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배민 교사] 의대 증원은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까?
[기고/배민 교사] 의대 증원은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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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민 숭의여고 교사

정부는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문제를 일차함수로 접근한다. 그 결과 크게는 두가지의 변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하나는 의사의 전문직업성, 다른 하나는 의료시장의 속성이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 미묘한 함수를 이해하기 위해 경제학적, 행정학적 분석을 행하는 것 보다는, 때로는 역사적 통찰의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어 글을 적어본다.

역사적으로 의사 집단은 의료 행위에 있어서의 전문직업적 독립 및 자율성 (professional independence and autonomy)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해 왔다. 19세기 중반에 찰스 다윈의 주치의를 하기도 했던 에딘버러 의대 출신의 의사 Edward. W. Lane은 자신의 책에서 ‘의사들이 어떻게 연명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심각하게 고민하였다. 그는 ‘생계를 위한 의사의 투쟁은 모든 합리적이고 발전된 각성을 힘들게’ 하며, 특히 젊은 의사들이 이러한 상황에 더욱 취약하다고 보았는데, ‘의대를 갓 졸업한 이들은 단지 생계를 위한 투쟁에 자신을 던져 넣는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적고 있다.

19세기 후반까지 (누구나 자신이 의료라고 생각하는 시술 행위를 할 수 있었던) 완전개방에 가까운 의료시장에서 영국의 의학이 나아갔었던 방향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도시의 길드(guild)적 성격이 남아있던 로열 칼리지(Royal College)들을 중심으로 시장의 고급 상품 판매자인 자신들을 스스로 통제하는 쪽이었다. 지금도 런던이나 에딘버러에는 과거의 번성했던 그러한 기관들이 사실상 박물관화되어 남아있다. 즉 성공하지 못했다.

또 다른 방향은 바로 대학(university)을 구심점으로 삼아 대학 교수진을 의료 엘리트의 상징화하면서 엄격한 의학 커리큘럼을 구축하고 이론과 임상을 겸비한 의사 집단의 양성을 전문화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의학의 실제 학문 발달 수준과 관계없이 산업혁명 후 19세기 의료시장의 이례적인 확장 속에서 대단한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의사의 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의 발전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19세기말부터 시작되는 국가의 개입 및 비슷한 시기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현대 의학’의 수많은 획기적인 성과들이었지만, 눈 여겨 볼 부분은 바로 그 이전에 일어난 의료시장의 확대와 의과대학들의 시장 전략이다. 즉 이를 통해 확립되어 나간 의료행위의 가치(value)가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의사의 전문직업성은 결코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의사의 전문직업성은 의료시장 및 그 속에서의 의료행위의 가치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렇게 시장의 관점에서 의료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사실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시장의 본질이 돈이나 상품의 교환이 아닌, 가치의 확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의료행위의 사회적 가치 및 의료 전문직업성은 영국에서와 같이 시장에서 길고 긴 시행착오를 통해 다양한 기관(institution)들 사이의 경쟁 속에서 확립되어 나간 것이 아니라, 의과대학이라는 서양 근대 의료 기관이 도입되면서 자연히 이식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의사들도 자신의 의료행위의 가치 및 전문직업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까지 경주해왔다. 즉 의료시장에서 자신들의 상품(의료행위)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기 위한 자율적 규제가 그것이다. 공급되는 상품의 질에 대한 엄격한 관리는 시장에서 그 상품의 가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의료시장에서 공급되는 상품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에 집중하는 정부에 대항해 지금껏 힘겨운 싸움을 해왔다.

90년대에 와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기에 이른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의 속성은 사실상 환자를 위한 의료비 할인이었다. 경제학적 시장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는 수요의 확대를 의미했는데 이는 상품가치 대비 가격이 너무 높아서 구매를 못했던 많은 수요자가 시장에 참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가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시장에 수요가 많아졌기에 시장에서 공급되는 상품의 양이 늘거나 공급자의 수가 늘어나야 했는데, 당시 정부와 의사 사이에선 저수가 의료비와 의대 정원 제한이라는 타협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정책은 이후 급속한 한국의 의료시장 팽창 과정에서 국가가 모든 비용을 감당하느라 영국처럼 심하게 재정 압박을 받을 필요가 없었던 점에선 효과적이었지만, 시간 가면서 기본 진료에 대한 국가의 의료비 할인의 사회적 의미가 점점 실종되는 상황에서 의사들이 저수가 의료비를 팽창하는 비급여 진료의 수익으로 보완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혹자는 의문이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애당초 건강보험의 전국적 실시와 함께 대대적인 의대 정원 증가가 있었으면 의료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훨씬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았겠냐고.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시장의 수요와 공급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 제도 자체가 진작에 무너졌을 확률이 높다. 지금껏 그럭저럭 유지되어온 한국 의료의 중요한 전제 중 하나 역시 적정한 의사 수의 유지였으며 이는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변화 속에서 건강보험제도의 안정적 유지와 직결된 문제였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애초에 재정적으로 건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전문직업적 윤리 (professional ethics), 특히 불필요한 과잉 진료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설정이 중요했다는 점을 간과한다. 이를 위해서는 19세기 초 과포화 된 영국 의료 시장에서와 같은 의사들 간의 과다 경쟁이 벌어지지 않아야 했다.

사람들은 늘 누리는 것은 당연시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한국의 서양근대 의료사에서 영국 의학역사에서와 같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한 사회적 비용 없이 의료행위의 가치가 순탄히 확립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의대라는 사회적 기관을 통해 많은 것들이 자연 이식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수가 정책으로 말미암아) 의대 정원 제한을 핵심 전제로 형성된 한국 의료행위의 가치가 의료시장에서 다시 불안정한 상황이 되면 의사의 전문직업적 윤리를 지금처럼 계속 기대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한국 의료시장과 의사의 전문직업성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정부의 공공의료 강화 정책, 특히 의대 정원의 대폭 증가와 같은 방식의 개입은 한국 의료의 사회적 가치와 건강보험제도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을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정부가 의도했던 결과는 커녕 급격한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와 그로 말미암은 총체적인 공공의료의 붕괴라는, 의도와는 정반대의 아이러니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아주 높다.

지금까지 교육이나 부동산 관련 정책에서도 그러했다. 각각 입시제도와 세금제도를 무기로 학력 시장과 부동산 시장에 도덕적 명분을 앞세우며 개입해온 정부의 정책은 개입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매번 초래했고 정책 관련 지침이나 규제 조항만 누더기처럼 잔뜩 양산했을 뿐이다. 이러한 정책들의 문제는 특별히 그러한 법들을 만든 정치인들이 독선적이기 때문이었을까?

실제로 많은 한국인들은 공공의료가, 경쟁 없는 교육이, 1가구 1주택이 ‘선’(善)이라고 믿는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집단 감성의 인플레이션 속에서 고독한 개인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사회에서 시장의 가치를 무시하는 정책은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바로 대중의 단순하고 이상주의적 사고 태도, 즉 복지, 평등, 공동체 등의, 사실은 인위적으로 설정된 논쟁적인 가치들을 너무나 선뜻 선한 절대적 가치로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이 문제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그리고 그들이 만든 법들은 바로 이러한 대중의 감성적 사고에 기생하게 된다.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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