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샘의 교실이야기 38] 평등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면
[유니샘의 교실이야기 38] 평등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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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9.17 09:44:06
  • 최종수정 2019.09.17 13:33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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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평등 없이 결과의 평등은 없어
격차라는 용어에서부터 반감 느낄 수 있어
공정한 경쟁으로 인한 격차는 자연스러운 결과
조윤희 부산 금성교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교 교사

1학년 통합사회 자본주의 수업을 시작하는 단원이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이야기 하는 단원에서 ‘빈부격차’라는 단원에서 필자의 시선은 더 이상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빈부 격차.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의 통합을 저해한다고 되어 있었다. 비슷한 내용은 2학년 사회문화 교과의 ‘사회 불평등’ 단원에도 등장한다.

사회 불평등이 지속되는 것은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이야기 하라고 되어 있다. 과연 그러한가? 공정하게 경쟁하고 그 결과로 벌어진 격차를 무조건 나쁘다고 치부하고 억압과 착취와 약탈의 결과로 밀어버리는 것이 적절한가. 사회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상대적 박탈감이 만연되고, 경쟁이 심화되고, 이질감이 고착화되어 사회통합이 심해진다고 예시답안을 작성하고 있다.

● 자본주의가 오해받는 ‘격차’의 폐단(?)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빈부격차가 뭐지요?”

“잘 살고 못 살고 그 차이가 큰 거요!”

“그럼 빈부격차가 커지면 사회에 문제가 발생할까요?”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문제가 생긴다고 대답한다. ‘왜 생기느냐’고 물으니 준비된 대답이 나온다. ‘위화감이 생긴다’고 한다.

“위화감은 나쁜가요?”

“당연히 나쁘죠.”

“왜요?”

“사회를 통합시키지 못하니까요.”

“왜 통합되어야 하죠?”

대답이 없다. 

왜 통합이 되어야 하다니! 선생님은 왜 너무나 당연한 것을 묻는 거지? 하는 표정이었다. 왜 모든 사람의 소득이 같아져야하고, 같은 생각을 해야 하고, 왜 소득의 격차가 생기는 것이 위화감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지, 하나하나 질문해 나갔다. 교과서는 적힌 대로 가르치도록 했고, 학생들은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정해진 대로만 생각하도록 강요당해 왔다고 느껴졌다.

그림  <통합사회> 교과서의 ‘자본주의의 이해’ 단원 중.

소득의 격차라는 말 대신 빈부격차, 양극화란 용어를 사용해가며, 뭔가 차이가 나는 것은 불편하고, 억울하고, 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사회문화 교과서는 끊임없이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바람직한 태도에서 개방적 태도와 상대주의적 태도를 강조해 왔으면서 타인과 다른 사고는 용납하지 못하도록 세뇌시키고 절대적 기준을 강요하는 것 같다.

그림 2. 사회문화 교과서의 ‘사회 불평등의 이해’ 단원 중.
그림 2. 사회문화 교과서의 ‘사회 불평등의 이해’ 단원 중.

● 격차가 불편한 억지 평등

격차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너무도 자연스럽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번 사람과 그런 돈이 쌓여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단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무차별로 더 내야 한다든가 위화감을 조성한 죄인처럼 취급당해야 하는 것은 도리어 억울할 수도 있다.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한 A와 덜 공부한 B가 서로 다른 성적을 받은 것이 위화감을 조성하느냐고 물었다. 

“학생들 성적의 위화감을 없애기 위해, 부모로부터 좋은 두뇌를 물려받은 친구와 덜 명석한 두뇌를 물려받은 것이야말로 불공평하니 이런 불평등을 해소시키기 위해 두뇌가 좋지 않은 학생은 무조건 50점을 더 주고 시험을 치는 것은 어떨까요?”

“아! 안돼요! 선생님!”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부모님께 물려받는 지능 유전자나 외모도 불평등하게 주어지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불평등은 감수하면서도 경제적 불평등은 수용이 안 되고 평등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억지스럽지 않느냐고 물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뭔가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매여 있던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아주 불리하게 태어 난 사람이 아무런 배려 받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 않나요?”

