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앞에 인격살해 당해 문학 교수로서 자존심 상처 입어"
학생들 항의에 "그렇게 하면 미투 운동도 옳지 않다"
"여러분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내 사과가 필요한 것일지도"…"사과할 뜻은 없어"

하일지 교수
하일지 교수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의 저자이자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인 하일지(본명 임종주)씨가 강의 중 미투 운동과 성폭력 피해자를 조롱한 데 이어 2년 전 재학생에게 강제로 입을 맞춘 사실이 있다는 폭로로 논란이 불거지자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며 강단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19일 동덕여대 학내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동덕여대 재학생 A씨는 2016년 2월 하일지씨와 가까운 스승과 제자 사이로 지내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앞서 하씨는 14일 '소설이란 무엇인가' 수업을 진행하는 도중 안 전 지사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에 관해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발언을 하고,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을 두고 "처녀가 순진한 총각을 성폭행한 내용이다. 얘(남자 주인공)도 미투해야겠네"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었다.

이에 관해 하 교수는 이날 오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백주년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례하고도 비이성적인 공격을 받게 됐다"면서 "인생의 한 부분을 바쳐 지켜온 제 강의는 학생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대중 앞에 인격살해를 당해 문학 교수로서 자존심 깊이 상처를 입었고 학생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제가 지켜야 할 것은 제 소신이라 판단, 마지막으로 모범을 보이기 위해 강단을 떠나 작가의 길로 되돌아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 교수는 A씨의 폭로에 관한 입장을 묻자 "보도자료를 참고해 달라"고 대답을 피했다. 그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A씨가 과거 '존경한다'며 보낸 안부 메일 내용 일부가 담겨 있었다.

그는 "오늘 사직서를 제출할 생각이지만, 학교 윤리위원회에서 출석하라고 하면 하겠다"면서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성추행 폭로 학생이나 다른 학생들에게) 사과할 뜻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하 교수가 기자회견을 한 백주년기념관 로비에는 동덕여대 학생 100여명이 찾아와 '하일지 교수는 공개 사과하라', '하일지 교수를 즉각 파면하라', '하일지 OUT'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시위했다.

하 교수는 학생들의 항의에 "그렇게 하면 미투 운동이란 것도 옳지 않다"라며 "어쩌면 여러분(학생들)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내 사과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정직하지 못하고 지성적이지 못하다"고 반응했다.

동덕여대 측은 이날 오후 5시께 윤리위원회를 열어 하 교수의 징계 등을 논의하겠다고 알렸다.

성기웅 기자 skw424@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