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결과에 대한 의혹제기는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이지 사회적 부당행위일 수 없다
재검표 등 증거제시를 통해 의혹을 불식시키는 일은 국가의 권위 강화 위해서도 필수적
자기성찰 장애된다는 이유로 개표부정 의혹 제기하는 용기마저 없다면 공정선거원칙 준수 주장조차 못하는 꼴

한달 전, 4.15 선거의 결과가 윤곽만 나왔을 때 이 칼럼을 쓸 차례가 되었던 나는 우선 대한민국 애국우파 진영의 패배를 인정하고 당선자들에게 축하와 당부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당락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해방되어 사면초가인 이 나라를 구하는 일에 전념하고 정치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자기와 가족이 몸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을 위해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필요한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라고 애원 비슷한 권고를 했었다.

솔직히 말해 부정선거 가능성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정치인으로 한계는 있을 망정 탄핵에 해당되는 대역죄를 짓기는 고사하고 일편단심 국가를 생각하는 것 이외에 따로 사생활이 없었을 정도로 깨끗하게 살았고 외국의 원수들로부터도 상당한 인정을 받던 여성대통령을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정신병자에 가까운 범죄자로 몰아 탄핵을 시키고 대권을 장악하는 선동능력을 발휘했던 사람들이 현재의 집권세력이다. 그런 여권(與圈)이 나라의 이념적, 안보적 근간을 마구 흔들고 도덕적 상식을 짓밟으며 경제체제의 토대를 무너뜨리면서도 권력기반을 다질 시간을 충분히 가졌던 3년차에 치르는 선거에서 두 손 잡고 앉아서 국민의 심판만을 기다릴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20년, 아니 50년, 100년을 집권할 것이라고 민주국가에서 서슴지 않고 소리치지 않았던가. 하지만 기왕에 문재인 친북, 친중 정권의 독주를 압도적 다수의 표차로 제압하지 못한 바에야 불필요한 피가 더 흐르거나 섣부른 부정선거 운운으로 국민의 명예가 전 세계적으로 완전히 땅에 떨어지는 것 만이라도 막고 싶었던 것이 나약한 내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 나라의 헌법체제를 뒤엎고 영구집권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 해도 어느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범죄자의 지문”을 여기 저기 남길 정도로 거친 방법으로 개표부정을 저지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4.15 선거에 관해 현재 제기되고 있는 의혹은 선거직전의 “합법적” 금품살포와 정당별 득표와 지역구별 당락여부간의 격차, 통상적인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결과라고 보기 어려운 여권의 특이한 압승 등 정황적 근거에 더해 옛날식의 투표함 관리 소홀 등 이른바 “아날로그” 차원의 문제제기와 컴퓨터를 통한 개표조작 가능성, 곧 “디지털” 차원의 통계학적 문제제기 두 갈래로 나뉘는 듯하다. 만약에 그 어느 한 쪽에서라도 부정이 들어난다면 그것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까지 완전히 죽지 않은 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지가 오래인 국내의 주요 공공 매체들은 아직도 이 문제를 완전히 외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 인터넷 매체들뿐 아니라 외국의 선거 전문가들과 주요 매체들까지도 이제 그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몇몇 군데서 이미 소송이 제기되었고 조국의 앞날을 생각하며 노심초사하는 재외 동포들의 관심도 대단하다. 의혹을 무마하려는 문재인 정권의 압력이 아무리 크게 작용하더라도 선별적으로라도 개표에 대한 재검증 없이는 이 논란이 그대로 수그러들 수는 없게 되었다.

이번 4.15 선거에서 가장 의아한 현상은 선거에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압승을 거둔 여당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참패를 한 제1 야당도 한 달이 지나도록 선거 결과에 관한 한 쥐죽은 듯조용하다는 점이다. 더 기상천외한 일은 애국우파의 기수를 자처하던 몇몇 인터넷 논객들이 선거 부정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목청을 높이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마치 두뇌가 잘못 된 사람들인 양 심한 공격까지 한다는 점이다. 대표투사를 자처하는 어떤 논객은 심지어 투표함 봉인이 본래 본인이 사진 찍어 놓은 것과 다르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봉인이 떨어져 새로 붙인 것일 뿐 새 서명의 필체가 본래의 것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놀라운 주장까지 한다. 이쯤 되면 부정선거 가능성 여부를 둘러싼 애국우파 진영의 공방에는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어떤 패배주의적 심리적 병리가 개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민주사회에서 선거 결과에 대한 의혹제기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이지 결코 사회적 부당행위가 아니다. 그리고 재검표 등 증거제시를 통해 의혹을 불식시키는 일은 당선자들의 명예뿐 아니라 민주적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를 통한 사회적 화해와 통합, 그리고 국가의 권위 강화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재검표가 반드시 당락에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법도 없고 재검표에서 사실이 재확인된다 해도 그것은 사회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는 비용일 뿐이다. 하지만 만약에 선관위나 여당 측이 문제가 제기된 곳에서나마 투표지 뿐 아니라 투개표와 관련된 모든 장비를 보전하여 재검토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행위야 말로 부정이 있었다는 간접적 시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이다.

