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칼럼] 4.15 총선 이후 한국의 안보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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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4.23 11:10:48
  • 최종수정 2020.04.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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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失政에도 '야당복과 언론' 덕에 압승한 집권당...안보 약화와 동맹 이완 계속될 것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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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아닌 좌파의 승리

186 대 107. 우파의 참패와 좌파의 압승으로 긑난 4•15 총선의 최종 스코어다. 186이란 거여(巨與) 180석에 다른 좌성향 정당의 6석을 합친 숫자이며, 108은 거야(巨野) 103석에 우성향 무소속 4석을 합친 숫자이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진보의 승리와 보수의 배패’라고 했지만, “보수들이 벌이는 구태(舊態)에 진저리를 낸 진보가 좌파의 편을 들어주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본래 ‘진보(progressive)’와 ‘보수(conservative)’란 자유민주주의 체제 유지, 국가안위, 국리민복 등의 동일한 목표들을 지향하되 목표 성취를 위한 정책 기조에서 더 전향적이고 덜 전향적이라는 차이를 보일 뿐이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주사파가 아니다. 대부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며 결코 사회주의 체제나 수령독재 체제의 북한식 주체사회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좌우 스펙스럼에서 보수와 진보는 체제 유지를 원하는 ‘우파’에 속하며 체제 변혁을 원하는 ‘좌파’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좌파는 우파의 왼쪽에 위치한 진보들을 ‘내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함으로써 대승을 거두었다. 때문에 이번 총선은 ‘우파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 즉 보수와 진보가 패배한 선거였다. 진보들은 자신들이 지지한 정당이 압승했다는 이유로 승리감을 느낄 수 있지만, 힘을 더한 좌파들이 보수나 진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가는 것을 확인하고 자신들도 패배자였음을 깨닫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쨌든 이제부터가 걱정이고, 안보 문제도 걱정거리 중의 하나이다.

야당복(野黨福)과 언론이 가져다준 집권세력의 승리

사회주의 경제 정책으로 인한 기업들의 도산과 수출 부진, 여건에 맞지 않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몰락과 청년 일자리의 상실, 세금 폭탄을 통한 무분별한 돈뿌리기 정책으로 인한 국가경쟁력 약화, 경제•환경•안보의 기초 체력을 망가뜨리는 정체불명•국적불명의 탈원전 등 무수한 실정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이 압승을 거둔 2대 요인은 ‘야당복과 언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정권 심판론’은 실종되었고, ‘야당 심판론’이 부상했다.

좌클릭을 통해 ‘중도 잡탕’으로 변질된 거야는 연방제 통일, 경제, 외교•안보•동맹 파괴, 탈원전 등 정권심판론을 지피는데 필요한 거대 담론들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고, 보수성향이 강한 당내 우파 후보들이 개인플레이를 통해 이런 담론들을 제기했지만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덮히거나 젊은 진보들로부터 ‘꼰대들의 잔소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좌파들이 만든 ‘진보 대 보수’ 프레임을 깨부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동시에 모든 이들이 염증을 느낀 꼴볼견들을 연출했다. 좌파들이 순수한 진보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진보’로 자칭(自稱)하면서 ‘진보 대 보수’라는 프레임을 만들어가는 중에도 야당은 ‘보수 통합’이라는 용어를 계속 사용했다. 그런 표현이 진보들을 배척하여 ‘진보를 자칭하는 좌파’들 쪽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외면했다. 그래서 양쪽에서 표밭은 잃었다. ‘진보 대 보수’라는 프레임 하에서 많은 젊은 진보들이 ‘진보를 자칭하는 좌파들’이 자신들과 한편이라는 착각을 하는 중에 거야의 구태까지 목도하면서 야당을 외면했다. 적지 않은 우파 성향의 국민들은 거야의 구태와 좌클릭 놀음에 실망하여 투표장을 찾지 않았다.

