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세상만사] 천안함 10주기, 추모와 함께 꼭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
[김용삼의 세상만사] 천안함 10주기, 추모와 함께 꼭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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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 사태는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200톤 급 초계함이 불과 130~150톤에 불과한 초소형 잠수정이 야밤에 발사한 어뢰 한 방에 두 동강이 나 격침됨으로써 40명의 승조원이 전사(戰死)하고 6명이 실종된 세계 전사(戰史)상 치욕스러운 패전이다. 주한미군, 군 정보라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은 스스로 비상경계를 해제하고, 백령도에 접근하여 서행하다 기습 공격을 당했다. 어뢰 피격과 사후 처리 과정에서 우리 군(軍)이 노출한 참혹한 경계 및 작전의 실패, 무너진 보고라인, 자신들의 실수를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과 변명과 허위보고, 적나라한 각 군 간의 이기주의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대체 천안함 폭침으로 우리 군은 무슨 교훈을 얻었을까?

올 3월 26일에도 어김없이 천암함 폭침 당시 희생당한 장병들의 추모행사가 열렸다. 다른 나라들은 열심히 승리를 기념하며 개선가를 부르고, 개선 기념물을 세우는 데 열중하는 데 비해, 이 나라는 왜 추모 성금 내느라 바쁘기만 한가. 올해는 사건 발생 10주기라서 더 의미가 깊은 것 같다.

국민들은 천안함 순국(殉國) 장병들에 대해 진심으로 추모했고, 국가도 정중한 예우를 갖춰 고인들의 순국을 기렸다. 이제 사건 발생 10년이 지났으니 이 나라의 보수우파라고 주장하는 분들은 가슴이 찢어지는 한이 있어도 천안함 폭침과 관련한 팩트(fact)는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 같다. 더구나 천암함 폭침은 사전에 여러 루트를 통해 적의 공격 징후가 예고되어 있던 상황에서 얻어터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이제라도 우리 군은 사건의 진상을 솔직히 밝혀야 하는데, 은폐 조작에 급급하고 있으니 욕을 먹더라도 기자가 나설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반성과 자성의 교훈이 도출되어 다시는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는 해군 수병 205기 출신이다. 1980년 3월 해군에 입대하여 한국 해군 역사상 간첩선을 가장 많이 격침시킨 역전의 전투함정인 충무함(구축함, DD-911) 전탐수병으로 근무했다. 함상근무를 하는 동안 1980년 8~9월, 동해 저진 앞바다에서 북한 잠수함(혹은 잠수정)으로 추정되는 수중물체와 두 차례 실전 대치했고, 그해 11월엔 남해 욕지도 앞바다로 침투하는 간첩선을 격침시키는 작전에 참여한 참전용사다.

3월 26일은 ‘국군 치욕의 날’

기자는 저진 앞바다에서 적 잠수함과 두 차례 실전 대치 상황을 경험하면서 잠수함이 참으로 무시무시한 공포의 무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후 전 세계에서 나온 잠수함 관련 서적, 잠수함 관련 영화를 비롯하여 잠수함을 만드는 독일 HDW 회사 해외 취재 등을 통해 잠수함 전문가 소릴 들었다. 기자에겐 후배 되는 천안함 순국 장병들에게 다시 한 번 추모의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쓴다.

‘천안함 폭침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200톤 급 초계함이 불과 130~150톤에 불과한 초소형 잠수정이 야밤에 발사한 어뢰 한 방에 두 동강 나서 격침되었고, 이 과정에서 40명의 승조원이 전사(戰死)하고 6명이 실종된 세계 전사(戰史)상 가장 수치스럽고 치욕스런 패전이다. 사건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김태영 장관은 천안함이 피격당한 3월 26일을 ‘국군 치욕의 날’이라고 선언한 바 있지 않은가.