애국 우파 논객들이 개표 부정 가능성을 극구 부정하려 하는 것은 황당한 참패 속에서도 자존심은 보정하려는 보상심리가 작용하고 현재의 패배를 감수함으로써 미래를 기약하겠다는 염원적 사고가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4.15 선거에서는 미래통합당의 지도력 부족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래통합당이 주장한 통합은 반(反)문재인 세력의 통합이었지만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통합인지, 당의 이념적, 정치적 정체성이 무엇인가가 완전히 실종된 채로의 껍데기 통합이었다. 따라서 문재인 정권의 맹목적 친북, 친중정책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파괴되는 것을 걱정하는 국민은 어디를 찍어야 할지 몰라 하며 헤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국 우파 논객들 가운데도 기수 격의 인사들이 선거부정의 가능성 제기를 극구 반대하는 것은 바로 부정선거 의혹제기가 우파에게 필요한 처절한 반성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선거불복으로만 국민들에게 비쳐 미래의 재기 가능성까지 차단해버릴 우려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달아야 할 일은 실패에 대한 반성과 선거부정 의혹 제기는 결코 상호배제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지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당선된 사람들은 당연히 재검토를 원치 않을 것이고 개표를 다시 한다고 해서 반드시 야권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디에서고 개표조작 가능성 문제가 제기 된 이상 그것은 결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전자개표가 조작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에 관한 소송이 몇 건 제기된 이상 이제 재검표는 불가피한 일이다. 만약에 그것이 성사되지 못한다면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시민으로서는 이미 정신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선거에 뒤이은 4.19 치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부정선거” “부정부패”가 4.19 의거의 발발 동기였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말만 두루뭉술 사용했다. .

현재 대한민국에서 야권의 핵심세력은 누구인가? 야당이 아니다. 자신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남측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 나라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고 믿는 국민들이다. 그들을 대변해야 될 정당이 제1 야당인 미래통합당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래통합당은 실제로 야당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 했고 못 한다는데 대한민국 애국우파의 비극이 있다. 곧 그 정당은 야당으로서 싸워야 할 때 싸울 줄을 몰랐고 “우파” 또는 “보수”라는 추상적인 말 이외에 문재인 정권과 구분되는 정강이 무엇이고 일관성 있게 지켜야 할 원칙이나 정책기조, 그리고 전통이 무엇인가를 몰랐다. 한마디로 이념적 정체성도 없고 동지적 유대도 없는 기능주의적 빈 껍데기들 만의 집합체로 전락했던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은 문재인 정권이 살포하는 각종의 지원금에 매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당 대표하는 사람이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당선시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니 그녀를 찍어야 보조금이 지급된다고, 그 자체로서 선거법 위반이 될 발언을 하여 그의 당선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하지만 우파 유권자들의 수준은 그들보다는 나았다고 적어도 나는 믿는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지 정당이 아니며 따라서 야당이 아무리 잘못 한다 하더라도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전복시키려는 의도를 이미 분명히 드러내는 여당에 전권을 줌으로서 대한민국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을 가진 국민이 제법 많았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악재에도 불구하고 정당별 투표에서는 야당이 근소의 차이나마 여당에 앞섰다는 데서 드러났다. 그런데 지금 만약에 치열한 자기성찰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개표부정 의혹을 제기하는 용기마저 없다면 그것은 좌파가 마련해 놓은 ‘막말” 덫에 걸려들었듯 다시 한번 저들의 덫에 걸려들어 민주주의의 요체인 공정선거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조차 하지 못하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작년 개천절날 이승만 광장에 모여들었던 애국우파들의 기운을 선거에서 전혀 담아내지 못했던 야당은 또 다시 국민이, 아니 전세계 민주사회의 여론이 차려놓을 밥상조차 찾아먹지 못하는 거렁뱅이 신세가 되는 것이 아닌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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