거야의 추태는 ‘보수’를 자칭해온 사람들의 정치 수준이 수십년 전보다 오히려 후퇴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지도력 부재, 분열, 나누어 먹기, 사천(私薦), 돌려막기 등의 다양한 메뉴들을 골고루 선보였다. 중도 좌클릭을 위해 K, P, L, G씨 등 ‘난데없이 나타난 회색지대 인사들’에게 공천의 칼자루를 주었고, 이들은 지난 3년간 오뉴월 뙤약볕과 한겨울 눈바람을 맞으면서 대정부 투쟁을 전개해온 아스팔트 우파들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다수의 중도파는 물론 좌파 인사들까지 영입했다. 통합에 참여한 계파들은 지분을 나누느라 분주했고, 때아닌 ‘돌려막기’로 검투사들이 필요한 곳에 곡예사들을 심었다. 특정인에게 공천을 주기 위해 멀쩡하게 지역 관리를 해오던 후보들을 험지로 유배(?)를 보낸 것이다.

결과는 처참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경기도의 S 의원, 법사위에서 좌파적 법안을 저지하는 수문장 역할을 해온 강원도의 K 의원, 서울시장을 지낸 서울의 O 후보, 원내대표를 지낸 서울의 N 의원 등이 줄줄이 낙선했고, H 당대표도 종로에서 참패한 뒤 사퇴했다. 돌려막기의 희생물로 전락한 후보들은 유배지에서 사약(死藥)을 들었다. 우파의 여전사로 불리던 J 의원은 인천으로 쫒겨 가 낙선했고, 또 다른 여전사인 부산의 L 의원도 지역구를 바꾸면서 낙선했다. 대통령 후보를 지낸 H 전 의원, 경남지사를 지낸 K 전 의원 등이 가까스로 생환했지만, 이들은 공천에서 배제되어 무소속으로 당선된 인사들이어서 복당(復黨) 문제가 남아있다. 난데없이 등장한 중도-좌파 후보들도 전사(戰死)했다. 온갖 구태들을 연출하더라도 이런 사람들을 내보내면 젊은 진보들이 대거 표를 모아 줄 것으로 생각한 것 부터가 착각이었다. 이 과정에서 당 대표의 리더쉽은 보이지 않았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라고 요리사를 채용했더니 무경력자가 들어와서 미숙한 칼질로 이도 저도 아닌 잡탕밥을 만들고 만 것이다.

언론은 집권세력의 막강한 우군(友軍)이었다. 따지고 보면, 집권세력의 실책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묻혀버린 것이나 거야의 구태들이 국민 사이에 널리 회자되어 정권심판론이 아닌 야당심판론이 부상한 것에는 노조가 장악한 지상파 방송들과 신문언론들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 좌파들이 ‘좌우 대결’ 구도의 부상을 막고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가져갈 수 있었던 것에도 언론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그 결과, 야당은 개헌 저지선을 겨우 넘긴 숫자의 의석을 확보했지만, 중진들과 투사들이 거의 전멸한 상태에서 다가올 거여의 공세를 어떻게 막아낼지 의문스럽다. 비례후보로 당선된 S 장군 등 한 두 사람을 빼면 안보 전문가가 보이지 않는 야당이 저들의 안보 파괴를 어떻게 저지할지도 의문스럽다.

