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칼럼] 교육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정부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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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1.14 11:04:21
  • 최종수정 2019.11.15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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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교육정책인가?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고 전국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던 일반고를 폐지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는 위헌으로 볼 수 있는 횡포이다.

우리 헌법 전문은 “...우리 대한민국은...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정치,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라고 되어 있다. 헌법 31조는 “1.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4.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라고 말한다. 또 제 23조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며 제 119조는 “1.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교육법은 다른 모든 하위 법이나 마찬가지로 이러한 헌법의 정신과 내용을 실천으로 옮기는 방편으로 만들어지는 세부규정이며 그러한 하위법의 개정 또한 헌법을 존중하며 그 내용을 보다 더 충실하게 구현한다는 전제 아래에서만 허용됨이 물론이다.

교육기회의 공정을 위해 학교의 서열화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된 이번 교육부의 “혁신”안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의 3개 조항을 “삭제”하는 지극히 간단한 방법으로 전격적으로 선포되었다. 학교의 서열화를 막기 위해 학교교육을 획일화시키는 것이 과연 헌법 전문에까지 명시되어 있는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라는 명제에 실제로 부합되는 결과를 보장하는가 하는데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매우 크다. 더구나 “각인”이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라는 헌법 전문의 약속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타고난 재능이나 취향, 그리고 삶에서 지향하는 목표가 각기 다른 학생들을 단지 거주지역이 같다는 이유 하나로 한 고등학교에 모아 놓고 획일화된 교육을 시킨다면 우수한 두뇌나 그 밖의 특수한 재능을 지닌 학생들은 그들 대로, 타고난 지능지수가 높지 않거나 집중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특별한 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은 그들 대로 모두 희생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는 박탈당하지 않을 수 없고 개개인이 각기 자기 나름대로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될 기회는 애당초 봉쇄된다. .

공립과 사립학교 병존의 오랜 전통

헌법에 명시된 대로 교육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특히 의무교육 조항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정부는 교육부를 두고 공교육 기관, 곧 공립학교들을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한다. 그리고 국가의 재정 형편이 나아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학비가 싼 그러한 공교육 기관들은 의무교육 연한을 넘어 고등학교와 대학교, 대학원 수준에 까지 연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기구 만으로는 각기 자기가 타고난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살고자 하는 국민 모두의 점 점 더 다양하고 수준이 높아가는 욕구를 개별적 수요에 맞게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것이 각종의 사립 교육기관들이고 사립학교의 학비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학교 경우보다 비쌀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이다.

