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안끝나' 언급에 日"절대 수용불가" 즉각반발
부풀린 1700만 촛불 거듭 강변하며 임시정부 건국설 띄우기
'자유', '자유민주주의' 입각 통일 강조한 MB·朴정부와 대조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제99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고통을 가한 이웃나라들과 진정으로 화해하라"고 공개 촉구했다. 스스로 '합의 이행도 파기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힌 위안부 문제를 재론해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특히 일본 측 일방 주장에 한국정부가 무시로 일관해 온 독도 영유권 문제도 거론해 "일본이 그(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 재론에 대해 "(2015년) 한일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즉각 반발, 3.1절 기념사가 '외교 분쟁'으로 다시 비화하는 모양새다. 이번 기념사는 거듭된 '1700만 촛불' 주장이나, 임시정부 건국설, 북핵·통일 의제 실종 등 논란의 소지도 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1일 관례처럼 3·1절 기념식이 치러지던 세종문화회관이 아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제99주년 3·1절 기념식을 갖고 기념사를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1945년 8월 미국의 원폭 투하와 일제의 무조건 항복에 따른 해방 역사를 의식한 듯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낮출 필요가 없다. 우리 힘으로 광복을 만들어낸, 자긍심 넘치는 역사가 있다"면서 "우리의 잘못된 역사를 우리의 힘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독도와 위안부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강점당한 우리 땅으로 우리 고유의 영토"라며 "일본이 그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끝났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전쟁 시기의 반인륜적 인권 범죄 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이지 않는다"면서 논란 지속을 시사했다. 

문 대통령은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이라며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저는 일본이 고통을 가한 이웃나라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평화공존과 번영의 길을 함께 걸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에게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답게 진실한 반성과 화해 위에서 함께 미래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의 '위안부 강제 동원', '성노예 착취 후 사살' 등 주장을 일본 정부가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2015년 한일 합의에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했다"며 "문 대통령의 발언은 한일합의에 반하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스가 관방장관은 또 "극히 유감"이라며 "한국 측에 외교 루트를 통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의했다"고 전했다. "정상 간 합의를 하고 미국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일부러 그런 평가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면서 기존의 '합의 이행 촉구'를 고수할 방침을 밝혔다.

이밖에 문 대통령은 이날 "3.1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독립선언서에 따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이었다"며 사실상 '임시정부 건국설' 띄우기에도 나섰다. 그는 "임시정부 헌법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이며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명백하게 새겨넣었다"며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됐다"고 말했다.

언급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법'은 1919년 4월11일 공포된 상해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이 최초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으로 보인다. 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임시헌장은 같은해 9월 제1조를 "대한민국은 대한 인민으로 조직함", 제2조를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 인민 전체에 있음"으로 규정하는 '임시헌법'으로 바뀌었다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직전까지 치열한 논의와 개정 작업을 거쳤다.

문 대통령은 "임시정부는 우리에게 헌법 제1조뿐아니라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태극기와 애국가라는 국가 상징을 물려주었다"며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우리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이유"라고 했다. 선언적 문구인 '법통 계승'과 '국가 계승'을 동일시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는 언급이다.

문 대통령은 전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야기한 촛불시위를 앞서 국가정상으로서 참석한 각종 공식행사에서 거론해온 데 이어, 이번 기념사에서도 3.1운동과 연결짓는 언급을 남겼다. 그는 "지난 겨울 우리는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었다"며 "3.1운동으로 시작된 국민주권의 역사를 되살려냈다. 1700만 개의 촛불이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 역사를 펼쳐보였다"고 역설했다.

언급된 "1700만 개의 촛불"은 이미 수차례 근거 없이 과장된 숫자라는 지적을 받아온 사안이다. 탄핵 정국 당시에는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일명 '퇴진행동'이 20차례가 넘는 촛불시위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주최했고, 전교조·민문연·전농 등 각종 좌파단체와 제도권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 당원들까지 대거 참여했었다. 1700만이라는 숫자는 이들의 '중복 참여'는 물론 무분별하게 과장된 추산치 보도의 결과물이었다.

경찰 추산 수치는 35만 명을 넘은 적이 없지만, 주최측 퇴진행동은 하루 동안 160만 명 이상 모였다고 자체 추산한 적도 있었다. 대부분 언론은 당시 퇴진행동의 추산치를 '아무 검증 없이' 타전했다. 촛불이라는 '미명'만을 강변하는 세태에 대해서도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가 지난 2월13일자 PenN 특별기고 칼럼에서 "촛불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LED 등불이라고 지적한 언론을 아직까지 못 봤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저와 우리 정부는 촛불이 다시 밝혀준 국민주권의 나라를 확고하게 지켜나갈 것"이라며 "3.1운동의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3.1운동, 좌우 이념 불문 독립운동가들, 그 직후 출범한 임시정부에서 찾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문 대통령이 시사한대로 국가 정체성을 상해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임시헌장'에서 찾는다면, 1948년 건국의 근간이 된 제헌 헌법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한다고 구체화한 제5조와, 경자유전의 원칙(농지는 농민에게 분배)을 규정한 제86조 등이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건국 당시 북한 김일성 정권과 대척점에 섰던 경제적 자유와 사유재산제의 근간까지 재론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날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자유'를 단 한번만 언급했다. 그것도 "(3.1 운동 과정에서) 국민주권과 자유와 평등, 평화를 향한 열망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고 '평등'·'평화'와 함께 말한 대목이었다. 국가정체성을 한 단어로 함축한 '자유민주주의'도 찾아 볼 수 없었고, 이 질서에 입각한 통일 정책과 북핵 문제 해법 등도 거론하지 않았다.

지난해 탄핵 정국 당시 3.1절 기념사를 했던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통일국가를 이루는 것은 북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민족의 재도약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라며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 없이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은 이룰 수 없다"고 '자유민주주의'를 직접 거론한 바 있다.

2016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3.1절 기념사를 통해 남북 통일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인권, 번영을 북한 동포들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평화와 번영, 자유의 물결이 넘치는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어 갈 것이며 그것이 바로 3.1운동 정신의 승화"라고 강조했다. 

특히 당시 박 대통령은 "(현재) 자유롭고 번영된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거나 "3.1운동은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열망"이라고 밝히는 등 '자유'를 총 네 번 기념사에서 언급했다. 전전임 이명박 대통령은 2012년 집권 마지막 해 3.1절 기념사에 '자유'를 네 번, '자유민주주의'를 한 번 포함시켰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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