3대 안보정론 무시에서 출발한 안보 파괴

안보 파괴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되어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크게 보면, 안보 파괴는 세 가지의 안보관련 정론들을 무시하면서 시작되었다. 대북정책에 있어서 정론이란 남북 간 화해협력을 도모하는 중에도 이와 별개로 튼튼한 안보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남북화해와 확고한 안보는 동행•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사적 억제에 있어서 정론이란 취약성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가 나를 위협할 수 있으면 나도 상대를 위협할 수 있어야 군사적 억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군비통제에 있어서의 정론이란 어느 한쪽만을 취약하게 만드는 합의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상대가 공격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이쪽에서도 방어무기와 감시정찰 수단들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고, 특히 도발을 일삼아온 공자(攻者)와 도발을 막아내는데 급급해야 하는 방자(防者) 간의 군비통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정론들을 초장부터 무시되었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포부는 좋았지만, 문 정부는 그 평화가 정착되기 전에 국방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군사력 축소 및 군 복무기간 단축과 함께 군의 무형전력을 이완시켰고, 남북관계의 좋고 나쁨을 떠나 늘 부릅뜬 눈으로 북녘을 주시해야 하는 군대에 평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군 복지 향상 또는 인권 개선이라는 이름 하에 시행된 조치들 중에는 군 기강 이완, 강훈 회피, 주적 개념 실종 등을 가져온 것들이 적지 않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줄기차게 개발하는 중에도 대북 억제역량을 감축함으로써 한국의 핵인질 상태를 심화시켰다. 북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지난 정부때부터 추진해오던 ‘한국형 3축 체제’는 흐지부지 되었고,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해 제대로 된 항의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남북 간의 비대칭 상태를 스스로 기정사실화했다. 2018년 9•19 남북군사분야합의는 군비통제의 원칙들을 묵살한 것이었다. 북한이 공자(攻者)이고 한국이 방자(防者)인 상황에서 휴전선 일대의 감시정찰 비행을 상호 금지하는데 합의한 것은 방자에게만 불리한 것이다. 상호 군사훈련을 금지한 서해 평화수역은 평양에서는 먼 바다이지만 한국에게는 수도권의 측방을 지키는 보호막이다. 이 역시 방자에게 불리한 것이다. 정부는 휴전선 전방초소를 11개씩 동수로 철거했으니 공정했다고 주장했지만, 한국군의 초소가 60여 개인데 반해 북한군은 160여 개의 전방초소를 운영하고 있던 중이었다. 향후 50개씩 ‘동수로 공정하게’ 철거하면 한국의 모든 전방초소들이 없어질 판이다. 결국, 9•19 군사합의는 당장 군사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북한군의 기습공격시 순식간에 하늘과 바다 그리고 육지가 뚫릴 수 있는 전략적 취약성을 자초했다. 어떤 나라의 경우에도 방자가 이런 군비통제 합의에 얼씨구나 서명한 사례는 없다.

동맹 파괴 우려된다

싫든 좋든 미국은 6•25 전쟁에서 한국의 공산화를 막아준 나라였고, 한미동맹은 이후 수십년 동안 안보방패와 안정성을 제공함으로써 한국의 경제기적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지금도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의 여권의 압승으로 동맹 파괴의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우려된다.

문재인-트럼프 콤비네이션이 등장한 이래 지난 3년 간 한미동맹의 건강성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문 정부는 북한을 안보위협 세력으로 보지 않는 친북적인 정책기조를 취하면서 중국에 대해서도 과도한 친근감을 보이면서 중국이 원하는 것들을 죄다 들어주는 기조를 취해왔다. ‘친북(親北)•종중(從中)’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음은 당연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지나친 반일(反日) 정서를 표출했고, 미국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탈미(脫美) 기조를 견지했다. 적지 않은 미국 국민, 전문가, 정책결정자 등이 “왜 우리가 한국을 지켜주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미국의 방위공약이나 핵우선의 신뢰성은 크게 약화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엎어진 동맹을 밟는 역할을 하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업주의적인 접근이다.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를 외치면서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을 위해 돈을 쓰고 피를 흘려온 전통적인 적극적 개입주의 (On-shore Intervention)을 포기하고 가급적 미국의 돈과 피를 아끼는 소극적 개입주의(Off-shore Intervention)로 선회하면서 나토(NATO), 일본, 한국 등 동맹국들에게 무자비할 정도로 방위비분담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집권세력이 기존의 ‘친북•종중•탈미•반일’ 기조를 고수한다면 동맹의 건강성은 더욱 악화될 것이고 동맹의 파멸까지도 걱정해야 할 것이다.