천안함 폭침 사건이 발생하기 4개월 전인 2009년 11월 10일 11시경, 대청도 근처에서 북한 해군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하여 남하했다. 우리 군이 대응에 나서 피아간에 교전이 벌어졌다. 우리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지만, 북한 경비정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비참하게 퇴각했다. 참패의 수모를 당한 북한의 김정일은 충격적인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인민군 총참모장 김격식을 해주를 관할하는 4군단장으로 보내 복수를 명령한 것이다. 우리 군 서열로 보면 서열 1위에 해당하는 합참의장을 군단장으로 보낸 셈이다. 

두 동강이 난 천안함 선체가 인양된 모습. 한미 연합작전이 전개되어 북한이 고도의 경계망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천안함은 북의 포 사정권 내로 진입하여 서행하다가 수중에 매복하고 있던 북한 잠수정이 쏜 어뢰에 맞아 폭침되었다.
두 동강이 난 천안함 선체가 인양된 모습. 한미 연합작전이 전개되어 북한이 고도의 경계망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천안함은 북의 포 사정권 내로 진입하여 서행하다가 수중에 매복하고 있던 북한 잠수정이 쏜 어뢰에 맞아 폭침되었다.

김정일의 특명을 받고 내려간 김격식은 서해안 일대 접적(接敵)지역에서 해안포를 100문 이상 증강하고 장사정포를 다량 배치했으며 잠수함과 잠수정, 대공(對空)미사일, 인간 어뢰부대, 공기부양정 부대 등 대대적인 전력 증강작업을 벌였다. 이로써 서해 NLL 부근에서 우리 군이 북한에 비해 전력의 우위를 보인 것은 수상함뿐이었다. 수중전력(잠수정, 잠수함)이나 지상전력(해안포, 지대함 미사일) 등은 절대 열세 상황으로 돌변한 것이다.

NLL 부근의 전력 증강이 끝나자 김정일은 자신의 후계자 김정은 체제의 확립을 위해 ‘통 큰 도발’을 계획했다. 천안함에 대한 북한의 어뢰 공격은 김정은 후계 세습을 위한 제물이자, 대청해전의 패전에 대한 복수극이었다.

도발 징후 보고받고도 경계 강화 조치 해제

북한의 전력증강에 맞서 우리 군도 ‘NLL 대비계획’을 새로 작성하고 2009년 11월 24일부터 백령도 서남방에 초계함·구축함 같은 대형 함정을 전진 배치했다. 주한미군 정보기관은 2009년 11월 대청해전 이후 지속적으로 우리 합참에 NLL 부근에서 북한이 잠수함 등을 이용한 비대칭 도발 위험을 경고했다.

우리 군 정보기관도 북한이 잠수함을 이용하여 함정 공격 연습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합참은 2010년 1월 북한의 잠수함 공격에 대비하여 함정의 진행 방향을 지그재그로 운행하도록 하는 등 대응 조치를 지시했다.

천안함 폭침으로 인해 우리 해군 장병 40명이 전사하고 6명이 실종되는 충격적인 인명피해를 당했다. 3월 26일은 국군 치욕의 날이다.
천안함 폭침으로 인해 우리 해군 장병 40명이 전사하고 6명이 실종되는 충격적인 인명피해를 당했다. 3월 26일은 국군 치욕의 날이다.

2010년 3월 23일부터 북한 서해 기지의 잠수함(정)들이 거의 동시에 움직여 상어급 2척은 3월 23일부터 28일까지, 연어급은 3월 24일부터 31일까지 감쪽같이 우리의 정보망에서 사라졌다. 천안함 피격 당일인 3월 26일 해군 2함대에는 “또 다른 공작 예비 모선과 연어급 잠수정 1척이 기지를 이탈하여 미식별되고 있다”는 정보가 전파되었다. 바로 이 잠수정이 백령도 해상으로 침투하여 수중에 매복하고 있다가 천안함을 공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군 수뇌부가 북한이 잠수함(정)을 이용한 도발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 되겠다.

