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의 세상만사] 너희가 기업가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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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1.20 13:36:49
  • 최종수정 2019.11.2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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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기업가들의 기업가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강제로 규제하고,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과 소득세를 뜯어가고 임금을 통제하고, 수없는 규제를 양산하여 기업 활동을 포기케 하거나, 해외로 보따리 싸서 나가도록 추방 정책을 맹렬히 펼치고 있다. 이건 조선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 계급제도의 완벽한 부활이다.

19일 저녁,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가 공중파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되었습니다. 가수 배철수가 사회를 본 이날 대화에 대해 조선일보는 20일자 사설에서 “나라 현실 엄중한데 대통령은 한가한 TV쇼”, “대통령이 TV에 나와 현실과 동떨어진 한가한 얘기나 하니 국정에 신뢰가 생기겠는가”라고 질타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기업 죽이기, 경제파탄 쇼에 넋이 달아나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11월 19일이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32주기 추도식 사실도 모르고 지나쳤습니다. 이날 이병철 창업자의 손자인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은 ‘위기’를 화두로 삼았습니다. “지금 위기가 미래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이병철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자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오늘의 한국경제를 설계하고 기초를 놓고,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현장에서 수행했던 위대한 기업가였습니다.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의 창안자

이병철은 제일제당과 제일모직 성공으로 사업기반이 잡히자 1958년 한국경제재건연구소란 연구단체를 설립하여 국내의 정치 경제학계 중진 등 최고 인재들을 모았습니다. 이병철은 이들과 함께 한국경제가 나가야 할 길을 모색합니다. 그 결과 우리가 살 길은 하루빨리 농업에서 탈피하고 외자 도입을 통한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수입대체산업을 육성하고 외국 자본의 유입을 막아 대외의존도를 낮춰서 독자 경제를 구축한다는 후진국 발전 이념을 따르고 있었습니다(김영봉, ‘경제개발과 성장’, 『한국현대사』, 세종연구원, 2013, 227쪽). 세계의 석학이나 국제기구에 종사하는 발전전략 전문가들은 후발국이 경제 개발을 위해서는 수입대체산업 육성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적극 조언하고 있었죠.

1950~60년대 선진국 대학에서는 ‘후진국 경제발전론’이 인기 과목이었습니다. 후진국은 대부분 농업이 주된 산업입니다. 따라서 농업 분야에 우선 투자하여 여기서 얻어지는 잉여로 중소형 공업을 일으켜 공업화를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제발전 공식이라고 가르치는 학문이었습니다.

개발도상국 경제발전 이론으로 가장 유명세를 떨친 학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아서 루이스(William Arthur Lewis) 교수였습니다. 그는 인도를 예로 들어 “개발도상국은 공장을 짓는 산업화에 앞서 우선 농업 개발을 이루는 방법으로 경제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이스 교수는 산업화는 어디까지나 농업 발전이 이루어진 후에나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농촌 개발로 쌓여진 자본 축적을 바탕으로 제조업이 발전함으로써 산업화가 촉진된다는 이론이죠. 거시경제 개발 모델을 만든 네덜란드의 경제학자 얀 틴베르헨(Jan Tinbergen)의 균형성장론도 루이스 교수의 입장과 동일했습니다(황병태, 『박정희 패러다임』, 조선뉴스프레스, 2011).

두 사람 모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합니다. 이러한 세계 경제 석학(碩學)들 입장에서 볼 때 가난한 농업국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이 기술이나 경험, 자본, 고급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수출주도의 공업화를 먼저 추진하고, 여기서 얻어지는 경제력으로 농촌 근대화를 앞당기고자 했던 ‘선(先) 공업화, 후(後) 농업발전’ 전략은 도저히 성공 가능성이 없는 무모한 만용으로 보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세계 석학들의 방법론과는 180도 다른 길 선택

이병철의 외자 도입을 통한 수출주도형 공업화전략은 아서 루이스나 얀 틴베르헨 같은 석학이나 전문가들의 조언과는 180도 반대되는 행보였습니다. 그것은 국가의 운명을 건 한판의 승부였고, 그 도박과 같은 승부는 멋지게 성공했습니다.

수출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박정희 대통령. 이병철 회장은 5.16 직후 박정희 의장에게 외자를 도입하여 수출주도형 공업화전략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창하여 가난에 찌들었던 이 나라를 살려냈다.
수출산업에 기여한 공로로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박정희 대통령. 이병철 회장은 5.16 직후 박정희 의장에게 외자를 도입하여 수출주도형 공업화전략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창하여 가난에 찌들었던 이 나라를 살려냈다.

