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 칼럼] 과학의 나라에서 신화와 조작의 나라로
[황승연 칼럼] 과학의 나라에서 신화와 조작의 나라로
  •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프로필사진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20.05.27 15:06:27
  • 최종수정 2020.05.29 14:44
  • 댓글 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 통계가 중국 통계를 닮아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나라 법정이 중국의 인민법정과 닮아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나라 교과서가 북한의 교과서를 닮아간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조선시대의 그것을 닮아간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행정, 입법, 사법, 언론, 심지어 야당까지 모두 장악된 지금의 우리나라가 나치시절의 독일을 닮아간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과학은 사라지고 신화가 판치는 그런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조작된 통계가 판치는 나라들

통계의 조작은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않고 국민의 마음을 가지고 놀려는 나라에서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망해가는 나라는 통계의 결과를 조작하여 알리거나 마음에 드는 결과만 골라서 보여주는 수법으로 사람들을 속인다. 통계 중에서도 믿지 못할 통계의 대명사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통계이다. 중국에서 대약진운동 때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참새잡기, 쥐잡기 운동이 있었는데, 지방정부에서 올라온 보고 숫자를 합쳐보면, 잡았다는 참새나 쥐의 숫자가 전 중국에 존재한다고 추정하는 개체수보다 훨씬 많았다. 식량의 생산 실적을 보고할 때 목표를 초과달성을 했다고 속이고 실제보다 부풀려 보고했다가 그 통계를 기준으로 식량 정책을 쓴 결과 중국에서 엄청난 아사자가 발생했다. 영국의 철 생산량을 따라 잡겠다고 목표를 세우고 통계 숫자를 위해 많은 무리를 했다. 철의 생산 실적을 높이라하니 눈에 보이는 쇠붙이는 다 갖다 바쳤다. 솥, 식기도구 또는 주로 농기구였던 쇠붙이를 마을마다 만들어 놓은 토법고로에서 녹여 철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농기구들은 품질이 떨어져 사용하기도 전에 모두 부러져버렸다.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었다. 고철이 없어서 철 생산량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농사는 게을리 하고 고철을 찾으러 다녔다. 농기구를 다 없애버린 것은, 참새 박멸운동을 해서 병충해가 심해진 것과 함께 대기근의 원인이 되었다. 용광로에 땔 나무를 구한다고 벌목을 무분별하게 하는 바람에 산사태와 홍수가 났다. 생산량이 늘었다고 보고받고 목표 초과달성이라고 발표도 하고 거기에 따라 세금도 많이 거두어들였다. 모택동의 무오류 신화를 지키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결과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다. 

1958년 6월 어느 날 인민일보는 ‘허난성 어느 현의 ’인민공사‘라고 불리는 한 협동농장에서 200평 정도의 땅에서 1007Kg의 밀을 생산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일반적인 생산량의 3배 정도였다. 이 기사를 읽은 농민들은 이 기사가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두려워서 말하지 못했다. 바른 말을 했다가는 자본주의자, 반동분자로 몰려서 모택동 추종자들에게 봉변을 당하거나 심하면 맞아 죽기 때문이었다. 

1958년에서 1962년 사이, 그때 굶어죽고 병들어 죽은 사람의 수가 최소한 3천6백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2008년에서야 홍콩에서 출판된 한 책에서 ‘양계승’이 제시한 통계이다. 또 아사자와 더불어 인구의 자연증가율에 따라 태어나야할 4천만 명이 태어나지 못했다 한다. ‘양계승’은 대기근의 희생자를 7천6백만 명으로 잡는다. 중국정부는 대기근의 참상을 극비에 붙였다. 이 사실이 50년 동안이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에 통계는 모택동과 당시 총리이던 주은래에게 직접 보고되었고, 주은래는 모든 자료의 소각을 명령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중국정부의 인구 통계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2008년 홍콩대학의 ‘디퀘터’교수는 대약진운동 때 최소한 4천5백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나라일수록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으로 여긴다. 통계 결과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다. 

