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정상회담은 애초 文이 기획..."남·북·미 포토쇼 원해"
文, 세기의 포토쇼 참여 원했지만 트럼프-김정은이 거절
판문점 정상회담도 원치 않았는데 文 일방적 참여
文 "사실 남북 핫라인 작동 안한다" 트럼프에 고백
트럼프, 미북 회담 실질 성과 관심 없어..."뭐가 더 기삿거리인가?"
트럼프, "우리가 왜 한국을 지키나...미군 철수로 위협하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미·북 정상회담은 애초 문재인 정부의 아이디어였다고 밝혔다. 

볼턴 전 보좌관은 오는 23일(현지시간) 출간되는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이같이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그해 3월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성사됐다. 볼턴은 "정 실장은 트럼프를 만나고 싶다는 김정은의 초대(invitation)를 전했고 트럼프는 그 순간 충동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볼턴은 그러나 "나중에 정 실장은 (트럼프를 만나) 그런 초대를 하겠다고 먼저 김정은에게 제안한 사람은 자신이었다고 시인했다"고 적었다. 

이 때문에 볼턴은 회고록에서 "(미·북 외교는) 한국의 창조물이었다. 김정은이나 미국에 관한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어젠다가 반영됐다"고 했다. 미·북 정상회담이 그렇게 치밀한 준비 없이 시작됐고, 결과적으로 별 소득 없이 끝났다는 것이다.

 

볼턴은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처음에 북한의 아이디어인 줄 알았다"면서 "나중에야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 어젠다에서 온 것이라고 의심했다"고 했다. 그는 또 "북한은 그것(종전선언)을 문 대통령이 바라는 것으로 보면서 자신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며 "그런데 왜 미국이 추진해야 하나?"라고 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반도 종전선언도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고록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4월 28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포함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라고 전했다. 또 "김 위원장에 1년 안에 비핵화를 할 것을 요청했고, 김정은이 동의했다"라고도 했다. 

文, 포토쇼 참여 원했지만 트럼프-김정은이 거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장소인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 도착해 악수를 나눈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북한 김정은과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 도착해 악수를 나눈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EPA=연합뉴스]

 

1차 미북 정상회담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회담에 참석하길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남-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종전선언을 합동 발표하는 것을 추진 중이었다. 그야말로 세기의 포토쇼를 기획한 것이다.

볼턴은 문 대통령이 5월 22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 당시 남·북·미 3자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에 동참하길 원했고, 심지어 6월11일 회담 전날까지도 싱가포르에 오고 싶어했다고 소개했다. 볼턴은 "문 대통령이 2019년 6월 말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 때처럼 사진 행사에 끼어들길 원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볼턴에 따르면, 2018년 6월 1일 김정은의 친서를 들고 백악관을 찾은 김영철은 “이번은 북·미 정상회담”이라며 “남한은 필요없다”고 잘라 말했다. 볼턴은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영철 간 회동에서 있었던 유일한 좋은 일”이었다고 평했다. 미국 역시 남·북·미 회담을 반기지 않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볼턴은 지난해 판문점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3자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은 문 대통령의 참여를 원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근처에 없기를 바랐지만, 문 대통령은 완강하게 참석하려고 했고 가능하면 3자 회담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했다. 그래서 미·북 정상의 만남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볼턴은 "문 대통령과의 분쟁이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김정은도 문 대통령이 근처에 오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볼턴 회고에 따르면 판문점 회담 당일인 6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은 여러 차례 문 대통령의 참석을 거절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이 한국 땅에 들어섰을 때 내가 없으면 적절하지 않아 보일 것"이라면서 "김정은에게 인사를 하고 그를 트럼프에게 넘겨준 뒤 떠나겠다"고 제안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문 대통령 생각을 전날 밤에 타진했지만 북한 측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나는 문 대통령이 참석하길 바라지만 북한의 요청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둘러댔다고 볼턴은 밝혔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그간 대통령이 DMZ를 방문한 적이 많지만 미국 대통령과 한국 대통령이 함께 가는 것은 처음"이라며 계속 동행을 원했다고 볼턴은 회고했다. 트럼프는 "이 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며 "김정은에게 할 말이 있고 경호처가 일정을 조율하고 있어 그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재차 거절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조금은 이해하는데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며 문 대통령에게 "나를 서울에서 DMZ로 배웅하고 회담 후에 오산공군기지에서 다시 만나도 된다"고 했다. 사실상 '3자 회동'을 거절한 것이다.

볼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DMZ 내 관측 초소(OP 올렛)까지 동행한 뒤 그다음에 무엇을 할지 결정하자"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당시 문 대통령은 결국 판문점 자유의집까지 트럼프와 김정은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남·북·미 정상이 3자 회동을 한 시간은 4분 정도에 불과했지만, 당시 청와대는 "세 정상의 만남은 또 하나의 역사가 됐다"고 했다.