불행하게도 우리 군 수뇌부 중 누구도 이 경고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군이 특히 그랬다. 대청해전 이후 예상되는 북의 보복 도발에 맞서기 위해 우리 군은 경계 강화 조치를 취한 것은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도 도발 징후가 보이지 않자 해군은 2010년 2월 18일 경계 강화 조치를 해제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후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해군 수뇌부가 이처럼 정신 나간 자살행위에 돌입한 이유가 있다. 1998년 6월 속초 앞바다에서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이 침투 도중 꽁치 어망에 걸려 나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획한 북한 잠수정 뚜껑을 열어본 우리 해군 당국은 고철이나 다름없는 퇴물 장비와 저열한 성능을 확인하고는 북한 잠수정을 ‘떠다니는 깡통’이라고 얕잡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고물 잠수정이 어떻게 물살이 거세고 시계도 탁한 데다가 수심도 얕은 백령도 근해에서 작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면서.

유고급 잠수정 노획 후 해군의 머릿속에는 “동해는 대잠전(對潛戰), 서해는 NLL 사수(死守)”라는 도식화된 철학이 지배했다. 서해는 수심이 얕고 해저 지형이 복잡하기 때문에 북한의 잠수함(정) 작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상함을 동원해 해상 도발에 대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1998년 6월, 속초 앞바다로 침투 도중 꽁치 그물에 걸려 우리 해군에 노획된 북한 유고급 잠수정. 해군은 이 잠수정의 성능이 엉망진창이란 사실을 알고 "북한 잠수정은 떠다니는 깡통"이라고 우습게 보다가 천안함 격침이라는 비극을 맞았다.
1998년 6월, 속초 앞바다로 침투 도중 꽁치 그물에 걸려 우리 해군에 노획된 북한 유고급 잠수정. 해군은 이 잠수정의 성능이 엉망진창이란 사실을 알고 "북한 잠수정은 떠다니는 깡통"이라고 우습게 보다가 천안함 격침이라는 비극을 맞았다.

게다가 대청해전에서 우리 군이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직후라서 북한의 어떤 도발도 막아낼 자신이 있다고 의기양양했다. 그러나 북한은 1996년부터 서해에서 잠수함(정) 작전을 은밀하게 준비해 왔다. 그 계기는 이렇다.

북한 잠수정, 수면 위로 부상한 채 북으로 도주

1996년 북한 유고급 잠수정 한 척이 우리 영해로 침투하던 중 주수(注水)밸브(잠항이나 부상할 때 물을 담거나 배수 때 사용하는 밸브)가 고장났다. 이 잠수정은 잠항이 불가능하자 대담하게 수면 위로 부상한 상태에서 우리 군의 해안 레이더와 감시망을 뚫고 모항으로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이 놀라운 일을 성공시킨 북한 해군 잠수정 정장(艇長)은 소좌에서 대좌로 2계급 특진과 함께 영웅 칭호가 부여되었다. 북한 군부는 동해에서 성공한 잠수정 작전을 서해에서도 실행하기 위해 잠수정들을 기차에 실어 서해로 대거 이동시켰다. 이때부터 북한군 서해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남포와 비파곶, 해주, 사곶 8전대 기지에서 잠수함, 잠수정이 무시로 출몰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은 우리 군 정보당국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준비를 하지 않았고, 방심했을 뿐이다.

천안함 사건 발생 1주일 전인 2010년 3월 19일. 정옥근 해군참모총장이 물러나고 김성찬 대장이 새 총장에 취임했다. 이날 김태영 국방장관을 비롯하여 각 군 고위인사, 예비역 장성들이 계룡대에서 열린 해군참모총장 이취임식에 참석한 후 오찬을 함께 했다.

김태영 당시 국방부장관. 김태영 장관은 "백령도 같은 곳에 대형 함정을 전진배치하는 것은 어뢰 공격을 당할 위험이 있으니, 소형 고속정을 투입하여 경비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천안함 폭침을 자초했다.
김태영 당시 국방부장관. 김태영 장관은 "백령도 같은 곳에 대형 함정을 전진배치하는 것은 어뢰 공격을 당할 위험이 있으니, 소형 고속정을 투입하여 경비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듣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천안함 폭침을 자초했다.