리커창 부총리는 지난주에 있었던 전인대회에서 예년과 달리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우한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불확실성이 커져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예년의 경우 전인대회에서 성장률 목표치를 제시하고 항상 1% 이내의 근접한 성장률을 기록했다. 목표를 제시하면 제시된 목표에 맞추기 마련이고 이렇게 맞추기 위해 광범위한 조작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서방국가에서는 거짓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의 실제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려고, 전기사용량, 발전량, 건축 중인 부동산 면적, 화물 및 승객 운송, 화물 물동량 등의 수치를 동원하여 추정한다. 심지어 약 6천개의 산업 거점을 인공위성으로 추적하여 야간 빛의 강도와 적외선 영역을 분석하여 중국 공장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그 추이를 추정해 내고 있다. 통계를 믿지 못하니 동원된 기발한 수법들이다. 

중국의 통계를 닮아가는 한국의 통계

통계학이라는 영어단어 Statistics는 나라, 국가라는 뜻의 State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이는 국가의 인구, 경제력 등 국가의 다양한 자료를 조사하고 비교 검토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의 정부는 예측 가능한 정책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이를 위해 정확한 통계를 제공하여 도움을 주려는 통계청과 같은 기관을 둔다. 그러나 어떤 나라처럼 국민들을 속이려는 정부의 의도를 몰라보고 눈치 없이 계속 정확한 통계를 만들어내면 통계청장은 바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2018년 8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결과 소득분배가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가계동향 조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 이례적으로 통계청장이 경질되었다. 새롭게 바뀐 통계청장은 통계전문가라고 보기 어려운 ‘마르크스주의 경제이론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학자였다. 당시 취임식에서 신임 통계청장은 “특정해석을 염두에 둔 통계 생산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청와대도 “통계청의 독립성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통계청장 경질 후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특정 해석을 염두에 두고 통계를 생산해내는 일들이 다반사가 되었다.

가계동향조사를 통해 소득분배 변화의 통계를 분기별로 볼 수 있는데, 2018년 이 통계 수치가 급격히 악화되자 통계청장을 경질되고 조사 방식이 변경되었다. 통계방식을 바꾸는데 100억의 예산이 들었다 한다. 조사 방식과 기준이 변경되면 예전의 자료와 비교할 수 없게 된다. 비교 불가능하도록 방식을 바꾼 것이다. 통계청장을 바꾸면서까지 정확한 자료보다는 특정 집단에게 보기 좋은 자료를 만들어 제공하면서 나아졌다고 연극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 출석해 야당의원들의 날선 질문에 답을 했던 신임 통계청장은 ‘차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유념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계속 과거 통계와 비교할 수 없도록 만들고 발표했다. 통계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말이 있다. 통계로 국민들을 속인다는 말이다. 이때 주로 예로 드는 것이 있다. 머리는 섭씨 –20도의 냉장고에, 다리는 섭씨 +60도의 뜨거운 물속에 놓여 있어서, 사람은 고통 속에 죽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냉장고의 온도와 난로의 온도를 평균을 내어보니 +20도의 쾌적한 환경에 있다고 발표한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바뀐다. 진실을 말함으로써 협조를 거부한 것에 대한 응징인가? 그러면 다음에 부임하는 통계청장부터는 눈치를 보게 된다. 다시는 바른 얘기는 하지 못한다. 

주 52시간 근로제,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등의 정책으로 자영업, 중소 제조업체의 붕괴가 눈에 보이는데 이를 보도하면 가짜뉴스라고 비난을 받는다. 실업자가 더 늘지 않았다고 그리고 가끔은 실업자가 오히려 줄었다고 정권 홍보를 하곤 한다. 국민들에게 아직 망하지 않았다는 희망을 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희망보다는 사실을 알려 정책을 수정하고 수습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취업은 안 되는데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고용동향에서는 실업률이 오히려 낮아졌다고 발표한다. 일할 능력이 없거나 일할 의사가 없는 사람을 뜻하는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었기 때문에 실업률이 낮아졌다고 발표한다. 이들은 취업을 포기하여 실업률 통계에서 제외된 것이다. 실업률이 낮아져서 좋아졌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정부는 공공부문 40만개, 민간부문 15만개 총 55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온갖 규제와 세금으로 아사 직전으로 만들어 놓고, 실업률이 높아지니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어서 제공하겠다한다. 그래서 제공하는 일자리가 어떤 것인가? 공공기관 공공데이터 구축업무, 온라인 강의와 교육 지원,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연구실 취급 유해물 전수조사와 DB구축, 관광지 공연장 병원 등에서의 방역활동 등이다. 꼭 필요한 일들도 아니고, 없다고 해서 사회에 문제가 되는 일들도 아니다. 필요한 일이 아니라 일자리를 위한 일이다. 예전에는 대학의 빈 강의실 소등하는 일자리도 있었다. 이번에 나온 정부제공 일자리도 단순 업무, 단순 노동이다. 실업률이 낮추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기업할 자유를 주고 세금을 낮춰주고 규제를 없애줌으로써 기업이 스스로 고용을 확대하게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시장을 모르거나 시장을 인정할 뜻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대기업들은 국유화하거나 아니면 노조가 장악하게 하여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이 목표인 것으로 보인다.

