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 PenN 정치사회부 기자
이슬기 PenN 기자

대통령 직속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마련한 개헌 자문안의 윤곽이 두루뭉술하게나마 드러났다. 과격한 사회주의로의 회귀를 담은 개헌안 내용은 제쳐 두더라도, 특위의 기발한 꼼수와 허풍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위가 문 대통령에게 개헌안을 보고하기로 한 13일 새벽,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을 열고 ‘복수안’에 대해 설명했다. 특위에서 합의가 된 사안은 ‘단수안’으로 보고를 올리고, 합의가 되지 않은 사안은 제 1안, 2안 등 ‘복수안’으로 올려 문 대통령이 직접 선택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복수안에 대한 설명은 이날 오후 2시30분, 특위가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 전에 나왔다. 일부 기자들은 청와대가 넌시지 알려준 ‘복수안’ 개념을 듣고, 개헌안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듣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기자간담회가 열렸고, 예상대로였다.

특위는 기자들의 질문에  ‘복수안을 채택했다’는 대답으로 손쉽게 빠져나갔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많은 사안이라면 대답을 안 들어봐도 '복수안'인 거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종철 특위 부위원장은 두번째 질문을 받자마자 “단일안이 아닌 복수안으로 드려 대통령이 선택해 발의할 수 있도록 했다. 확정적인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전에 준비한 답변이었다.

아! 물론, 개헌안 자체도 공개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국무총리 선출 방식과 지방분권 확대의 구체적 내용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선 어떠한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특위가 만들어 놓은 ‘대피로’는 또 있다. 바로 국민의 의견이다. 특위는 대다수 헌법 조항 수정의 근거로 ‘국민여론이 합의를 이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뜻이니 토를 달지 말라는 명령이나 다름없다.

하승수 특위 부위원장은 이날 특위가 ‘580만명’ 이상의 국민과 소통했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대다수가 홈페이지(53만여명)나 SNS(536만명)를 통해 참여한 숫자다. 오프라인에서 특위의 개헌안 마련 과정에 참석한 사람은 고작 3737명이다. 특위는 그러고도 “다양한 국민 의견을 수렴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 좌경화된 시민단체들의 안을 토대로 개헌안을 작성하는 동시에 온라인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했다는 말을 대체 누구더러 믿으라는 건가.

더 황당한 건 ‘국민들의 의견’을 해석하는 자문특위의 이중잣대다. 특위는 지방분권 개헌에 대해 예상한 것보다 부정적인 여론이 높자 조사 결과를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지방분권 반대 의견이 많은) 여론조사만으로는 제대로 국민의견 수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의견이 나오면 ‘의미 있는 토론회’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않았다’고 평가하면 그만이었다.

특위는 2월13일 결성 이후 한 달 만에 ‘부랴부랴’ 개헌안을 만들어 내놨다.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다는 ‘허풍’을 떨면서도 자문안은 공개하지 않았고, 복수안이라는 '꼼수'까지 써가며 결국 개헌안을 꽁꽁 숨겼다.

30년 만의 개헌 논의다. 국민들은 청와대에서 어떤 개헌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람이 먼저고, 국민이 중심인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들의 이 답답한 마음을 알고도 이러시는 건가.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