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 ‘문재인 극장’의 연극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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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3.03 11:12:08
  • 최종수정 2020.03.0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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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 현혹시키는데 재미 봤으나 조작과 거짓 분장 드러나
우한 바이러스 사태 때 친중(親中) 본능으로 결정적 외면 자초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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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의 정치는 연극을 보는 듯하다. 이름을 붙인다면 ‘문재인 극장’이다. 간판 배우인 문재인은 ‘착하고 반듯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배우의 얼굴과 실제 됨됨이가 일치하지 않는 일은 흔하다. 이 정부의 실력자였던 조국이라는 사람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연극배우는 본디 각본에 나와 있는 자기 역할을 잘 연기해 내면 될 뿐, 겉과 속이 달라도 상관없다.
  문재인 극장 관계자들은 드라마 효과가 정권 유지와 창출을 위해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랜 거리 투쟁을 통해 몸에 배인 기술이다. 이들은 문재인을 앞세워 자신들을 ‘정의롭고 도덕적이며 평화를 중시하며 소통을 잘 하는 정권’으로 분장했다. 대중들에게 이렇게 보이도록 여러 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고 지금도 상연 중이다.

극장의 인기는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때 절정에 달했다. 이들이 꿈에 그리던 ‘만원(滿員) 사례’가 현실이 됐다. 특히 문재인과 김정은의 ‘도보다리 대화’를 보고 사람들은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평화가 당장이라도 이뤄진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남쪽의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그날 판문점 도보다리 위를 온통 수놓은 것은 천상의 언어로 지저귀는 새소리 새소리들뿐이었습니다/그날 온 세상 가득 채운 평화로운 침묵 한 모금/그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곧 이어 그들에게 ‘기적’과 같이 찾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원군이었다. 6.13 지방선거 바로 전날에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북미정상회담은 연극 특유의 행동 효과를 극대화했다. 현장성이 강한 연극은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관객들의 직접 행동을 이끌어내는 호소력이 뛰어나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연극이 선전 선동에 자주 동원되는 이유다. 6.13 지방선거는 볼 것도 없이 집권 여당의 대승이었다. 문재인 극장 관계자들은 쾌재를 불렀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잠시 연극 얘기를 해보기로 하자. 연극에는 장점과 함께 뚜렷한 한계가 존재함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연극은 그림을 담는 액자처럼 생긴 직사각형 무대에서 주로 이뤄진다. 오늘날 TV 화면이나 핸드폰 화면도 여기서 비롯됐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이 무대를 고안한 배경 중 하나는 무대 장치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다. 로프와 도르래 등 복잡한 무대 장치들이 외부로 드러나게 되면 연극은 금방 시시해진다. 액자 무대는 여러 장치들을 내부로 감추고 관객들을 연극에 몰입하게 만드는데 안성맞춤이다.

비슷한 원리로 문재인 극장의 드라마 효과도 대중들이 어느 순간 ‘내부 무대장치’를 눈치 채면서 무너져 내렸다. 소통에는 자신 있다던 정권이 취임 100일 대국민보고회를 열면서 사전에 질문과 답변을 짜놓고 진행했음이 드러났다. 대통령의 광화문 호프집 시민모임 때 청와대는 시중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번개 모임’라고 주장했으나 한 참석자가 대통령과 구면임이 드러나 김이 빠져버렸다. 최근 우한 바이러스 사태에서도 재래시장을 격려하러 갔다는 대통령 영부인이 사전에 방문 상점과 구입 물품들을 일일이 준비시킨 사실이 알려졌다. 국무총리의 민생현장 방문 때에는 상인들에게 ‘신종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말만 하라고 미리 각본을 짠 것으로 드러났다.

남북 관계에서도 ‘도보다리 대화’는 청와대 행정관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내 위해 계획적으로 연출한 컷이었다. 같은 해 9월 대통령의 백두산 천지 방문은 예정에 없던 깜짝 일정이었다고 청와대가 주장했으나 영부인이 생수병에 한라산 물을 담아가고, 9월 날씨에 대통령의 겨울용 롱코트와 영부인의 목도리까지 준비해 간 것으로 밝혀지면서 감흥은 수그러들고 말았다.

연극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핍진성’이다. 간단히 말하면 연극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진짜로 있을 법 하다는 느낌을 관객들에게 주는 일이다. 연극을 보는 사람들도 연극이 작위적인 것이라는 걸 알면서 극장을 찾아가고 정치가들이 하는 일 역시 그 점을 감안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이 설득 당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스토리에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이 정권은 힘을 상실한 상태다. 우한 바이러스 사태에서 문재인 극장은 4.15 총선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쇼를 기획했는지 국민들의 건강을 도외시하고 중국과 시진핑에게 올인 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고 속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연극이 성공할 리 없다. 앞으로 중국에 관한 한 어떤 일이 벌어져도 객석에서는 싸늘한 바람이 불 것이다.

18세기 말 이탈리아를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책을 남긴 독일의 괴테는 베네치아에 머물 때 매일 같이 연극을 관람했다. 당시 베네치아는 세계 연극의 중심지였다. 그는 이 책에서 ‘연극이 성립될 수 있는 기반은 역시 관중’이라고 설파한다. 관중들은 연극을 보며 소리 지르며 웃고 울지만 내용이 터무니없으면 돌변해 거칠게 항의했다. 괴테는 어느 날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연극 내용에 납득할 수 없었던 관객들이 큰 소리로 야유를 보내는 바람에 공연이 더 이상 진행될 수 없게 된다. 그러자 한 배우가 무대 앞으로 나와 정중한 목소리로 “여러 분들이 원하는 대로 스토리가 진행될 테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달라”고 사정사정했다. 괴테는 ‘관객들의 분별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문재인 극장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 앞에 사과하는 법이란 없다. 오히려 잘못된 것은 관객들이라는 식이다. 고집 한번 질기다. 그들의 연극은 더 이상 진행될 수 없다. 관객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연극은 이제 끝났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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