사실 우리의 경우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 학교 교육이란 일본어를 국어로 하며 운영되는 일본식 국민교육밖에 없었고 그 나마 극 소수의 운 좋은 사람이나 누릴 수 있는 특전이었을 때부터도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사립하교들이 설립되었고 민족혼을 일깨우고 독립투쟁과 독립국가 건설에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 중앙-보성학원, 오산학교 등 유서 깊은 학교들의 흔적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우리가 독립국가 대한민국으로 새롭게 출발 한 후 대중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급속히 발달함에 따라서 경제적 이윤획득이 아니라 인간교육을 목표로 설립된 학교들도 기업경영적 측면을 무시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 극단적인 경우는 교육보다 영리추구가 목적인듯한 인상을 주는 “학교”들이 더러 눈에 띄는 부작용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 교육의 획기적인 양적 팽창과 질적 수준의 향상에서 사립학교들이 대단히 큰 공헌을 해 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공존하며 서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선의의 경쟁을 벌일 때 국민 전체가 가지고 인적 물적 자원의 최대치가 공교육의 영역으로 흡입 될 수 있고 국민 개개인의 교육 기회 선택권은 그 만큼 강화되는 것이다. 좋은 사립학교들이 많이 생기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립학교가 감당해야 하는 수적 부담은 그 만큼 덜어 줄 수 있게 되어 제한된 국가 예산으로 운영 해야 공립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이 그 만큼 촉진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공립과 사립학교들이 서로 자유롭게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서 공교육 제도 전체가 창의적으로 시대적 요구에 맞게 개선되는 효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그 대신 공교육에 대한 국가의 독점체계가 계속 강화됨으로써 교육행정은 대한민국의 국가적 살림의 여러 영역에서 가장 낙후된 지대로 남게 되었다. 사립학교들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강화된 데에는 우리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많은 사립학교들은 국가의 지원 없이는 운영이 어려웠다는 사실이 한 몫 했다. 그러나 그 것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교육에 대한 국민의 권리에는 자주와 자율, 그리고 전문성의 존중이 포함되는 것을 무시하고 교육제도를 정치적 계산에 따라 좌지우지 하고자 했던 역대 정권의 교육철학 부재와 도덕적 무책임, 그리고 교육부의 관료주의적 오만과 이기주의였다. 그것에 더 해 경제발전과 복지정책의 강화를 통해 실현해야 할 평등사회의 이상을 교육 평준화를 통해 달성해야 한다는 속단 아래 교육에서 필수인 경쟁의 원리를 약화시키고 적대시 한 국민 정서도 공교육을 황폐화 시키는데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박정희 정부 초기에 채택된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어린 학생들을 입시 부담에서 해방시키고 학교간 차등을 없앰으로서 교육기회를 보다 평등하게 배분 한다는 가상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공교육체계의 자연적이고 창의적인 발전을 가로 막는 큰 장애물이 되었다. 유서 깊은 사립학교들이 폐지 당하거나 공립학교에 버금가는 통제를 받게 되면서 부터 활기를 띈 것이 사교육 시장이었다. 사교육을 강제로 단속하려는 정부의 각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립학교에 대한 불신은 평준화 정책 채택 이후로 점점 더 커지고 사교육비는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촛불혁명으로 태어나 전 정권들의 시책을 거의 모두 전면으로 부정하고 나선 문재인 정권의 교육부가 고작 내놓은 대안이 그 나마 남아 있던 자립형 사립학교와 특목고들을 공립학교로 일괄 전환하여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아예 없애 버린다는 것이니 이런 역사적 아이로니가 없다. 우리의 공교육이 더욱 더 낙후되고 사교육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그것도 문재인 정부가 고집해온 많은 다른 정책의 경우에서 처럼 의도적 파괴행위로 보아야 할 일인가?

교육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원에 이르기 까지 각급의 교육 기관들은 설사 국가의 지원이 없이 설립되고 운영되는 사립의 경우라 하더라도 국민 교육이 그 목적사업인 이상 일정 정도 교육 당국의 지휘와 규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대한민국의 학교라는 이름으로 졸업장이나 인증서를 발급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목표로 하는 교육 내용의 최저한 선은 적어도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교육 환경의 적정성이나 교육기회의 공정한 보장 등 사회 전반의 관심사가 되지 않을 없는 문제들에 관해서는 정부당국의 관여가 필요한 경우가 흔히 발생하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는 토대 위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하며”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 및 대학의 자율성”을 지킨다는 헌법의 정신을 교육 당국이 무시하는 것은 월권이다. 교육부는 교육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미래 주인공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인격적 덕목과 공민적 자세, 생활인으로서의 지적 능력이 어떤 수준에 이르러야 하는가를 교육헌장과 시대의 요청에 부합되는 교육과정을 통해 명시하고 학습 단계별로 그러한 교육 목적이 제대로 달성되고 있는가를 점검하는 제도를 운영할 필요가 있고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그 밖에도 자기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 목표를 달성하지 위해 어떤 식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가는 사회적 자율과 자주의 원칙에 맡겨야지 그 것까지 정부가 규제 할 이유는 없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작용하게 된다는 면에서는 학교 같은 교육기관도 영리나 다른 어떤 목적을 가진 기관의 경우나 마찬가지다. 개별화된 질 좋은 교육에 대한 사회의 요구가 절실 한데 교육 당국이 공립학교 운영만을 통해 그런 교육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각종의 사립학교가 필요하게 되고 학원이나 개인 과외가 성행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나마 사립이나 특수 학교들은 특징이 각기 다르고 학비가 좀 더 비싸다 하더라도 교육 당국의 지휘 감독을 받는 공교육 영역에 포함되지만 입시학원이나 그 밖의 다른 사교육 방편들은 공교육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따라서 평준화 정책을 통해 겉으로는 학교간 차이가 줄어들고 이른바 “서열화”가 방지된다 하더라도 개개인 학습수요자들이 실질적으로 확보하게 되는 교육기회의 격차는 줄어들지 않고 결국 학부모의 능력 차이에 따라 더욱 벌어지게 되는 역현상이 나타난다. 다른 말로 하면 평준화 정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는 정 반대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과다한 통제 때문에 공교육이 점점 더 박제화되어 학력의 하향평준화 현상이 두드러지자 학부모들은 울며겨자먹기로 학원을 찾아 나서게 되고 학원이 단속 대상이 되면 안방에 과목별로 비싼 비밀사립학교를 차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과외”가 성행하거나 심지어는 좋은 임시학원이 몰려 있는 지역으로 집을 옮기거나 어린이와 어머니를 아예 외국으로 빼돌리는 현상이 이는 것을 보면서도 사실 막을 길은 막막해진다.