중화학공업 건설 아이디어의 제안자도 이병철을 중심으로 한 기업가들이었습니다. 1961년 5·16이 일어난 후 군사정부는 재계 서열 1위부터 12위까지 기업가 대표를 부정축재 및 탈세 혐의로 체포 수감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박정희 의장에게 기업가 석방을 요청했고, 박정희는 1961년 7월 13일,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가 13명을 석방합니다. 이들은 ‘경제재건 촉진회’라는 단체를 결성합니다. 오늘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전신인 셈이죠.

이들이 석방은 되었지만 부정축재한 환수금까지 면제해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국가재건최고희의가 선포한 부정축재특별처리법에 의하면 1961년 12월 31일까지 부정축재 환수금을 현금으로 완납해야 인신 구속을 면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벌과금은 27개 기업주에게 378억 800만 환이 부과되었는데, 전체 벌과금의 27%(103억 400만 환)가 삼성그룹 이병철에게 부과되었습니다.

군사정부가 기업가들에게 부과한 환수금 총액은 당시 국내 통화의 40~50%에 달하는 거액이었습니다. 기업이 무슨 돈을 쌓아놓은 게 있다고, 짧은 기간에 엄청난 환수금을 낼 수 있겠습니까. 기한 내에 환수금 납부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병철은 박정희 의장에게 “경제인들에게 또 다시 건의합니다. 벌금 대신 기간산업 공장을 건설한 다음 그 주식을 국가에 납부토록 해 달라”는 ‘투자명령’ 아이디어였습니다. 국가재건에 반드시 필요한 제철·시멘트·비료·정유공장 등을 기업가들이 건설하여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제안이었죠.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이 건의가 일리 있다고 판단, 1961년 10월 21일 부정축재처리법 제18조 2항을 신설합니다. 내용은 “부정축재 벌과금을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공장을 1964년 12월 31일 이내로 건설하여 주식으로 대납할 수 있다”였습니다.

숨통이 트인 기업가들은 1차 프로젝트로 시멘트, 비료, 전기, 제철, 화학, 섬유, 정유를 선정합니다. 정유 분야는 정부가 직접 추진계획을 세우기로 했고, 나머지는 기업별로 나눠서 맡았습니다. 당시 기업가들이 맡았던 분야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를 강력 추진한다는 뜻을 다지기 위해 경제재건 촉진회는 1961년 8월 16일 임시총회를 열어 단체 명칭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변경하고 초대 회장에 이병철, 부회장은 송대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국제경제 경험이 풍부한 남궁련 사장이 맡았습니다. 전경련이 출범한 것이죠.

외자 도입 통한 기간산업 건설 아이디어도 이병철 제안

기간산업 공장 건설에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공장을 지을 수 있는 돈, 즉 투자자금이 국내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1961년의 경우 국가예산의 52%를 미국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박정희, 『국가와 혁명과 나』 도서출판 지구촌, 1997, 42쪽). 국민들은 하루 밥 세 끼 먹기도 힘든 형편이었으니 국내저축을 통한 내자 조달은 불가능했습니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해외에서 차관, 즉 외자 도입이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박정희 의장에게 해외에서 차관을 도입하여 공장을 짓는 ‘외자도입을 통한 기간산업 건설’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민족의식이 강했던 박정희 의장은 이 안에 거부감이 강했으나, 기업가들이 수없이 찾아가 설득합니다. 박정희는 기업가들과 만남을 거듭하면서 경제에 대한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이병철과 기업가들이 제안한 ‘외자도입 촉진책’을 수용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김입삼, 『초근목피에서 선진국으로의 증언』, 한국경제신문사, 2003, 115~116쪽).

①개별 기업들의 교섭으로는 외자 도입이 어려우므로 미국, 유럽, 일본 등 세 지역에 외자유치단 파견을 허락할 것.

②민간 차관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줄 것.

③민간경제외교를 지원하기 위해 해외 공관에 유능한 상무관을 주재시킬 것

④외자에 따른 공장 건설 시 내자는 최대한 융자해주는 동시에 후취 담보제도를 마련할 것.

1961년 9월 13일, 기업가달은 5개년계획에 소요되는 외자도입 추진계획을 마련하여 최고회의에 건의합니다. 이 계획이 최고회의에서 승인되어 민간 외자도입 교섭단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병철이 대표를 맡은 미주 교섭단이 1961년 11월 2일, 이정림이 대표를 맡은 유럽 교섭단이 11월 8일 현지로 떠났습니다. 유럽 교섭단에는 정부 대표로 정래혁 상공부장관이 동행했고, 독일 도착 후에는 신응균 주 서독 대사가 합류합니다. 기업가들이 외자도입 제도를 만들어 군사정부를 이끈 것이죠.