이날 오찬장에서 전(前) 2함대 사령관으로 1차 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 을 승리로 이끈 박정성 예비역 해군 제독은 김태영 국방부장관에게 우리 군의 ‘NLL 대비계획’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백령도 해역은 북한의 잠수정과 해안포, 지대함 미사일, 수상함이라는 네 가지 위협이 중첩되어 있는 대단히 위험한 수역이다. 이런 곳에 초계함 같은 덩치 큰 배를 백령도에 바짝 붙여서 경비 작전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만에 하나 북의 소형 잠수정이 불시에 우리 함정을 어뢰 공격하고 도주할 위험이 있으니 초계함을 빼내고 고속정을 투입하는 게 정석”이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 신신당부했다.

만약 김태영 장관이 이 건의를 수용하여 실천에 옮겼다면 천안함의 비극은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태영 장관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운명의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이 무렵 한미 연합 키 리졸브 훈련이 진행 중이었다. 북한 인민군은 한미 연합훈련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이 걸려 고도의 경계망을 펴고 있었다. 또 4개월 전 북한 군부가 대청해전의 복수를 위해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황이었다.

무슨 까닭인지 천안함은 이 엄중한 시기에 백령도 서남쪽 1.8㎞까지 접근하여 시속 2~3노트로 서행 항해했다. 이 과정에서 백령도 수중에 매복하고 있던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으로 추정되는 수중 물체가 발사한 어뢰에 피격, 격침되었다.

국방부 대변인의 발표에 의하면 천안함이 백령도에 이처럼 가까이 접근한 이유는 그날 마침 파도가 높은데다가 적의 동굴진지에 있는 해안포, 사정거리 80~90㎞의 지대함 미사일을 피해 음영(陰影)구역으로 기동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천안함은 좁은 접적 수역에서 작전상 규정 속도를 무시한 채 거의 붙박이처럼 저속으로 기동하다가 피격 당했고, 피격 직전까지 어떤 위기 징후도 느끼지 못했다.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천안함의 ‘백령도 접근’

이런 조치는 해군 상식으로 볼 때, 또 기자의 함정 근무 경험으로 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다. 초계함이나 구축함 같은 대형 함정이 적이 고도의 경계망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백령도처럼 적의 해안포나 방사포, 대함미사일 사정권 내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따라서 그런 곳으로 진입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기름을 끼얹고 불구덩이로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만부득이하게 비상 상황이 발생하여 적의 사정권 내로 진입할 경우 전 승조원이 전투배치를 한 상태에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접근하여 상황을 해결한 후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탈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천안함은 이런 상식과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왜 그랬을까?

이런 의문은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서 국방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천안함 TF를 담당했던 이종헌의 저서 『스모킹 건(Smoking Gun)』(맥스미디어, 2016)이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준다.

이 책에 의하면 피격 당일 오후 2시부터 천안함 승조원 식당에서는 골든벨 퀴즈 대회가 열렸다. 천암함 승조원들은 각 파트별로 5명씩 선발하여 휴가 포상을 걸고 문제를 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김연아의 동계올림픽 갈라쇼 TV 중계가 예고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적이 한미연합훈련 상황을 맞아 고도의 경계망을 펴고 있는 앞마당에서 무방비 상태로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는 암시다.

그날 당직 근무를 제대로 서긴 섰나?