교육정책 실패의 근본 원인

세계에서도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공교육이 거죽만 남고 학부모들은 사교육 시장의 횡포에 시달리게 된 근본 이유가 무엇인가? 교육열이 강하고 경쟁이 치열해서가 결코 아니다. 사교육 시장이 범람하게 된 근본 이유는 교육에 투자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의 최대치가 공교육의 영역으로 흡입되어 학교에만 맞겨도 각자의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휘 될 있도록 교육 체계가 융통성 있게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역으로 학교교육이 하향평준화 되는 가운데서 공교육에만 의존 할 수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행학습”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진지가 오래다. 우리 교육정책에서는 형식적 “기회균등”만이 무조건 강조되었다. 국민모두가 개인별로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한다는 것은 우리의 헌법 전문에 박혀 국가와 국민간의 약속일 뿐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본적 욕구이고 권리임은 잊혀지고 있었다. (사교육 시장을 단속한다고 역대 정부들이 내놓은 대안이란 고작 “과외 금지”나” “학원 단속”이었고 문재인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특별한 학생들에게 그 나마 숨통을 터주는 통로였던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학교 마저 공립학교 체계로 일괄 흡수하는 폭거를 서슴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거주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얼마나 비싼 집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쓰며 사는가에 대해서는 규제를 할 수 없는 자유개방 사회이다. 그런데 유독 자녀교육에 만은 결코 자기의 능력과 인생철학에 맞는 고급스런 학교교육을 받기 위해 남 보다 많은 돈을 공교육을 통해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아예 차단하고 하향 평준화된 교육프로그램에 만족하라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통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사회적으로 생산적인 일인가? 차라리 능력 있는 사람들이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 최대한의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하게 하고 그들 덕분에 실력이 있는 학생들은 집안이 어려워도 학비가 비싼 고비용 사립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길을 터준다면 그 것이 결과적으로는 교육기회의 더 공정한 배분이 되고 우리의 공교육 전체가 내실화 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교육이 백년지계라는 말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교육당국이 스스로 공급할 능력이 없는, 수요자들의 다양한 필요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을 제공하는 사립학교들을 자발적으로 수립하여 공교육 발전에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길 마저 완전히 봉쇄한다면 그것은 교육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공교육의 영역에서 국민의 자발적이고 자주적이며 창의적인 적극적 참여가 배제 될 때, 그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 할 수 있을까.

교육에 대한 국민의 자율권 회복의 긴박함

경제 발전에서는 선진사회의 문턱에 다 달았던 우리가 정치민주화가 되면서 다시 상대적으로 뒷걸음을 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정치가 잘못되었고 그것은 결국 교육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그리고 교육이 잘못 된 것은 교육에 대한 국민의 권리, 특히 자주와 자율권을 국가가 농락한 탓에 우리 공교육에 투자되어야 할 인적, 물적 자원이 사교육이나 외국으로 빠져나가 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국가의 횡포를 겪으면서 우리 교육은 기업에 대한 규제가 심하면 심할수록 경제가 후퇴하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로 내용이 부실해 지고 박제화 된 것이다.

믿음직한 백년대계를 수립하기는 고사하고 나라발전에 장애가 되도록 피폐해진 공교육 체제에 다시 활기를 불어 넣기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국가의 과독점 체제의 희생물이 되었던 국민의 교육권을 다시 찾아 오는 방법 뿐인데 유은애 장관은 지금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것이 무지 때문인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지며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대학의 자율성”은 법으로 보장한디는 헌법정신에 대한 의도된 도발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국민의 교육권을 회복하는 투쟁을 지체 없이 바로 시작해야 한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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