통계 조작은 망해가는 나라의 특징이다. 2000년 그리스 정부는 재정적자 규모가 GDP 대비 6%라고 발표했다. 실제로는 12.5%였다. 이 통계조작 사실은 9년 후에나 밝혀졌다. 그 때가 되어서야 사회당의 파판드레우 총리는 재정통계가 엉터리라는 것을 실토했다. 12.5%도 믿기 어렵다고 재조사를 하자 재정적자는 13.6%로 바뀌었다. 결국 그리스는 국가 부도 위기를 맞았고 유로존 전체의 금융위기를 불렀다. 그 후 그리스는 가혹한 구조조정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거의 대부분의 국가 자산을 외국에 넘겨야했다. 기업들과 능력있는 젊은이들은 외국으로 떠났다. 

우리나라의 통계도 점차 중국을 닮아가고 있다. 통계가 ‘새빨간 거짓말’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따라할 것이 없어서 중국의 통계 수법을 다 따라하게 되었을까?     

북한 교과서를 닮아가는 한국의 교과서 

북한의 교과서나 학술 논문은 그 수준이 북한에서 나오는 종이나 인쇄의 질만큼이나 열악하다. 북한에서 나온 책들 몇 권을 보고 짐작컨대 북한의 모든 교과서나 논문의 시작은 항상 김일성, 김정일의 교시나 지적에서부터 시작한다. 

1992년 김일성은 단군전설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단군릉이라는 묘비가 세워진 무덤을 파보라는 구체적인 과제도 주었다. 1993년 노동신문은 평양인근에서 5천년전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며 단군이 분명하다고 이는 김일성의 ‘천리혜안의 예지’라고 했다. 단군릉을 발견했다며 발굴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뿌리는 평양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평양이 우리 민족의 발상지라는 주장에서 더 나아가 ‘대동강 유역은 인류 고대문명의 발상지이고 대동강 문화는 세계5대문명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우리 민족이 다른 곳에서 한반도로 흘러들어 왔다는 것은 주체성이 없는 사대주의적 것이라며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시작했다는 본토기원설을 주장했다. 그 이유로, 턱의 도출 정도를 각으로 표시하는 얼굴 각이 현대인은 84.7도이고 우리 조상들은 84.5도로 거의 같으므로 인류학적으로 단일민족으로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신화를 발전시켜서 거기에다 숫자를 더해 역사책을 쓰는 것이다. 김정일의 말과 같이 ‘역사를 배우는 것은 혁명을 더욱 힘차게 전진시키자는데 목적이 있다’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는 언제부터인가 확고한 목적을 갖고 혁명을 전진시키기 위해 씌여지고 있다. 점점 북한 교과서와 닮아간다. 영화의 장면으로 역사를 설명하면서 교과서에 버젓이 실리는 것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배우가 교과서에 실리는 세상이 되었다.     

