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경쟁' 누락 유감
경쟁 가르치기 위해 '불필요한 경쟁 사라져야 한다' 주제로 토론 수업
학생들, '경쟁으로 도리어 공정한 세상이 열린다'에 합의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2018년 올해에도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사회 교과에는 '경쟁'이 실종됐다. 필자는 2009 개정교육과정의 적용을 받는 고2, 고3 사회 교과 중 <사회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경쟁'은 2007 교육과정에는 적시돼 있다 2009 개정교육과정에서부터 누락됐다. 굳이 삭제가 아닌 ‘누락’이란 표현을 쓰는 이유는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것에 대한 유감 탓이다.

 2007 교육과정에 따른 <사회문화> 교과서에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단원에서 ‘경쟁’이 다루어졌다. 그러나 2009 개정교육과정으로 개편되면서 ‘상징적 상호작용의 유형’으로서의 ‘경쟁’ 내용이 누락되었는데, 사회적 상호작용의 종류는 협동, 경쟁, 갈등의 세 가지가 있으며, 경쟁은 ‘동일한 목표를 상대방보다 먼저 달성하게 위해 각자 노력하는 상태’라고 정의되어 있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쟁이 갈등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그러한 경쟁의 적절한 사례로 스포츠 경기를 예로 들었으며, 규칙이 지켜지는 운동경기는 ‘적절한 경쟁적 상호작용을 하는 좋은 통로’의 사례가 된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대다수 대중들이 경쟁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약육강식, 강자의 대변장(場), 인간소외, 삭막함, 비인간화 등 인성을 강퍅하게 만들 뿐이라는 부정적 것들인데다가 이러한 경쟁이 마치 인성교육을 망치는 주범이기라도 한 듯 몰아간다. ‘경쟁 자체가 문제인가, 부당한 경쟁의 기준이 문제인가’, ‘과연 경쟁이 사라진 우리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등의 문제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은 없다. ‘경쟁과 대립의 결과가 불평등한 현상’이라고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경쟁이란 강자만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며 경쟁에서 이기는 승자는 언제나 ‘강자’일 뿐이라는 ‘왜곡’과 ‘오해’만 남겨 두었다. 경쟁에서 이긴 강자는 늘 약자를 지배하므로 약자는 늘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하는 ‘피해자’가 된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노력과 땀 흘림의 가치를 인정받을 중요한 기회인 경쟁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운(運)이 도리어 중요하고도 공정한 기준이 되어버렸다. 경쟁이란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끄는 도구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국가의 역할은 비대해지고 국가의 개입은 정당하게 설명된다.

경쟁이란 ‘zero-sum’이 되는 영합의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양합의 게임으로서, ‘positive-sum game’이며, 도덕적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쟁이란 타인을 강탈하지 않고 노예처럼 다루지 않겠다는 약속에 기초하며, 이것이 지켜지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 퇴출 될 수도 있다는 숨은 전제 위에 존재함을 먼저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경쟁이야말로 아름다우며 가장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은 이제 교과서의 어디에서도 다루어지 않는 것이다. ‘공정한 축구경기’같은 경쟁이 중요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하나라는 것을 배울 기회는 사라졌으며, 공정한 기준에 근거한 정당한 경쟁이야 말로 우리 사회를 진화로 이끌었고, 발전과 성장으로 이끈 견인차였음을 아이들은 배울 기회부터 차단당한 셈이다. 그렇다고 거기서 말 수는 없었다.

토론으로 아이들에게서 경쟁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 내기로 했다. “교과서 사회불평등 현상, 거기 150쪽 한 번 봅시다, 여러분. 어때요? 이렇게 온갖 불평등이나 유발하는 경쟁 따위는 없어지는 것이 나은 것 아냐? ‘불필요한 경쟁은 사라져야 한다.’ 이 주제로 토론을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야단이었다. 시험으로 줄 세우는 것도 불만, 살벌한 경쟁으로 좋은 등급도 받지 못하고 인정을 못 받는 것도 불만, 아이들의 음성이 최대로 증폭되는 순간이었다.

사진=조윤희 교사 제공
사진=조윤희 교사 제공

물론 토론왕으로 선발되면 상품이 기다린다고 예고하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싼’ 바나나 우유와 ‘안 비싼’ 우유 두통을 사서 나란히 교단 위에 올려 두고 토론왕이 되면 선택권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바나나 우유가 제 것이라고 서로 호언장담하며 토론에 들어갔다.

경쟁을 지지하는 쪽은 경쟁이 사라지면 더 좋은 것을 만들 유인이 사라지며, 좋은 제품이 더 이상 개발되지 않는다고 했다. 인류의 진보와 진화 자체가 경쟁의 산물임을, 자신들의 선택의 자유가 경쟁의 열매임을 힘주어 주장하였다. 획일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경쟁이라 하였다. 경쟁이 사라지면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이 올 것 같아도 인간의 게으름과 가난의 평준화만이 돌아올 뿐이라는 마무리 정리가 이어졌다. 

물론 경쟁을 반대하는 쪽은 입시를 앞둔 학생들의 입장에 맞춰 치열한 경쟁의 폐단이 터져나왔고, 그로 인한 소외와 심적 압박, 갖가지 사회 문제마저 경쟁의 역기능으로 제시되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경쟁의 폐단까지!

그러자 날카로운 질문이 파고 들었다. 복제인간이 아닌 이상 모든 인간이 똑 같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면서, 경쟁의 기준이 불공정 할 때의 문제를 경쟁 자체의 문제로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몇 차례의 공방이 이어졌지만 애초에 경쟁을 불편해 하던 아이들도 자신들이 경쟁을 원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경쟁의 기준이 공정하면 경쟁은 치열할수록 도리어 공정한 세상이 열린다는 사실에 합의했다. 

아이들의 동료평가 결과로 토론왕이 선발되었고, 그 아이는 미소를 지으며 바나나 우유를 움켜쥐었다. 승자의 선택이었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 자신의 능력에 의해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결코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은 깨달았다. 마무리를 위해 ‘시장’에 대한전문가의 의견이 담긴 신문 칼럼을 이용하여 NIE 학습을 덧붙였다.  

이렇게 교과서에서 ‘사라져 가는’ 경쟁에 대해 오해 없이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교사의 교수학습 목표는 완벽하게 ‘소환’되었다. 이렇게 오늘도 아이들은 한 계단을 올라서서 세상을 배우고 세상 보는 눈을 키워 나간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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