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해설 (上) [유태선 시민기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 해설 (上) [유태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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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내 말이 맞고 상대방의 주장이 틀렸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해 보면 내가 잘못 알고 있고 상대방이 바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더 심한 경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검찰에 고소 또는 고발했을 뿐인데 법정에서 상대방은 무죄판결을 받고 오히려 내가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집에 돌아와서 "아, 말로는 못 당하겠네"라고 하고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그렇다면 내가 머리가 나쁘고 못 배워서 이런 일이 계속되는 것일까? 절대로 내 머리가 나빠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못 배워서 그런 것일 수는 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움직이기 위한 학문인 수사학(rhetoric)을 상대방은 제대로 배워서 활용하고 있고 나는 아예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른다면 말이다.

기원전 4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은 사회적 출세를 위하여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소피스트들의 주장과 "수사학은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므로 일종의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의 주장 사이에서 혼란을 겪다가 오랜 연구 끝에 [수사학]을 저술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수사학]에 계승되었고 중세에 이르러 확립되었는데 오늘날에도 모든 화술 교육의 기본서들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그는 수사학을 '주어진 경우에 가능한 모든 설득 수단을 찾아내는 능력'으로 정의하면서 '이성에 기반하여 설명하고 논증하는 능력'인 변증술(dialectic)과 하나의 묶음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수사학]에서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을 납득시키기 위한 요건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말하는 사람의 성격이 믿음직스러워야 하고 - 에토스(ethos), 청중의 심적 상태가 화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고 - 파토스(pathos) - 화자의 주장이 논리적이어야 한다 - 로고스(logos)"

그의 스승 플라톤이 감각에 의존하는 에토스와 파토스를 경시하면서 지성에 기반한 로고스를 중시했던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생활에서는 로고스보다 파토스, 파토스보다 에토스가 보다 설득력이 있다고 하면서 변증술과 수사학의 가치를 모두 높게 평가했다.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은 논리로 상대방을 이기기 힘들면 눈물을 보이는 등 감성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래도 통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인간성을 공격하는 방법을 자주 사용하는데 의외로 그 효과가 좋다.

이러한 상황에서 말과 글로 자신을 보호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맹수들이 출몰하는 산악지대를 비무장 상태로 혼자 여행하는 것과 동일한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며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수많은 현인들이 살고 있었던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체도 현대 대중 민주주의와 유사하게 운영되었는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당한 폭력에 맞서 몸으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말로써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훨씬 더 수치스러운 일이다"라고 하면서 그의 스승 플라톤이 학문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수사학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연설의 종류를 어떤 일을 하라고 권유하거나 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심의용 연설, 누군가를 찬양하거나 비난하는 과시용 연설, 누군가를 고발하거나 변호하는 법정용 연설의 세가지로 분류한 후 각각의 경우 어떻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의하면 '심의용 연설'은 미래를 예측하여 해당 사안이 유익한가 해로운가를 '과시용 연설'은 현재의 시점에서 해당 사안이 아름다운가 추한가를 '법정 연설'은 과거에 일어난 일과 관련하여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은가를 논의한다.

인구의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직접 민주제 하의 고대 아테네와 달리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을 줄 아는 간접 민주제 하의 대한민국에서는 공개 토론이 대중 연설의 기능을 상당부분 대체하고 있고 직업의 세분화에 따라 심의용 연설은 주로 정치인들이 과시용 연설은 언론인들이 법정용 연설은 법조인들이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자신의 의사결정과정이 다소 정의롭지 못 하더라도 이는 국가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라고 주장하면서 면책을 요구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언론인들은 자신의 견해가 매번 바뀌는 등 일관성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사실관계를 새롭게 반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면서 이를 정당화하려 할 것이다.

법조인들도 법정에서의 변론이 사회 전체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오고 그 과정이 아름답지 못 하다 하더라도 자신은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공정하게 법률을 적용하기 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언변에 능한 언론인들과 법조인들이 정계에 투신한다면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선거전에서 쉽게 승리하겠지만 당선 이후 미래보다 현재 또는 과거를 중시하는 언행을 반복하면서 국가 운영에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이들이 정계를 떠나 본업에 복귀한 이후에도 미래의 국익이라는 명분 하에 현재 또는 과거의 사실 관계를 왜곡하려 한다면 사회 전체의 질서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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