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욱 칼럼] 우리시대 일그러진 XX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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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11.11 11:36:11
  • 최종수정 2019.11.12 09:3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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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대중,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원칙・기준・모순 개의치 않아
사회 일반적 기준, 보편적 원칙 상관없이 정치권서 프레임화돼 나와...'묻지마 조국수호' '원칙보다는 사람'
지난 10월 대규모 자유 항쟁 시위, 퇴행 참을 수 없다는 국민적 궐기...자유시민들의 절박감 표출
정치에만 整風운동 있는 것 아냐...정치권력 저항 넘어 우리시대 일그러진 XX들 몰아내보자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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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그저 일반적인 생활인의 블로그를 보게 됐다. 내용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상품구입 후기였다. 몇 백만 원이 넘는 고가의 카메라와 카메라 렌즈를 구입한 얘기인데, 아이의 예쁜 모습을 찍어주겠다는 내용이나 일명 ‘똑딱이’ 카메라에서 구현할 수 없는 여러 고품질의 사진을 찍는 취미생활을 가지겠다는 내용은 특이할 것 없는 소비동기이고 한두 푼짜리가 아닌 제품에 대해 소비를 할 때 생활인들이 결심을 하는 내용이라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일본산 카메라를 살 수 밖에 없는 얘기를 장황하게 쓰면서 자기합리화 혹은 그 블로그를 읽는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전 세계 카메라 시장은 일본산이 휩쓸고 있고 삼성이 몇 년 전에 카메라 사업을 철수하는 바람에 국산제품을 살 수가 없단다. 이 내용을 안 봤다면 들지 않을 의문을 나는 바로 갖게 됐다. 단지 카메라가 아니라 만일 전 세계를 일본이 휩쓰는 상황이라면 그럼 반일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자신이 선택한 카메라를 구입하게 된 이유가 과연 삼성 탓인지. 만일 삼성이 카메라 사업을 철수하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정말 삼성 카메라를 살까. 뭐 가정적 상황이니 그렇다하더라도 그 때가서 독점재벌 제품을 구입했다고 누가 비난하면 거기엔 중소기업 제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할 것인지?

삼성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얼마 전에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맡은 재판장(정준영 부장판사)이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훈장질을 했다는 언론보도를 보았다. 그런데 그 내용이 황당했다. 미국의 회사와 이스라엘 회사를 본받으라든가 당신 아버지는 당신 나이에 혁신 ‘선언’을 했는데 당신은 어떤 ‘선언’을 할 것인가 그리고 재판결과를 수용하라는 그야말로 지금 대한민국이 조선시대인가를 의심케 하는 발언들이 나왔다. 공무원이 사기업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행위를 했다는 이유를 들어 대통령까지 탄핵한 나라라서 조심스러웠는지 이재용 부회장에게 ‘선언’ 즉 말만 하면 된다고 훈수 둔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거기에서 멈춘 것도 아니었다.

판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사법부에 대해서 말해보자. 얼마 전 각국의 국민들 사법부 신뢰도 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법부가 OECD 꼴찌를 했고 그 초안에 대해서 OECD가 그대로 발표하지 못하도록 대법원이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단지 법원뿐만 아니라 검찰을 포함한 사법시스템에 대한 여론조사라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 그 이의제기의 변명이라고 하나, 얼마 뒤 김명수 대법원장은 대법원 예규까지 어기고 자신의 공관 공사에 예산을 전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쯤 되면 헌법재판관이 내부자거래를 해서 주식투자를 했다는 의혹은 뭐 이제 지나간 일이라고 해야 할까. 

위에서부터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례들을 들었지만, 전부 하나를 관통하는 맥락이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원칙과 기준, 자신들의 모순들을 전부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다. 힘을 가지고 있다면 혹은 위 카메라 예처럼 모순에 대해서 대중에게서 일정 면죄부만 받으면 그 모순조차도 스스로 당당함을 갖추게 된다(유니클로는 입어서는 안 되고 일제브랜드 자동차는 테러를 당하지만 카메라는 괜찮다, 그리고 대중은 어떠한 기준도 못 갖고 있다).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사회의 일반적 기준이 보편적 원칙과는 상관없이 정치권에서 프레임화 되어 나오는 것이며, 다수 국민이 그 프레임에 맞춰 정치투쟁 양상을 벌인다는 점이다. 이제는 일상화된 586 운동권 권력자들의 ‘내로남불’이 전국민화 되는 사회분위기라면 너무 과한 말일까.

‘묻지마, 조국수호’, ‘원칙보다는 사람을 따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회자되는 것을 보라. 그리고 그런 사회 파괴적인 주장에 대해서 대다수 언론은 그저 정치세력간의 게임인양 제대로 된 비판을 가하지도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10월 두 차례에 걸쳐 어용 언론조차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대규모 자유 항쟁 시위가 광화문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이런 퇴행을 참을 수 없다는 국민적 궐기였다고 나는 평가한다. 이제 침묵하고 있다가는 자유 시민들의 올바른 가치관과 원칙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절박감이 표출된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고자 한다. 

이제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 우리시대의 일그러진 XX들을 몰아내보자. 우리 마음속의 XX들도 마찬가지다. 정치에만 정풍(整風)운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 시민들도 이 사회를 향해 정풍을 불어보자. XX엔 마음껏 넣어보시라. 나는 선비를 추천한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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