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논란' 여론에 편승해 끌려가는 보도태도 눈살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종목에서 나타난 ‘왕따 논란’과 ‘김보름 선수의 인터뷰 태도’가 맞물려 여론이 들끓었다. 언론 또한 들끓는 여론에 편승하여, 과감하게 선악(善惡)을 단정짓고 마녀사냥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그러나 감정과잉에 언론조차 휘둘리며 사건 이면에 대한 논의조차 불가(不可)한 인민재판이 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오후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8강전
(왼쪽) 경기 마지막에 노선영 선수가 뒤쳐진 모습 / (오른쪽) 경기 후 모습

 

19일 이루어진 ‘팀추월’ 8강 경기에서는 우리나라 선수 3명의 사이가 크게 벌어지며, ‘팀추월’ 종목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장면이 벌어졌다.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종목: 개인 종목이 아닌 단체종목으로서 3명이 한 팀이 되어 스케이트 경기장 6바퀴를 돌아 3번째 주자가 결승선을 통과한 기록으로 순위를 결정하는 종목

마지막 선수 도착 기록을 측정하는 경기인 만큼 세명이 하나 돼서 끝까지 같이 가야되는 팀플레이가 중요한 경기이다. 격차가 벌어진 사람에 대해서는 두 번째에 세워서, 앞에서는 공기저항을 막아주고 뒤에서는 밀어주는 팀플레이와 전략이 중요하다.

그런데 19일 벌어진 경기의 마지막 바퀴에서 두 명의 선수는 붙은 채로, 그리고 노선영 선수가 뒤에 멀찍이 남은 채로 도착하고 말았다. 또한 경기가 끝난후 노선영 선수가 벤치에 앉아서 고개 숙인 모습이 조명됐고, 나머지 두 선수는 이를 신경쓰지 않은 채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아섰다.

뿐만 아니라, 김보름 선수는 경기 이후 인터뷰를 통해 “마지막에 뒤에 조금 저희랑 격차가 벌어지면서 기록이 조금 아쉽게 나온 것 같다”며 뒤쳐진 노선영 선수를 겨냥한 듯한 뉘앙스를 풍겨 빈축을 샀다. 발언 중간에는 웃는 모습도 나와 경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해당 팀의 팀워크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기자회견까지 진행하는 등 연이은 논란으로 질타를 받았다.

선수들 사이에 노출된 씁쓸한 장면이 국민들 정서에 불을 붙였다. 노선영 선수가 팀 내 ‘왕따’ 처지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고, 여론과 언론은 김보름 선수의 인터뷰 태도와 예의·인성을 문제삼으며 분노했다.

반면, 노선영 선수는 이날 ‘아쉬움 때문에 인터뷰하지 않고 먼저 들어간 상태’라고 표현됐으며, 상대적인 약자와 고립된 듯한 모습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여론의 동정을 샀다.

이후부터는 별다른 제지없이 김보름 선수가 악(惡)이라는 규정 하에 여론이 지속됐으며, 언론 또한 여론에 편승하여 여론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여론이 '악(惡)하다'고 낙인찍은 상태에서, 언론 또한 ‘선악 프레임’에 갇혀서 일방적으로 매장시키는 보도 양상도 나타났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김보름, 박지우 선수에 대한 국가대표 자격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원한다’는 청원에 이례적인 속도로 58만 여명이 동참(23일 13시 기준)했다.
 

그러나 사건 이면에 대한 분석조차 없이, 감정만 부추기는 보도행태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두 선수 간 쌓인 감정과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기저에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선악 구조로만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면이 벌어진 경위에는 빙상계 파벌론이 언급되는 등 팀 내 분열 상황이 지적되기도 했다. 노선영 선수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의 행정 착오로 평창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가 재출전권을 얻게 됐다.

재출전이 확정되기 전 1월 26일 노선영 선수는 선수촌을 나갔으며,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대표팀의 부조리 등을 여러차례 폭로했다. 노선영 선수는 “전명규 빙상연맹 부회장 주도로 이승훈, 정재원, 김보름 3명의 선수가 태릉이 아닌 한체대에서 따로 훈련을 한다”며 김보름 선수를 언급했으며, 차별받는 환경을 폭로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사분오열되는 듯 비춰졌다. 노선영 선수는 “제대로 (팀추월) 훈련을 하지 못한 셈”이라며 "빙상연맹이 메달을 딸 선수들을 미리 정해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심한 차별 속에 훈련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발언으로 팀 분위기가 와해되고 점점 상호 간에 감정의 골이 생겼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이에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이승훈 선수는 특정 대학을 나온 선수만 특혜를 받는다는 것은 왜곡이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왕따 논란은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선영 선수와 박지우 선수가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나오는 모습이 찍히며 이같은 논란이 잘못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낮 외출 후 팔짱 끼고 들어가는 노선영·박지우
낮 외출 후 팔짱 끼고 들어가는 노선영·박지우

또한 백철기 감독과 노선영 선수의 진실공방도 지속되고 있다. 20일 기자회견에서 백철기 감독은 “노선영이 마지막 두 바퀴를 맨 마지막에 타는 것을 스스로 요청했다”고 말했으나, 노선영 선수는 마지막을 두 번째에서 타는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또한 마지막을 3번 주자로 처져 탔던 작전을 이전에 연습해본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노선영 선수는 과거 삿뽀르 아시안게임, 강릉선수권 출전 당시 마지막 바퀴, 3번 자리에서 정상적으로 레이스를 뛰었던 모습이 확인되며 진실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협동플레이가 미흡했던 원인에 대해서는 ‘의사소통’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격차가 벌어지면 팀원 간 의사전달이 이루어져야하지만, 노선영 선수가 요청을 안했는지 중간에 있던 박지우 선수가 못들었던지, 선수 간 격차는 ‘왕따’ 차원이 아닌 최근 쌓인 ‘감정의 골’과 경기 중 ‘의사소통의 문제’로 보는 것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반면, 김보름 선수가 감정 처리에 미숙한 모습이 비판의 소지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들로서는 분명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또다른 맥락들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온 국민과 언론 등이 들고 일어서서 일방적으로 매장시켜야할 정도의 사건인지 조금 더 차분히 지켜봐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과감하게 선악(善惡)을 단정짓고 마녀사냥에 동참하기보다는, 내부적인 문제가 어떻게 표면화된 것인지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팀추월 종목에서 보인 상대를 배려치 않는 듯한 모습이 노출되며 국민의 공분을 산 측면이 있지만, 국민 모두가 한 선수만을 일방적으로ㆍ국가적으로 매장시킬 듯 분노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과 조금 더 차분하게 사건 추이를 지켜봐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김보름 선수는 24일 8시 매스스타트 경기에 출전할 예정이다. 언론은 금메달 여부에 주목하기도 했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