동맹과 관련하여 헤쳐나가야 할 과제들은 너무나 많다. 사드(THAAD) 추가 배치 문제, 방위비분담금 협상,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의 조기 전환 문제 등 풀지 못한 문제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드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게 ‘3불(不) 약속’을 해주면서 꼬일대로 꼬였다. ‘3불 약속’이란 중국에게 사드의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 체계와의 통합, 일본과의 안보동맹 등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준 것을 말한다. 북한이 핵개발과 미사일 성능 개선을 계속하고 있음에도 한국은 48기의 요격미사일을 가진 사드 1개 포대만을 성주에 배치하고 있을 뿐이며, 그나마 데모꾼들이 정문을 지키고 있어 기지의 정상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 방위비분담금을 둘러싼 한미 간 협상도 난항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분담금을 2019년 대비 13%나 올린 1조 1700억 원을 내겠다는 한국 정부의 제안마저 거부함에 따라 2019년 말에 타결되었어야 할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해를 넘긴 지금도 미결 상태에 머물고 있다.

전작권 문제는 동맹의 존속과 관련한 핵심 사안으로서 사드 문제나 분담금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비중을 가진다. 현 전작권(War-Time Operational Control)-연합사(CFC) 체제는 전쟁이 나면 한미군이 단일 지휘체제 하에서 한 몸이 되어 싸우도록 해놓은 것이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1978년에 창설된 것이 한미연합사이다. 연합사의 사령관이 미군 대장이고 부사령관이 한국군 대장이어서 미군이 한미군의 작전을 주도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한국의 좌파들은 군사주권과 국가자존심을 미국에 맡겨놓은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여왔다. 국가자존심보다는 국가생존이 먼저라는 합리적인 설명에는 귀를 막았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현 전작권-연합사 체제는 적화통일과 전쟁도발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때문에 이 체제를 해체하는 것은 북한과 중국의 오랜 숙원사업이다. 한국 정부가 그들의 숙원사업을 조기에 해결해 주기 위해 진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많은 전문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우려스러운 국방장관의 안보 인식

송영무 국방장관에 이어 현 정경두 장관도 청와대의 ‘전작권 조기 전환’ 방침에 적극 순응하고 있다. 국방부는 2019년에 기본작전운용능력(IOC) 평가를 거친데 이어 2020년에 완전작전운용능력(FOC) 평가 그리고 2021년에 완전임무수행능력(FMC) 평가 등 모두 3단계의 평가를 거쳐 2022년에 전작권을 전환한다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2018년 10월 31일 제50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정경두 장관과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새로운 연합방위지침에 합의했는데, 핵심 내용은 전작권은 예정대로 조기에 전환하되 전환 이후에도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고 현 연합사를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을 그리고 미군 장군이 부사령관을 맡는 미래연합군사령부로 대체한다는 것이었다. 정 장관은 지난 2020년 3월 20일자 미국의 Defense News지에 특별기고문을 실었다. 주된 내용은 한미 군사당국이 철통같은(ironclad)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조건 충족에 따른 전작권 전환이 잘 추진되고 있다는 것, 현 한미연합사가 미래연합사(FCFC)로 대체되고 한국군 대장이 사령관을 맡더라도 주한미군(USFK) 주둔과 유엔사(UNC) 역할을 보장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 등이었다.

하지만, 많은 안보전문가들은 이런 안보 인식에 동의하지 않고 질문을 계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작권을 분리하더라도 국민의 우려를 감안하여 연합방위태세는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한다면 연합방위를 위한 최적의 체제인 현 체제를 그대로 두면 될 일이 아닌가? 연합방위태세를 중시한다면서도 굳이 전작권을 분리하겠다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국방부는 조건 충족에 근거하여 전작권을 전환한다고 하지만, 박근혜 정부시절 한미가 합의한 조건은 연합작전을 주도할 한국군의 능력,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한 초기 대응 능력, 주변의 안보환경 개선 등이 아닌가? 한국군이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현 전작권 체제를 허무는 것은 안보위협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국방부가 시행하고 있는 3단계 검증이라는 것은 ‘정해진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순’이 아닌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전에 이미 주요 연합훈련들이 축소•취소되었는데 철통같은 연합방위태세가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최강국 미국은 외국인 지휘관 밑으로 자국의 전투병을 파병하여 전쟁을 수행한 적이 없는데, 그렇다면 한국군이 사령관을 맡는 것은 곧 미군의 파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전문가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줄 대답은 아직 없다.

