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조희문 영화평론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의 슬픈 그림자, '김일성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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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6.26 09:36:54
  • 최종수정 2020.06.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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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만들었다...北 고아 5000명 동유럽 각지로 보내져
1956년 헝가리 자유화 물결에 충격받은 김일성...1957년 해외체류 北주민 모두 송환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 강제로 60여년 넘게 이별한 사람들을 통해 북한사회 비판
추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비극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처절할 따름
조희문 영화평론가(조희문영화아카이브 대표)

63년의 추억과 이별. 이념을 걷어낸 추억은 애절하다. 모든 추억이 그렇듯 지나간 모든 것은 그리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아이들’은 6.25 전쟁 때 동유럽 각국으로 떠난 북한의 전쟁 고아들을 회상한다.

6.25 전쟁은 소련의 조종으로 김일성 세력이 대한민국을 침공한 전쟁이었고 자유세계와 공산진영의 대결이었지만, 전쟁의 의미를 헤아릴 수 없었던 수많은 민초들에게는 이유없이 사람이 상하는 난리통이었을 뿐이다.

전쟁은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만들었다. 남과 북이 마찬가지였다. 남측 아이들은 입양으로 바다를 건넜고, 북한 측 아이들은 5,000명 가량이 위탁교육이라는 명분으로 불가리아, 루마니아,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각국으로 보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했다. 스탈린은 전후 수습에서도 서방을 앞서야 한다며 복구에 힘을 쏟았다. 전쟁고아들을 보살피는 일은 그같은 과제 중의 하나였다. 당시 동유럽 여러 나라들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는데도 북에서 온 전쟁고아들을 보살피는데 최선을 다 했던 것은 공산진영의 종주국 역할을 했던 소련의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동유럽 여러 나라들은 소비에트 연방에 속해 있거나 소련의 위성국으로 남아 있을 때였다. 동유럽으로 보내진 아이들은 현지에 빠르게 적응했지만 권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에 눈떠 가는 분위기를 불편하게 여겼다. 1956년의 헝가리 자유화 운동은 소련 당국은 물론 여러 나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중에서 북한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 무렵 북한은 내부 권력투쟁이 극심할 때였고 김일성은 권력의 집중을 방해하는 어떤 움직임도 민감하게 경계했다. 결국 1957년 무렵 동유럽 각국에 거주하던 북한 주민은 북으로 송환되었다. 어린이들과 그들을 따라온 교사, 각국에 흩어져 있던 기술자나 유학생 등 북한 주민은 모두 대상이었다.

강제송환에 따른 비극의 그림자는 짙었다. 사람들은 정부 당국의 엄격한 금지에도 아랑곳없이 곳곳에서 사랑의 불꽃을 태웠고 강제 송환은 이별을 만들었다. 사회주의 이념도 막지못한 원초적 본능이었다. 북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남겨진 사람들은 하염없이 기다리는 세월이 이어졌다. 더러는 기다리던 사람을 찾아 북으로 가기도 했지만 돌아온 것은 냉대뿐이었다. 1950∼60년대 사회기준이나 정서로는 외국인과의 결혼이 허용되지 않았고 내국인이라 하더라도 당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동유럽 각국이 마찬가지였고 북한은 특히 심했다. 인종의 벽을 넘는 사랑이나 결혼은 비극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런 사정을 알고서도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김일성의 아이들’은 북한 전쟁고아들의 애절한 사연의 발굴이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이별에 대한 사색이다. 이별의 이면에는 당이 요구하는 정책에 순응하는 집단주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북한 사회의 폐쇄성이 깔려있다. 지금도 헤어짐의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소식을 알 수 있을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영화는 직접 북한사회를 비난하지 않지만 소식이 끊긴 채 60여년 넘게 헤어져 있는 사람들을 통해 북한 사회를 비판한다. 헤어진 남편을 기다리지만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아내,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으로만 기억하는 딸은 모두 북한사회의 오늘을 증언하는 증거들이다.

북한사회나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는 더러 있었지만 행간을 통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그만큼 울림도 크다. 동유럽 각국의 생존자들이 추억을 이야기하지만 그 추억은 지금 현재의 이야기로 되돌아 오는 탓이다.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몇 사람의 한국인 이름에서 시작된 60여년 전의 추억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비극으로 연결되는 과정은 처절하다. 6.25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조희문 영화평론가(조희문영화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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