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범 칼럼] 진정한 민주화는 소위 '민주화 세력'을 죽이는 것
[김행범 칼럼] 진정한 민주화는 소위 '민주화 세력'을 죽이는 것
  •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프로필사진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19.12.30 10:51:53
  • 최종수정 2019.12.30 22:29
  • 댓글 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선거법은 좌파연합이 늘 이기도록 사전에 못박은 것...유신독재가 악이었고 5공독재가 차악이었다면, 문재인 좌파독재는 최악"
"또 다른 악법인 공수처법도 심각...대통령 자신은 철옹의 비호 받는 동시에 정적 죽이는 공포의 괴물부처로 만들겠다는 것"
"민주화 세력에 권력 주었더니 영구 집권 위해 선거 규칙 바꾸고, 히틀러 친위대같은 사적 감찰권력을 만들어"
"우리는 민주로 가는 길이 곧 자유의 길이라 착각...패스트트랙 입법과정에서 드러난 지금 한국을 장악한 자들의 민낯이 이것"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프러시아 재상 비스마르크에 의하면 소시지와 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보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2019년 연말 국회를 작가 김원우의 작품명대로 '짐승의 시간'으로 만든 패스트트랙 법 날치기 실황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젊은 세대에게 여러 해 가르쳐 온 '민주'라는 말의 우아함은 몇 시간 TV 시청으로 다 도루묵이 되었다. 쪼개기 회기, 소수파 보호제도인 필리버스터링에 여당이 나서 '의사진행 방해의 방해'를 가하는 전쟁 속의 코미디, 별주부전 속 문어같은 노욕 및 늙은 정치 창녀들같은 추함. 그런 짓하고 국회의원들이 받아가는 세비만큼의 돈을 이 역겨움을 본 국민에게도 위로금으로 주어야 할 것이다.

소선구제는 80년대 민주화 세력의 열망이었다. 그들은 1988년 노태우 정권을 압박하여 '중선거구제'는 비민주적이라며 소선거구제도를 관철시켰다. 중선거구제로는 정권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유력 파벌인 3김씨 및 노태우가 각각 자신의 지역 기반을 고려한 점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공감은 주민이란 의미를 가장 간명하게 이해한다는 점 및 그렇게 표현된 주권이 가장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의석에 반영된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여야가 널리 합의한 소선거구제는 바로 며칠 전까지 우리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골간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기이한 선거법은 그 동기부터 전혀 다른 맥락이다. 민주화 세력 스스로 민주제도라 그토록 요구했던 선거제도가 갑자기 비민주적인 것으로 바뀌기라도 했던가? 한마디로 보수 정당 의석을 빼앗아 먹겠다는 것이 그 동기. 집권 여당이 자신의 의석 손실을 약간 감수하면서 이에 합세한 것은 자유한국당을 죽인다는 더 큰 목표를 중시했고 정의당 등 연합에 가담한 소수 정당에게 주어질 추가의석은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개헌을 위한 '4+1'이라는 범여권의 공유 자산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민주화 세력이 스스로 비민주적 동기로 선거 규칙을 바꾼 것이다.

유신 헌법, 5공 헌법 및 당시 선거법들이 악법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정권교체를 막아 독재로 가는 보증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본질도 그런 독재 막자는 저항이었다. 이것은 올바른 선거법의 방향을 시사한다.

첫째, 근본 규칙이기 때문에 헌법적 성격을 갖는 선거법은 여야의 광범위한 공동 합의를 얻어야 한다. 애초부터 1야당 죽이고자 출발했고 그래서 끝까지 그를 배제한 것은 정당성이 없다. 둘째, 선거법은 비차별적이어야 한다. 굳이 롤스(John Rawls)의 기회균등 관념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일반법이 특정 정파에게 이익을 줄 기회는 무작위적이어야 한다. 올바른 선거규칙은 좌파-우파에게 집권의 기회가 고루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괴이하게 바뀐 제도 아래에서는 보수정당은 영속적으로 패배하고 좌파연합만이 영구집권하게 된다. 달리 보면, 바로 이런 결과 얻고자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이다. 과거 5공식 중선거구제를 정권교체 가로막는 집권 군부의 독재법이라 몰아세우던 자들이 이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법으로 집권 좌파연합의 독재를 도모하고 있다. 민주화 세력이 급조한 선거규칙은 어느새 5공식 선거법으로 되돌아갔다. 그 수혜자가 군부독재에서 좌파독재로 바뀌었을 뿐.