어쨌든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신고립주의로 선회하면서 ‘안보 무임승차론’으로 동맹국들을 압박하는 중이다. 때문에 한국이 전적권 전환을 요구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울고 싶은 사람의 뺨을 때려주는 격이다. 동맹신뢰가 바닥이고 주변 여건이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전작권 전환은 ‘동맹 사망’ 선고가 될 수 있다. 미국에게는 현 전작권 체제의 유지 여부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지만, 한국에게는 국가 운명이 걸린 문제다. 동맹이 끝장나면 경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여 주식시장이 붕괴하는 것은 몇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며, 한국의 안보는 망망대해에서 홀로 표류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4•15 총선이 남긴 국가적 과제들

진실로, 4•15 총선은 많은 국가적 과제를 남겼다. 승리한 집권여당이 경제, 사회, 교육 등 제 분야에서 사회주의적 정책들을 가속화시킨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회주의 경제정책의 남발로 경제가 더 어려워 진다면 젊은이들에게 직장을 제공해온 기업들이 망하고 청년 아르바이트 자리가 ‘하늘의 별따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준 젊은 진보들은 군말없이 그 고통을 짊어져야 한다. 그게 그들이 선택한 것이다. 안보약화와 동맹 이완이 계속된다면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집권당이 불어난 의석을 이용하여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을 염두에 둔 개헌을 시도한다면 큰 혼란이 야기되지 않을까? 선거를 앞두고 보이지 않았어야 할 구태들을 연출했던 야당이 건전한 견제세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유비무환(有備無患)•필사즉생(必死卽生)•애민애국(愛民愛國)이라는 이순신 정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총선을 통해 전멸하다시피 한 아스팔트 우파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렇듯 총선이 남긴 과제들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총선이 남긴 가장 막중한 3대 과제를 들라고 한다면 동서분열, 언론 그리고 안보 문제일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다시 한번 극명하게 드러난 동서분열 문제는 대한민국이 한 나라인가를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친기업 정책에는 전국의 모든 기업들이 찬성하는 것이 맞고, 친 노동 정책에는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이 지지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정당간 정책대결이 펼쳐진다. 그러나, 특정 정치세력이 내놓은 정책에 대해 한 지역은 무조건 지지하고 다른 지역은 무조건 반대하는 나라라면, 그건 두 나라이지 한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동서분열이라는 멍에를 언제까지 지고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인들은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언론 문제도 심각하다. 언론 본연의 임무란 정부나 여야의 정책들이나 사건 사고들을 국민에게 알려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건전한 찬반 논의가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언론이 그런 중립적인 비판자의 역할을 포기하고 찬반 논의한 일방에 가담한다면, 언론이 당리당략의 입장에서 알릴 소식과 덮어야 할 소식들을 결정한다면, 또는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포기하고 권력의 응원부대를 자처한다면, 그런 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그런 나라는 희망이 없는 나라다.

안보 문제도 그렇다. 우파의 영역 내에서도 진보적이기보다는 보수적인 입장에서 결정하고 펼쳐져야 하는 것이 안보정책이다. 하지만, 많은 진보 젊은이들은 안보 문제에 무신경하다. 안보를 걱정하는 노인들을 만나면 킥킥대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은 아빠가 걱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아요.” 몇 년 전에 40대에 들어선 큰 딸이 필자에게 대들면서 했던 말이다. 하지만, 안보는 한번 실패하면 재기할 기회가 없다. 경제정책의 실패는 곧바로 망국을 가져오지 않고 정책개선을 통해 회복할 수 있지만, 안보 실패는 단 한번으로 망국을 가져올 수 있기에 보수적 접근이 불가피하다. 그래서 안보에는 ‘안보 딜레마(secueiry dilemma)’라는 말이 있다. 화재보험, 암보험, 자동차 보험 등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듯 안보는 튼튼할수록 좋고 군대는 강할수록 좋은 것이다. 총선 이후의 안보를 걱정하는 것은 결코 ‘꼰대들의 공연한 잔소리’가 아니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前 통일연구원장·前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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