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NYT “베네수엘라 7대 도시 가운데 4개 도시는 매일같이 정전 사태 경험...범죄조직이 치안 맡는 나라”
“천주교 신부가 가장 먼저 도망갔고, 경찰과 의사, 그리고 교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NYT가 본 어촌 마을 파르마나의 실태
“이곳에는 정부가 없다...우리는 잊혀진 존재”...‘질서’ 필요한 베네수엘라 국민들, 인근 국가 범죄조직 등에 마을 치안 맡기기도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더 늦기 전에 우리 국민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韓, 베네수엘라 전철 밟지 않을까 걱정의 목소리도

베네수엘라의 실태를 고발한 미국 뉴욕타임스의 지난 13일(미국 현지시간) 기사.(이미지=뉴욕타임스 캡처)

집권 8년차를 맞는 마두로 정권 아래 베네수엘라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마을 밖으로 나간다면 당신을 굶어 죽을 거예요. 적어도 여기에서는 강에서 물고기라도 잡아먹을 수 있으니까요.”

올해로 29세가 된 인셀리나 코로의 말이다. 베네수엘라 내륙에 위치하며 오리노코강(江)에 접한 시골 마을 파르마나(Parmana)에 거주하는 인셀리나에게는 아이가 넷이나 있다. 그의 14살 된 장녀는 임신했지만 의사에게 데려갈 아무런 수단이 없다. 작년 이 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홍수가 마을의 유일한 도로를 파괴해버렸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를 엄습(掩襲)한 경제 위기는 한때 어업과 농업으로 번성하던 파르마나 마을에도 마수를 뻗었다.

지난 2013년 사망한 우고 차베스 전(前)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생전 모습.(사진=위키피디아)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13일(미국 현지시간) 전한 베네수엘라의 모습은 처참했다. 중남미 지역의 ‘부자 나라’로 손꼽히던 베네수엘라에 망조가 든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지난 1999년 처음으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취임한 우고 차베스(1954~2013)는 3기(期)에 걸친 그의 임기 기간 동안 베네수엘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불과 20여년만에 일어난 일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반미’(反美)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21세기의 사회주의’라는 슬로건 아래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200만채의 주택을 지어 하층민에게 거의 공짜에 나눠주는 등 각종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냈다. 차베스는 민간기업의 국유화를 추진하는 한편 국영 석유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그의 ‘사회주의 실험’에 쏟아부었다.

‘오일 머니’에 기댄 차베스의 ‘무상 복지 천국 베네수엘라’의 꿈은 처음에는 그럭저럭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세계 유가(油價)가 하락하면서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석유 수출에 의존하던 베네수엘라는 큰 타격을 받게 됐고 경제는 침체 일로를 걷게 됐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재정도 완전히 고갈됐다.

오늘날 베네수엘라가 맞이한 경제 위기의 원인은 차베스 대통령이 그의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투자를 통해 기업들을 성장시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취임한 마두로는 그런 차베스의 적장자(嫡長者)다.

NYT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7대(大) 도시 가운데 4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정전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경제가 나빠지자 NYT 기자가 방문해 취재한 파르마나 마을에서는 천주교 신부(神父)가 가장 먼저 도망갔고, 그 다음으로는 자원봉사자들, 경찰, 의사, 그리고 교사들이 뒤따라 마을을 떠났다. 책을 구할 수도 없는 학생들은 굶주림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 학교에서 채 한, 두 시간을 버티지 못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다.

베네수엘라의 대부분 지방에서는 치안, 도로, 보건, 공공시설 기능이 완전히 붕괴해버렸다. NYT는 지속적인 경제 상황의 악화와 정부의 재정 긴축으로 베네수엘라 기간시설이 대부분 방치된 상태라고 전했다. 공무원들에게조차 월급이 제때 지급되지 않고 있는 탓에 이들은 부업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고위 장성(將星)의 한 달 월급은 13달러, 우리 돈으로 고작 15000원 남짓이다. 국경에 인접한 주민들은 밀수(密輸)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평균 체중이 10킬로그램(kg) 줄어들 정도로 국민들이 제대로 먹지 못 해, 동물원의 짐승들까지 잡아먹는 베네수엘라의 실태다.

어느 베네수엘라 소녀가 허기를 채우고 있다.(사진=로이터)
어느 베네수엘라 소녀가 허기를 채우고 있다.(사진=로이터)

“우리는 국가(state)가 아니라 서로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마을의 자포자기한 어부들은 때때로 인근을 지나가는 차량을 멈춰세우고 고깃배 엔진을 돌릴 휘발유를 찾는 것이 일상이 됐다. 수확을 앞둔 수박 더미 위에 걸터앉은 농부 가족은 도매상에게 열심히 문자 메시지를 보내 보지만 그들이 언제 올지, 아니, 오기나 할지 의문이다. 2주 전 넘어진 통신탑이 아직 복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들마저 떠나버린 이 마을에서 주민들은 인근 국가인 콜롬비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게릴라 조직이나 범죄조직 등에 치안을 맡기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구스타보 레데스마는 “우리는 통제권력(authority)이 필요하다”며 게릴라 부대가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는 잊힌 존재”라고 말하는 올해 83세인 노파 에르메니아 마르티네스는 “이곳에는 정부가 없다”고 말했다. NYT 취재에 응한 아르만도 샤신은 “(베네수엘라의) 각 지방은 그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며 오늘날 베네수엘라가 맞은 상황을 설명했다.

NYT에 따르면 좌파 포퓰리즘의 화신(化身)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두로가 정권을 잡은 지난 2013년 이래 베네수엘라의 국내총생산(GDP)는 73%나 감소했다. 끝없는 인플레이션(화폐 가치 하락)으로 인해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화(貨)는 그 신용을 완전히 잃게 됐다. 화폐 발행을 남발한 탓에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2018년 한 해 동안 인플레이션율은 13만%를 기록했다. ‘초(超) 인플레이션’이다. 이에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볼리바르화를 사용하는 대신 달러, 유로를 사용하거나 물물교환의 형태로 거래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지방 도시들의 처참한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수도 카라카스의 상점에는 외국에서 들여온 물건들로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NYT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온 나라의 자원들을 수도 카라카스한 곳으로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카라카스의 시민들은 정전 사태를 맞지 않아도 되는 최악의 사태만은 피하고 있다. 휘발유 공급도 일단은 정상적으로 공급되고 있다.

이같은 NYT 보도에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베네수엘라에 길을 묻자던 공영방송 KBS는 베네수엘라 사태에서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 했다”며 “한국도 ‘산업사회’에서 ‘전(前) 산업사회’(pre-industrial society)로 되돌아 갈 것인가?”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또 “더 늦기 전에 우리 국민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며 한국이 베네수엘라의 전철(前轍)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왼쪽)과 후안 과이도 임시대통령(오른쪽).(사진=로이터)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왼쪽)과 후안 과이도 임시대통령(오른쪽).(사진=로이터)

‘경제난’으로 국민들이 신음하고 있는 베네수엘라는 동시에 현재 정치적 혼란에 휩싸여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지난해 1월, 지난 2018년 치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선거가 부정선거였음을 주장한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은 마두로의 대통령 취임을 무효로 선언하고 스스로 ‘임시대통령’에 취임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등은 과이도 임시 정부를 지지하고 있지만 마두로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 이란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한 국가 안에 두 명의 대통령이 존재하는 괴이한 상황은 오늘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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