영화와 소설의 내용이 역사책에 등장한다. 교사들은 이를 강요하고 학생들은 이를 믿는다. 역사의 기억이 학생들의 머릿속에 재구성된다. 이런 지적 수준에서, 원전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를 본 사람이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세계 최고수준의 원전기술을 포기하고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정책을 내세워 경제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다. 영화가 아니라 어떤 과학적인 근거에 대해 듣고 싶은데,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원전 경제성에 대한 조사결과의 은폐와 조작이다. 감사원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결정에 대한 타당성을 감사 중이었는데, 감사의 법정기한을 넘기고 발표가 총선 이후로 미루어졌었다.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이를 지켜본 감사원장은 양심이 찔렸는지 ‘외부이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고 했다.      

세계 최고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의 지적 수준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이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 못하고 영화와 실제를 구분 못한다. 신화가 역사를 대치하면서 신화의 나라로 변해간다. 북한과 비슷하게 하향평준화 하려는 시도인가? 원전 사고에 관한 한편의 영화를 보고 감명 받아서 탈원전 정책을 세우고 집행했다는 말을 믿고 싶지 않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대통령을 음해하려고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난 후 흘렸다는 대통령의 눈물을 국민들이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나라의 수준도 북한의 그것과 비슷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 높은 지지율이 이해가 된다. 

‘김일성의 축지법은 불가능하다’는 보도가 노동신문에 나왔다. 김일성의 축지법 얘기는 1959년 ‘항일 빨치산들 회상기’에 나오는데, 이번에 이 사실이 보도되기까지 무려 60년이 걸렸다. 나뭇잎을 타고 강을 건너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모래로 쌀을 만들었다는 신화는 언제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할까? 북한에서 그동안 이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역사를 모조리 조작해서 만들어낸다. 역사적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조지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도 지배한다’고 했다. 한국도 점점 북한 수준과 비슷해져가고 있다. 역사를 검찰 수사로 그리고 판사들의 판결로 다시 쓰려한다. 여당은 총선에서 압승한 후 역사에 대한 많은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좋은 재판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재판인가?  

최근에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대법원장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좋은 재판이 실현되어야할 때‘라고 말했다. 그리고 MBC, KBS, YTN 방송은 모두 충성 경쟁하듯 과거 특정 사건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고 분위기를 잡은 후, 여당에서는 대법원 판결 후 형을 살고 만기 출소한 사건인 ‘한명숙사건’을 재조사하자고 했다. 어떤 의원은 KAL 858기 폭파테러사전도 재조사하자고 한다. 현재 5.18도 조사위원회가 열리고 있고, 세월호도 재조사를 하고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답이 나올 때 조사가 마무리 되나? 한편 유재수도 석방하고 정경심도 석방하고, 조국의 동생 조권도 석방했다. 이것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법원의 판단인 것 같다. 촛불이 진실을 이기는, 촛불이 신화가 되는 그런 사회가 된 것이다. 중국의 인민법정을 닮아가는 것 같다. 국민을 팔아서 좋은 재판이라고 우기는 그런 저질 법정이 되어 가고 있다. 북한의 법정, 조선시대 원님재판이 되어가고 있다. 양심이 있는 법관들이여 아직 남아있는가?  

행정부, 입법부, 이제는 사법부도 완전히 좌파에게 장악되었다. 언론도 모조리 좌파에 장악되었다. 야당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이들에 의해 종합적으로 국민들의 기억이 조작, 역사가 날조된다. 나치시절 독일을 닮아간다. 우리나라의 역사교육 수준과 국민들의 역사의식이 이 정도이니 영화를 역사라 우기고 신화를 역사라고 우기면서 역사왜곡과 조작이 일상화 되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정의기억연대’와 같은 조직들이 역사의 조작을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다. 비상한 머리의 작가 한 분은 이를 “역사벤처사업”이라 이름 붙였다. 앞으로 이 정권 아래서는, 역사가 국민들의 눈높이에 따라 만들어지는 지금과 같은 환경 아래서는 계속 번창할 사업이다.

5.18때 광주에서 헬기 기총소사가 없었다고 판결이 나왔었다. 기총소사의 매뉴얼이 있었다고 기총소사가 있었던 것으로 얘기했다. 언론들은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르게 썼다. 우리나라에서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취약해서 다 죽게 된다고 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과학이 아닌 신화 속에서 살고 있다. 인류 세계는 신화의 시대에서 권위의 시대로 그리고 실증과학의 시대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실증과학의 시대에서 신화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부끄럽다!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