잠수함(정)은 수중으로 은밀하게 침투하여 어뢰로 적함을 격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기체계다. 1,200톤 급 초계함인 천안함이 불과 130~150톤에 불과한 소형 잠수정의 움직임을 음파탐지기(소나)로 탐지하여 방어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며, 따라서 어뢰에 피격 격침된 것은 불가항력이라고 자위할 수도 있겠다.『천안함 백서』에 들어 있는 천안함 생존 음탐사 김○○ 하사의 증언에 의하면 “음탐사 정위치에서 음탐기로 들어오는 신호음을 청취하고 있었으나 어뢰 소음이나 잠수함으로 의심되는 신호음은 없었음. 따라서 처음 사고 시 생각난 것은 상선과의 충돌로 생각했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잠수정이 먼 거리에서 은밀하게 기동했으니, 그 소리를 청취하거나 식별하는 것은 어려웠다고 치자. 그렇다면 기자는 묻는다. 기자가 우리 해군 구축함의 전탐수병으로 근무할 때 기자의 바로 옆자리가 음탐사 정위치여서 늘 음탐사와 대화를 했다. 이 과정에서 귀가 아프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다.

잠수함(정)이 어뢰를 발사하는 과정은 ①발사관에 어뢰를 장전한다. ②발사관 해치를 열고 해수를 채운 다음, ③압축공기를 불어넣어 어뢰를 발사관 밖으로 밀어낸다. 발사관에서 사출된 어뢰는 뒤꽁무니에 달린 프로펠러로 추진되어 40~50노트의 고속으로 돌진한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소음이 발생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낡고 오래 된 고물 깡통 초계함에 달린 소나라 해도 어뢰가 천안함 가까이 접근했을 때는 그 소음을 충분히 인지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한다. 천안함이 정상근무, 혹은 전투배치 상태였다면 가까이 다가오는 어뢰 소리를 탐지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사고 후 해군은 일제히 한 목소리로 “천안함 음파탐지기는 어뢰 소음을 식별할 수 없는 고물 구형”이라고 목청껏 외쳤다. 이종현의 저서 『스모킹 건』에도 폭침 사건 발생 직전인 3월 23일부터 어뢰 소리를 탐지할 수 없는 구형 소나를 장착한 천안함을 전진 배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안함 함수 부분에 달려 있던 소나 돔. 사고 직후 해군은 "천안함에 달려 있는 소나는 어뢰 소음을 식별할 수 없는 고물 구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경계근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천안함 함수 부분에 달려 있던 소나 돔. 사고 직후 해군은 "천안함에 달려 있는 소나는 어뢰 소음을 식별할 수 없는 고물 구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경계근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

해군은 천안함에 장착된 소나는 우리 해군이 보유한 소나 중 가장 노후한 것이라서 잠수함(정) 소리만 식별·탐지 가능할 뿐, 어뢰 소음 탐지 기능은 없다고 공식으로 밝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잠수함(정) 공격이 예상되는 시기에, 이를 탐지하는 기능을 갖추지 못한 초계함을 잠수함(정)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접적 수역 경비에 투입한 셈이니, 이것은 어뢰 맞고 죽으라는 자살 특공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해군이 왜 일제히 소나 탓을 하는 발언을 내놓아야 했을까? 소나가 어뢰 소음을 탐지할 수 없는 고물 구형 깡통이어야만 경계근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면탈할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천안함 소나가 그렇게 고물 깡통 구형이었다면, 만사 제치고 소나를 성능 개량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했어야 정상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해군은 천안함과 동일한 소나를 탑재한 함정을 지금도 정상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안함 소나에 대한 해군의 설명이 맞는다면, 우리의 해군 초계함 승조원들은 언제 또 다시 적 잠수함(정)의 어뢰에 맞아죽을지 모르는 비참한 상태에서 하늘에 운을 맡긴 채 경비작전에 임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 천안함 합동조사단장을 맡았던 윤종성 예비역 장군은 “침몰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음탐사가 깜박 졸았는지, 아니면 당직 중 잠깐 자리를 비웠는지 등의 여부는 규명하지 못했다”면서 “솔직히 말하면 해군이 서해에서 잠수함 작전은 어려울 것이라는 지배적인 생각 때문에 대비 태세를 소홀히 하다가 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군 지휘체계 무시하고 청와대에 “천안함 침수” 사실 먼저 알려