미주 교섭단은 현지에서 한국전 당시 미8군 사령관을 역임한 밴 플리트 장군의 헌신적인 지원을 받아 미국의 대표 기업가들을 만났습니다. 그 결과 후에 걸프가 울산에 정유공장 투자를 결정하게 됩니다. 독일에서도 금성사, 한일시멘트, 쌍용시멘트 등이 2,500만 달러의 차관 도입에 성공했고, 정부가 파견한 교섭단도 독일 정부와 발전설비 등 3,750만 달러의 재정 차관 협정을 체결합니다.

수출진흥확대회의 탄생 비화

1963년 2월 1일 이병철을 비롯한 경제인협회 대표들과 박정희 의장을 비롯하여 최고위원, 정부 각료 등이 만나 경제개발 5개년계획 추진에 대한 격의 없는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날 중요한 아이디어가 다수 제기되자 박정희 의장은 “매월 1회 관민 합동회의를 갖자”고 결정합니다. 이것이 1965년 청와대 수출진흥확대회의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수출진흥확대회의는 기업가들과의 대화에서 많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자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정례화화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수출진흥확대회의는 기업가들과의 대화에서 많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얻자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정례화화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1963년 3월 7일, 수출산업촉진위원회가 발족하여 본격적으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만들어집니다. 이때부터 수출이 국가의 주요 정책으로 등장하게 되었죠. 기업가들은 시골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수출했고, 해산물과 과일을 해외에 내다 팔았습니다. 1963년에는 우리 기업이 생산한 철강재(함석), 합판, 면포 등 공산품 수출이 개시되었습니다. 기업가들이 줄기차게 외쳐온 외자 도입을 통한 수출주도형 공업화전략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죠.

1964년 11월 30일, 드디어 수출 1억 달러를 돌파합니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는 11월 30일을 수출의 날로 정합니다. 정부는 수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기업들에게 연간 수출 의무량을 부과합니다. 목표를 달성한 기업은 더 많은 혜택을 주고, 미달한 기업은 제재를 가했습니다. 수출업자들의 해외 시장 개척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무역진흥공사(KOTRA)를 설립하고 전 세계 주요 도시에 무역사무소를 설치합니다.

1965년부터 매월 정기적으로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 하에 수출진흥확대회의와 월간경제동향보고 회의가 열렸습니다. 박 대통령은 서거할 때까지 15년 동안 매월 두 차례 대규모 회의를 빠짐없이 주재하며 수출전선의 선두에 서서 뛰었습니다. 수출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종교 전도하듯 열성적으로 주장해 온 기업가들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합니다.

‘한강의 기적’의 진짜 주인공은 이병철

박정희와 관료가 주인공으로 알려진 ‘한강의 기적’은 근원을 추적해 보면 진짜 주인공은 이병철 같은 기업가입니다. 사례에서 보듯 한국의 진로를 결정한 외자도입형 공업화 전략, 보세가공무역, 중화학공업, 수출제일주의, 울산공업단지, 수출자유지역, 종합상사 제도 등도 이병철 같은 천재적 기업가들이 제안하여 정책으로 채택된 작품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학자들은 한국의 산업화는 최고지도자와 국가와 재벌 간의 발전연합(developmental coalition)의 결과물이라고 평합니다.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같은 지도자와 관료, 그리고 이병철 같은 기업가들이 의기투합하여 결성한 발전동맹의 결과물이다.
한강의 기적은 박정희 같은 지도자와 관료, 그리고 이병철 같은 기업가들이 의기투합하여 결성한 발전동맹의 결과물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기업가들의 기업가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총력전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노동시간을 강제로 규제하고,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과 소득세를 뜯어가고 임금을 통제하고, 수없는 규제를 양산하여 기업 활동을 포기케 하거나, 해외로 보따리 싸서 나가도록 추방 정책을 맹렬히 펼칩니다. 이건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선시대의 사농공상(士農工商) 계급제도의 완벽한 부활 아닙니까.

그러면서 한편에선 저질 관급 일자리 창출한다면서 무지막지한 세금을 퍼붓고 있습니다. 그 많은 세금은 기업가들의 피를 말리는 기업 활동과, 열심히 땀 흘려 노동한 국민들 호주머니를 터는 행위란 사실을 이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요?

경제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가히 정신착란의 화려한 완성입니다. 이러한 정책파탄이 경제 분야만 국한된다고 보십니까? 정치·경제·사회·문화…. 급기야 외교 안보 기반까지 무너뜨리고, 평화와 우리민족끼리, 통일을 외치면서 적 앞에서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도 대통령이란 사람은 TV에 출연하여 지지자들과 ‘국민과의 대화’ 운운하며 버라이어티 생쑈를 연출합니다. 혼미를 거듭하는 이 나라의 경제 상황을 목격하면서 이병철 회장같은 기업가가 몹시도 그리운 초겨울입니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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