국회 과반의 동의가 민주주의이고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은 민주보다 더 중요한 가치인 자유를 위험에 빠뜨린다. 하이에크의 생각을 상기하면 자유주의는 법의 지배(법치주의)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거기에 더해 그 법이 어떤 법인가를 보아야 한다. 그 법이 ‘공동의 동의’가 아니라 도당(徒黨 junta)들의 날치기로 만들어지고, 정당들간 민주적 경쟁 질서를 구조적으로 제한하며, 집권자의 권력을 불가침의 성역으로 만드는 차별입법이라면 그 경우 법의 지배는 주권자인 국민을 오히려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새 선거법은 미래 한국 국회 의석구조를 좌파연합이 늘 이기도록 사전에 못박은 것이다. 그것은 극단의 의회주권론에서도 금기시하는 조치, 즉 ‘현재의 국회가 미래의 국회를 구속’해 놓은 것이다. 선거법 및 공수처법은 하이에크의 관념에 의하면 법(law)은커녕 입법(legislation)에도 못 미치며 아예 ‘악법’의 자격조차 없다. 한국 민주화 세력의 최종 버전은 이런 횡포의 자유를 위해, 또 그 지위를 독점하기 위해 추한 모습 서슴지 않는 정상배들이었더라. 유신독재가 악이었고 5공독재가 차악(次惡)이었다면 좌파독재는 최악(最惡)이다.

또 다른 악법인 공수처법도 그만큼 심각하다. 공수처와 선거법은 이 정권으로선 반드시 함께 구비해야 할 무기이다. 하나만 구비된다면, 예컨대 저들이 공수처를 만든 뒤 선거에서 집권을 못하면 저들이 세운 공수처는 도리어 그들을 잡는 칼이 되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 바꾸자던 자들이 정작 검찰을 죽여 대통령 직할의 위헌적 비밀 의금부(義禁府)를 만들어 대통령 자신은 철옹의 비호를 받는 동시에 정적을 죽이는 공포의 괴물부처(恐獸處)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민주화의 끝은 항구적 좌파독재 및 시대착오적 친위 감찰기구 창설인가.

‘헌법 제정권력’은 국민에게만 있고 그들에 의해 위임받은 자에 불과한 국회의원 300명 역시 이 헌법에 구속되어야 하며 위헌인 법률은 무효이다. 국회 과반수 연합이 만들었다고, 형식적 민주적 입법 절차 거쳤다고 다 법이 아니라는 거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점이 있다. 당시 헌재는 연동형 선거제는 투표행위가 비례대표 의원의 선출을 직접·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없으므로 직접선거 원칙에 위배하며, 무소속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유권자의 평등권을 위배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었다(2001년 7.19).

더구나 이번에 통과된 ‘준연동제 비례대표제’의 경우 투표자 주권 행사 결과의 불확실성은 그때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이에 대한 위헌 제소가 다시 제기될 게 빤한데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결사적으로 이를 밀어붙이는가? 첫째, 이 정권이 좌경화의 비난 속에 새로 만들어 놓은 헌재가 이제 합헌으로 결정을 바꿔주기를 기대하며, 둘째, 헌법불합치 혹은 위헌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는 상당 기간 좌파 정책의 입법화 및 나아가 개헌까지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민주화 세력은 입법절차의 형식만 갖추면 된다는 큰 미신에 빠져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정하는 것이 법이라고 본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법이 다수의 동의로 만들어져야 하되 그 법이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가, 곧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에 더 초점을 둔다. 이 차이는 다음 국면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는 권력을 ‘누가’ 행사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중시한다. 이에 비해 자유주의는 누가 권력을 행사할 것인가 보다 그 권력의 ‘한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더 중시한다. 독재자든 민주대표이든 그것이 절대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보고 오히려 현대적 독재는 민주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독재, 과반수란 이름으로 가해오는 것임을 더 주목해야 한다. 요컨대, 민주는 최고의 목적 가치가 아니라 실은 자유를 위한 수단일 뿐이며,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의 민주화 세력이 법의 궁극 가치개인의 자유와 상극임은 물론이고 ‘민주’라는 원형에서도 벗어나 차별과 독점을 도모하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민주화 세력이 2대 악법의 소시지를 만들어내는 그 추한 과정을 알아버린 이 허무를 어찌하랴.

패스트트랙 입법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지금 한국을 장악한 자들의 민낯이 이것이다. 지금껏 한국사회가 그들을 개개인의 이름보다 ‘민주화 세력’이라는 집합명사로 부른 데는 민주에 대한 경외심도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우리는 민주로 가는 길이 곧 자유의 길이라 착각하였다. 그리하여 민주화 세력에게 박수와 권력을 주었더니 그들은 영구 집권을 위해 선거 규칙을 바꾸어 권력을 독점하려는 반(反)민주 집단이고, 히틀러 친위대같은 사적 감찰권력을 만들어 어떤 반대도 억압하는 반(反)자유의 독재국가로 가려는 자들이다. 이거 깨닫는데 30년 걸렸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화는 바로 이들 ‘민주화 세력’을 죽이는 것임도.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9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