文, "사실 남북 핫라인 작동 안한다" 트럼프에 고백

 

볼턴에 따르면, 트럼프는 판문점 회동 전 문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트위터를 통해 만나기로 합의한 것은 거대한 신호 같다"며 "아무도 그와 만나는 방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문 대통령은 “한국이 김 위원장과 핫라인을 개설했지만 그것은 조선노동당 본부에 있고 그(김정은)는 전혀 거기 간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confessed)고 볼턴은 밝혔다. 문 대통령은 또 “그 전화는 주말에는 작동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우리 측 핫라인 전화기는 문 대통령의 여민관 집무실 책상 위에 있다.

남북 정상 핫라인은 2018년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대통령 특사단이 북한에 가서 합의했던 성과 중 하나다. 그해 4월 20일 송인배 당시 청와대 부속실장과 북측이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국무위원회 관계자’가 직통전화 시험 연결을 했을 때 청와대는 “분단 70년 역사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했었다. 정부는 2018년 4·27 남북 정상회담 전후로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통화할 것이라고 했었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 9일 이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한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 채널을 차단·폐기한다고 밝혔다.

한편 볼턴 전 보좌관은 당시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한국인들은 트럼프를 좋아하고 존경한다고 말하자,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 뒤로 한국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강연을 늘어놨다"고도 책에 썼다.

트럼프, 미북 회담 실질 성과 관심 없어..."뭐가 더 기삿거리인가?"

 

볼턴 회고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회담의 실질적 성과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볼턴 전 보좌관과 존 켈리 당시 비서실장 등에게 "이건 홍보 연습"이라며 "알맹이 없는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승리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회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회담 일주일 전까지 한국전쟁 종식 선언을 "언론의 점수를 딸 기회"라고 생각해 빠져 있었다고 했다. 볼턴은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종전선언 대가로 북한의 핵·탄도미사일의 신고를 공동성명에 포함하는 안을 마련했다. 결국 종전선언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빠지도록 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인 하노이 회담을 위해 메트로폴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선 “스몰 딜과 걸어나가는 것 중 뭐가 더 기삿거리가 되겠느냐”고 물었다고 볼턴은 밝혔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하노이에서의 만찬을 취소하고 북한까지 비행기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웃으며 “그럴 수 없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한 그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경멸을 종종 보였다고 볼턴은 밝힌다.

폼페이오는 미북 정상회담 도중에도 볼턴에게 트럼프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내용의 쪽지를 건넸다고 볼턴은 전했다. 그 쪽지에는 “그(트럼프 대통령)는 거짓말쟁이(He is so full of shit)”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미북정상회담 한 달 뒤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외교에 대해 “성공할 가능성이 제로(0)”라고 표현했다고 전했다. 볼턴은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등 뒤에서 그를 신랄하게 비난했고, 좌절감과 넌더리에 사임까지 고려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우리가 왜 한국을 지키나...미군 철수로 위협하라"

 

싱가포르 회담에서 볼턴을 가장 충격을 받은 건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군사훈련 중단 약속이었다.

김정은이 먼저 "문 대통령에게 군사훈련 문제를 제기하니 오로지 미국의 결정에 달렸다고 하더라"며 훈련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은 도발적이고 시간과 돈 낭비"라며 "결코 동의하지 않는 (미국) 장군들은 무시하고 협상하는 동안은 훈련을 중단할 것"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미국에 많은 돈을 절약해줬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김정은은 활짝 미소를 지었고 동석한 김영철 부위원장과 껄껄 웃기도 했다고 볼턴은 전했다.

볼턴은 “(트럼프 행정부와) 한국, 일본과의 관계를 괴롭히는 사안은 주한 미군이 얼마 만큼의 비용을 분담해야 하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세계에 퍼져 있는 미군을 보며 “우리가 왜 이들 나라에 들어가 있나”라고 묻기도 했다.

볼턴은 한국에 대해서 “안보에 대해 미군이 철수한 한국은 상상할 수 없다”며 “그들(한국)의 지속적인 높은 분담금 인상 반대는 (한국 안보의) 리스크를 높일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 이때 방위비 협상은 우여곡절 끝에 타결됐다. 그러나 볼턴은 “미군이 철수하지 않도록 협상할 1년을 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2019년 7월 볼턴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 논의를 위해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다. 볼턴은 “트럼프만이 얼마면 만족할 지를 알고 있다”며 “진짜 (방위비) 숫자가 무엇인지 추측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자신도 모를 것이라고 했다.

볼턴이 워싱턴으로 돌아왔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분담금 증액을 얻기 위해 “미군 철수로 위협하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각 “연 (일본에서) 80억 달러와 (한국에서) 50억 달러를 얻는 길은 모든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당신을 매우 (협상에서) 강력한 위치에 있게 한다”고 말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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