“맞아요. 그러니 그런 경우엔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지요. 복지 정책 같은 것. 선별적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더욱 배려가 돌아가야 한단 말이지요.”

● 경쟁이 없다면 일어나는 일들 

그러나 여전히 격차를 불편해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교과서가 여전히 그런 불평등을 ‘양극화’라고, 뭔가 부당하다고 느끼게 하는 내용을 싣고 있었기 때문이다. 300만 명의 국민이 기근에 시달리는데도 초호화 생일 파티를 하는 ‘부자’대통령의 개념 없는 행동이 빈부격차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예시로 교과서에 실려 있다. 누가 봐도 저런 빈부격차는 옹호할 수도 없고, 빈부격차가 문제없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 여기게 되어 있다.

그림 3. 사회문화 교과서의 ‘사회 불평등의 이해’ 단원 중.
그림 3. 사회문화 교과서의 ‘사회 불평등의 이해’ 단원 중.

그러나 학생들에게 반드시 짚어 주어야 할 부분이 실은 숨겨져 있다고 생각됐다. 짐바브웨의 상황은 ‘특정세력의 정치권력이 독점’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나타난 극심한 부의 편중은 독점이 만들어낸 폐해로 지적할 수 있다. 정치권력도 경쟁에 의해 보다 나은 지도자로 교체될 수 있다면 저런 폐단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부분이다. 정치권력의 독점이든 정부의 독점이든 기업의 독점이든, 독점은 사회적 희소가치를 편중되게 배분할 것이며 결국 불공정한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악의 가뭄으로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는 국민을 위해 어떤 돌파구를 만들어 줄 수 있을지, 국민을 위해 어떤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여러 명의 정치가가 경쟁할 수 있다면 그 경쟁에 의해 선택된 지도자라면 저런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업 역시 경쟁을 통해 소득격차가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그 결과를 인정하되 자신이 노력한 만큼 결과를 누리는 것이 공평함을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극심한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사회의 안전망이 필요하지만, 복지라는 이름으로 안전망의 대상이 모든 시민에게 확대될 필요도 없고, 격차가 벌어지는 모든 경우가 다 격차해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것은 잘못임을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 진짜 평등은 기회의 평등

경제적 불평등을 뒤집어엎고 다시 줄 세우기를 할 수 있는 비법이 있긴 하다. 도리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평등하게 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므로 치열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달릴 장을 마련해 주면 되는 것이다. 그 장에선 자신의 능력껏 치열하게 달려 이긴 사람이 1등이 되고, 그 1등에게 찬사와 상이 주어질 수 있다. 기회의 평등이 능력에 따른 평등을 향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림 4. 밀튼프리드만의 선택할 자유

모든 사람은 누구나 결코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갖는다. 

칼 마르크스는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능력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를 앞세워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몫’을 주는 것이 평등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몫을 부각시킨 그의 주장은 ‘공평’이라는 막연한 목표만 있을 뿐이고 이념적 표어에 불과하다. 그가 강조한 것은 결국 ‘결과의 평등’인데, 결과의 평등은 결국 기회의 평등과 충돌하게 되어 평등을 자유보다도 앞세우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결과의 평등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결국 평등도 자유도 달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밀튼 프리드만의 이야기는 시사점이 있다.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힘을 사용하면 자유가 파괴될 것이며 좋은 목적을 위에서 끌어들인 것일지라도 힘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평등을 말로만 앞세운 ‘가짜 평등’인 셈이다. 

한편 자유를 제일로 하는 사회는 결국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물로 보다 큰 자유와 보다 큰 평등, 둘 다를 얻게 된다고 밀튼 프리드만은 그의 책 <선택할 자유>의 ‘빗나간 평등’에서 말하고 있다. 기회의 평등을 잃지 않아야 결국은 마르크스가 그렇게나 강조한 공평의 길이 열리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하며 그렇게 ‘진짜 평등’ 수업을 마쳤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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