 

성기웅 기자 skw42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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