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진영에서조차 '암울한 시대'로만 불렸던 유신 체제 총체적 관점에서 재평가 시도
이춘근 "당시 급변하던 국제안보적 상황이 10월 유신 체제 불러와...유신 체제는 극도로 효율 강조하는 정치 체제"
"유신 체제 통해 北과의 '체제 경쟁'에서 한국이 승리...1976년 이후 모든 부문에서 역전"
김세중 "박정희의 권력의지는 항상 강렬한 국가발전 의지와 결부됐다"
이강호 "'한강의 기적'과 '박정희의 정치'는 분리될 수 없다"
주익종 "유신은 분명 한국인들에게 고통스런 경험...하지만 유신 없었으면 제조업 강국 불가능"

이춘근 이춘근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의 기조연설. 뒤에는 왼쪽부터 김세중, 주익종, 이강호, 김광동(존칭 생략).

박정희 정부의 10월 유신 체제가 갖는 역사적 의의를 평가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우파 진영에서조차 '암울한 시대'로만 불렸던 유신 체제를 총체적 관점에서 재평가해보려는 시도다. 이날 이춘근 박사는 10월 유신 체제의 등장 배경을 국제정치사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이 체제가 거둔 외교안보적 성과를 설명했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과 주익종 박사(이승만학당 이사) 등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공고화 되면서 사회에 여러 어두운 면들을 남겼지만, 그만큼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을 위한 토대를 쌓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중화학공업 투자로 인해 한국 경제는 1970년대 후반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17일 오후 서울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관 박정희홀에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10월 유신과 대한민국 국가건설'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 말기 유신 체제에 대해 양면적으로 접근했다. 국제정치학자인 이춘근 박사(이춘근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는 기조연설에서 "박정희 시대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유신 시대라고 불리는 박정희 집권 후반부 때문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유신 시대는 전환기였고, 오로지 국내정치적 관점에서만 해석돼선 안 되는 기간"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박정희 정부가 집권 말기 유신 체제를 통해 거둔 외교안보적 성과가 분명했음을 열거했다. 그는 "10월 유신이라는 비상조치를 내리는 데 당시 급변하던 국제안보적 상황이 있었다"면서 베트남 전쟁 이후 닉슨 독트린과 미소 데탕트를 예로 들었다. 미국이 아시아 안보에서의 역할 축소를 공공연히 거론하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들었다. 1970년 미국 정부는 사전 조율도 없이 주한미군 1개 사단(2만명명)을 일방적 통고 형식으로 철수시켰다.

출처: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제공
출처: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제공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은 북한보다 군사비 지출이 적었다. 거의 모든 국력 지표에서도 북한에 밀렸다. 이 박사는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되던 1979년 당시 어느 지표를 보더라도 한국은 북한을 국력상 분명히 앞서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유신 체제는 극도로 효율을 강조하는 정치 체제였다"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평소 원하던 바대로 김일성과 싸우고 그를 앞서기 위해 대한민국을 총동원하고 지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소위 '체제 경쟁'에서 한국이 승리했으며, 1976년 이후 역전 현상이 확연히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외교안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한미동맹, 중국의 부상, 일본과의 관계 등 4가지 차원에서 가시화되고 있는 복합적 난제를 풀어나갈 역량이 도저히 없다는 주장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김세중 전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강한 권위주의적 지배체제와 중화학 공업화는 양 날개와 같다"며 오원철 당시 경제수석의 증언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김 전 교수는 "유신 체제가 애초부터 온전히 중화학 공업화 추진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한 권력의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 전 교수는 "박정희의 권력의지는 항상 강렬한 국가발전 의지와 결부됐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고 첨언했다.

이강호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은 '한강의 기적'과 '박정희의 정치'는 분리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상시적 비상체제를 유지하면서 북한으로부터의 적대적 도전에 맞서야 했던 주요 순간들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정부의 용공조작 사건이라며 회자되고 있는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 등을 다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화 운동으로 보기에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상당하는 것이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용공조작이라며 재심이 끊임없이 진행됐지만 1250건 중 10건만 무죄 인정됐다"면서 "무죄 인정된 것도 사건의 실체 자체에 대한 게 아니라 절차상 하자나 가혹행위 등이 이유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주익종 박사(이승만학당 이사)는 10월 유신 체제가 한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평가했다. 주 박사는 "비슷한 경제규모의 나라들 중에서 한국은 GDP상 제조업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면서 오늘날 고부가가치의 첨단 제조업종 대부분이 이 때 기틀이 놓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주 박사는 "당시를 보면 박정희 정부가 1960년대와 달리 1970년대 선거에서 고전했고, 미국과의 우호 관계도 흔들리는 등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면서 "10월 유신은 국민을 강압으로 끌고 가겠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대의제가 무너지고,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금지되는 강압적 통치를 통해 박정희 정부는 '김대중식 대중경제론'을 지지한 진영 전체를 탄압했다. "유신은 분명 그 시대 한국인들에게 고통스런 경험이었다"고 말한 주 박사는 "하지만 유신이 없었더라면 오늘과 같은 제조업 한국은 없다"고 말하며 근거를 제시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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