그렇다면 어뢰 피격 자체는 불가항력이었다고 치자. 군은 상황이 발생하면 보고가 생명이다. 아무리 사소한 사건사고라도 발생 즉시 지체 없이 상부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군의 기본 생리다. 그런데 참으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천안함 피격 29분 후인 오후 9시48분. 합참에 근무하는 한 해군 중령이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 등 지휘라인에는 정식 보고도 안 된 상황에서 청와대에 파견 근무 중이던 해군 상관인 김모 행정관(해군 대령)에게 휴대전화로 “선배님, 백령도 근처에서 천안함이 침수되고 있습니다. 선배님도 확인하십시오”라며 사건 소식을 청와대에 먼저 알렸다.

사고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이상의 장군. 그는 "우리 군이 대청해전이라는 조그만 승리에 도취해 적의 전술적 변화를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면서 "천안함 피습 날을 국군 치욕의 날로 인식하고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폭침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역 조치되었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고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이상의 장군. 그는 "우리 군이 대청해전이라는 조그만 승리에 도취해 적의 전술적 변화를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면서 "천안함 피습 날을 국군 치욕의 날로 인식하고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폭침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역 조치되었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모 해군 대령은 즉시 휴대폰으로 김병기 국방비서관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고, 김병기 비서관은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비상이 걸린 청와대는 합참으로 확인 전화를 거는 소동이 벌어졌다. 공식 보고절차가 아닌, 해군의 인간관계에 의한 보고채널이 가동되어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청와대에 먼저 상황이 전파된 것이다.

반면에 합참 지휘통제반장은 밤 9시45분 2함대사령부로부터 “원인 미상의 선저 파공으로 침수 중”이라는 상황 보고를 접수했다. 이들은 더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지체하다가 합참의장에게는 사건 발생 49분 후인 밤 10시11분, 국방부 장관에게는 그보다 3분 더 늦은 10시14분에야 휴대폰으로 최초 보고했다.

문제는 또 있다. 사건 발생한 직후인 밤 10시 인천해양경찰청에 갑(甲)호 비상령이 발령되었고, 전국 경찰에는 을(乙)호 비상령이 발동되었다. 그런데 합동작전 지휘부서인 합참은 허둥지둥하다가 사건 발생 6시간여가 지난 3월 27일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군 대비태세 강화’ 지침을 전 군에 하달했다.

“설마 백령도에서 적 잠수함이 어뢰를?”

청와대가 합참에 전화를 걸어 천안함 침몰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합참의 작전본부나 지휘통제실은 청와대에 어떠한 보고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의 상황 확인 요청을 받고서야 합참이 거꾸로 움직인 꼴이 되었다. 만약 문제의 해군 중령이 청와대의 김모 해군 대령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청와대는 사건 발생 한 시간이 넘도록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천안함으로부터 “어뢰 피격으로 판단된다”는 보고를 받은 해군 2함대사령부는 “설마 백령도 해역에서 적 잠수함이 어뢰를 쏠 수 있겠는가” 하고 예단하고 이 사실을 합참, 해군작전사령부 등 상급부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고 발생 초기, 군과 청와대는 좌초·침몰·파공·침수·어뢰 피격 가능성을 놓고 허둥지둥하다가 ‘파공으로 인한 침몰’로 대응 방향을 잡았다.

