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일 주교의 성탄절 사목교서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는 2017년 성탄절 사목교서에서 편향적인 자신의 생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강 주교는 마리아가 만삭의 몸을 이끌고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까지 가서 호적신고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속주의 국민에게 세금을 매겨 수탈과 억압을 자행한 로마의 제국주의적 행태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1차 세계대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2차 세계대전 시의 독일의 히틀러와 일본의 군국주의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메카니즘은 비슷하게 이어져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동서냉전 이후에도 기다리던 평화가 좀처럼 오지 않는 것은 “미국이 냉전 후에도 군비를 계속 확장하면서 여러 동맹국에게 끊임없이 새로 개발한 고가의 첨단무기 구입을 유도하고 분쟁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또 미국이 주도한 전쟁들은 오로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자국의 군수산업을 성장시키는 돈벌이 수단이었으며, 국제사회에서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판이었다고 비판했다. 핵전쟁의 위험과 대하여 언급하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험이 마치 초강대국의 탐욕 때문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으며, “전쟁은 역사 속에서 인간이 저질러 온 최대의 죄악이며,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최고의 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성을 지닌 시민이라면 전쟁의 위험은 수백만명의 인민을 굶어죽이면서까지 핵과 미사일 개발에 광분하고 있는 김정은의 한반도 적화야욕 때문이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강 주교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미움과 폭력을 부추기는 악의 군대를 몰아내고 참 평화를 이루는 하늘의 군대를 파견해 주시도록 한 목소리로 하느님 아버지께 부르짖어야 한다”고 말하며 성탄 사목교서를 끝맺고 있다. 그가 말하는 ‘악의 군대’는 혹시 북한 공산주의자가 항시 말하는 미 제국주의 군대를 뜻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강 주교의 과거 행적을 익히 아는 교회 내의 신자들은 사실 그야 말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중오심과 갈등을 부추겨온 ‘악의 군대의 일원’이 아닌지 강한 의문을 갖고 있다. 그는 2007년 이후 무려 8년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공사장의 입구에서 교구의 사제와 수도자를 동원하여 이른바 생명·평화미사를 거행하면서 해군기지 건설을 방해했다. 당시 천주교 교우 한분이 제주도를 여행하던 중 ‘평화의 미사’라는 이름이 붙은 미사에 참례하여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듣고 적지 않게 놀랐다고 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연상하였지만 실제로는 다음과 같은 선동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

“형제 집안보다 40배나 많은 재산을 벌어 하늘에 닿는 대궐 같은 집에 살고 살 뺄 걱정들만 하면서도 도움을 청하는 가난한 형제를 업신여기고 손 내미는 아우 앞에 매정하게 문고리를 닫아걸고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강 주교는 어찌하여 프란치스코 성인께서 말씀하신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가져다주시기’를 청하는 대신에 이런 자극적인 기도문을 만들어 신자들의 마음에 미움을 심어주려 하는가? 그가 말하는 평화는 도대체 어떤 평화인가?

강 주교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2315항 ‘군비경쟁이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과잉군비는 전쟁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규정을 해군기지 반대의 명분으로 삼았다. 도대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전쟁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해군기지는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수호를 위한 후방기지임은 초등학생 정도의 전쟁 상식만 있어도 쉽게 알 수 있다. 과잉군비 운운 하지만 대한민국의 해군력은 주변국 중 가장 열세인 대만의 해군력에도 미치지 못하며 현재의 해군력으로 최소한의 해양주권을 수호하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교리서 2315항을 금과옥조처럼 받들어 온 강 주교는 가톨릭 교회교리서 2310항의 규정은 따르지 않았다. 교리서 2310항은 군에 입대하여 국가방위의 임무를 수행함은 국가의 공동선과 평화유지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불행히도 그는 대한민국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마쳐야 하는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가톨릭교회 교리서 2310항을 따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겉은 경건하게 보이나 속은 위선과 탐욕으로 가득하다고 꾸짖으신 바리사이와 같은 처신이 아닐 수 없다.

2012년 12월 대선이 끝나고 강정마을에서 열린 성탄절 생명·평화미사에서 강우일 주교는 다음과 말하였다.

“대선 이후 지금 이 나라에는 1,469만 명의 국민들이 비슷한 집단 우울증을, 영혼의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예수님,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믿고 따르는 한 우리는 절망의 덧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강 주교는 국민이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을 ‘세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으로 비유하였다. 참으로 엄청난 집착이요, 망상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는 자신의 그릇된 논리, 사사로운 편견이 곧 정의요, 하느님의 말씀이며 친북 정권의 수립이 자신의 예언자적 사명이었던 것이다.

2014. 4. 16. 제주도로 수학여행가던 학생들이 해상 사고로 귀중한 목숨을 잃은 세월호 비극이 일어나자 강우일 주교는 2014. 6. 월간 경향잡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성찰’이라는 글에서 ‘죄없는 아이들의 죽음은 2천년전 베들레헴에서 일어났던 무참한 학살을 연상하게 한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아기를 경배하러 왔다고 하자 헤로데 임금과 이스라엘의 권세가들은 미래의 화근을 없애려고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마태 2,16-18참조).’고 기술하여 세월호 참사를 헤로데의 유아 학살과 비슷하게 몰아갔다.

강 주교는 2014. 1. 월간 경향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사제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할 수 없다. 가난한 사람, 짓밟히는 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지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이 정의롭게 발전해나가도록 지켜보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때는 이를 고발하고 비판과 저항도 불사하는 것이 예언자의 직무’라고 강조하였다.

2012년 성탄절 메시지에는 ‘똑똑하고 더 많이 아는 사람과 가방끈이 짧은 사람, 더 빨리 달리는 사람과 천천히 밖에 못달리는 사람, 더 능력있는 사람과 능력이 뒤떨어지는 사람’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구분 대립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서 마치 주인처럼 월권을 행사하고 형제의 것을 탈취하고 독점하며 지내왔습니다.”고 하면서 가진 자들을 비난했다. 아기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거룩한 성탄의 메시지에서 강 주교는 가난한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한 시기심과 적개심에 불을 붙이는 내용을 담았다.

그가 진정한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양들을 고이 쉬게끔 이끌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선동가로서의 모습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아기예수의 겸손을 본받아 참된 사랑과 화해를 교회와 신자에게 권해야 할 것이다.

김원율 시민기자(종교문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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