2함대사령부의 보고 누락 행위는 초동 단계에서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심각한 장애요인이 되었다. 이것이 후에 걷잡을 수 없는 유언비어를 양산하는 원인 제공을 했다. 만약 사고 발생 초기에 ‘적 어뢰에 의한 피격’이라는 사실이 군 보고라인을 통해 확실하게 보고됐다면 더 많은 대잠(對潛) 전력이 투입되어 어뢰 공격을 하고 도망치는 잠수정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강력한 대잠 포위망을 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건 발생 후 보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뿐만 아니라 구조 과정, 사고 수습 과정에서도 합참과 해군 사이에 책임 떠넘기기, 사건 발생 시각에 대한 네 차례의 수정과 번복, 부정확한 폭침 장소, 군에 불리한 정보의 은폐와 변명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도저히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속으로 이어지자 청와대는 행정관들을 2인 1조로 편성하여 국방부에서 진행되는 모든 회의에 참석시켜 합참, 해군, 국방부 주장 중 누구 말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명박 대통령, 군 수뇌부 강력 질타

2010년 4월 29일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이 엄수되었다. 이날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은 “우리에게 큰 고통을 준 세력들이 그 누구든지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할 것”이라고 추도사를 낭독했다.

이상의 합참의장은 5월 10일 국방부 대강당에서 합참 소속 간부 6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특별 정신교육에서 “이번 천안함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은 (합참) 의장에게 있다. 우리 군이 대청해전이라는 조그마한 승리에 도취해 적의 전술적 변화를 미처 감지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영해에서 적대세력의 기습에 천안함이 피습당한 날을 국군 치욕의 날로 인식하고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2개월 후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직접 주재하여 우리 군의 얼빠진 경계태세와 정신자세를 질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2개월 후 전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직접 주재하여 우리 군의 얼빠진 경계태세와 정신자세를 질타했다.

천안함 폭침사건 발생 2개월 후인 5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은 전군(全軍) 주요지휘관회의를 주재했다. 군 통수권자가 군 주요지휘관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건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날 이 대통령은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는 대기업도 어느 한 곳에서 사고가 나면 10분 안에 총수에게 보고된다. 농민들이 자식같이 기르는 소나 돼지가 죽어도 나에게 10~20분이면 보고가 되는데, 우리 장병들이 탄 함정이 침몰했는데 (합참의장에게 49분 만에 보고될 정도로) 보고가 늦었다니 말이 되는 일이냐”면서 군의 경계태세와 정신자세를 질타했다.

감사원은 2010년 5월 3일부터 28일까지 30명의 감사인력을 투입하여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해군작전사령부 등 8개 기관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하고 6월 10일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은 천안함 사건 과정에서 대비태세 소홀과 허위늑장 보고, 부적절한 군사기밀 관리 등 총체적 부실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에게 뒤늦게 보고하고, 사건 발생 시간도 9시 15분을 9시 45분으로 조작했으며, 국방부는 소집하지도 않은 위기관리반을 소집했다고 상부에 거짓 보고한 사실 등을 지적했다.

솜방망이 처벌, 대체 군은 무슨 교훈을 얻었나?

감사원은 총체적 경계 및 작전, 보고 부실 등의 책임을 물어 이상의 합참의장을 비롯하여 해군작전사령관, 합참 정보작전본부장, 공군작전사령관, 해군 2함대사령관, 국방정책실장 등 장성 13명과 영관급 장교 10명, 고위공무원 2명 등 25명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이러한 감사 결과 발표에 대해 군은 강력 반발했지만, 이상의 의장 등 2명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총괄적 책임을 지고 전역 조치되었고, 6월 23일 장성 인사에서 장성 5명은 전보 조치되었다. 그 해 11월에 열린 군 징계위원회는 1명에게 정직 3개월, 장성 5명에게 감봉 및 견책, 4명의 영관급 장교에게 근신, 견책 등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이들은 징계처분에 불복하거나 항고하여 징계가 완화되거나 취소되었다.

이따위 개판 같은 일들이 중인환시리에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은 통렬한 반성은커녕 제주도 해군기지가 민간인 침입에 무방비 상태로 뚫리는 등 해괴망측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보수우파라는 분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매년 열심히 ‘천안함 폭침’ 추모행사를 연다. 천안함 10주기를 맞아 우리 군 지휘부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천안함 폭침사건을 통해 무엇을 반성했고, 무슨 교훈을 얻었는가?”라고.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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