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이타적 사회주의와 이기적 자본주의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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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8.23 09:57:19
  • 최종수정 2019.08.2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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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사회주의 핵심은 사유재산 몰수하고 생산수단 공유한다는 것
끔찍했던 20세기 역사는 공산사회주의가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 보여줘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난해진 게 아니다', '누군가 배웠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무식해진 게 아니다'
한국사회, 아직도 좌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횡행...죽은 이념 붙잡고 이념전쟁에 불붙여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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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이상사회”라고 번역하는 『유토피아』는 영국의 작가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1516년에 출간한 저서다. 당시 중세의 암흑기를 지나 인간성의 해방과 재발견의 꽃을 피웠던 르네상스기에 즈음해서 자유로운 인간본성을 구현할 수 있는 이상사회를 그린 책이다.

토마스 모어는 인간은 착한 심성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가 그린 이상사회의 주요 내용은 공유재산제도, 하루 6시간 노동, 학습중시, 공동식사, 황금을 돌 같이 여기는 검소한 생활, 안락사 허용 등이 주요 내용이다. 이 가운데 공유재산제도가 핵심이다. 이 때문에 토마스 모어의 사상은 18세기~19세기 초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형성된 빈부격차 등 초기 산업사회의 경제사회를 배경으로 한 ‘공상적 사회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프랑스의 급진적 사상가 모렐리(Morelley) 바뵈프(F. N. Babeuf) 루소(Jean-Jacques Rousseau) 등은 인간의 불평등이 사유재산제도에 기인한다고 보고 사유재산의 폐지를 주장했다. 그 후 생시몽(Henri de Saint-Simon)은 착취 없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계급혁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무정부주의자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은 독립적인 코뮌(commune, 도시자치단체)들의 자유로운 연방을 추구하였다. 사회주의자 블랑키(Louis Auguste Blanqui)는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촉진할 독재체제를 수립하는 폭력혁명을 옹호했다.

들불처럼 확산된 공산주의

이러한 사상들과 영국의 경제학자 리카도(David Ricardo)의 노동가치설을 바탕으로 마침내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마르크스(Karl Marx) 스스로 명명한 공산주의가 마르크스의 『자본론』 출간과 함께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레닌에 의해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이 일어나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러시아소비에트공화국’이 수립되고 중국에서는 마오이즘이 등장하여 1949년 공산정권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 후 공산주의는 동유럽 쿠바 북한 등 전세계적으로 들불처럼 확산되었다.

공산주의 국가의 핵심은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것이다. 혁명 후 가장 먼저 사유재산을 몰수하고 집단노동을 하고 모두 똑같이 배급으로 생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토마스 모어,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했던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렸던 이상향과는 달리 개인의 자유는 없어진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모든 사유재산을 몰수했다. 심지어 사유가옥은 철거하고 소련의 소비에트와 유사한 집단농장인 인민공사를 2만 4천개 설치해 평균 8천 명, 많은 곳에서는 최대 2만 여명을 수용해 집단으로 일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공산주의 이상사회로 가는 길을 단축한다는 명분으로 1958년부터 1962년까지 ‘대약진운동’을 실시했다. 그러나 보고되는 생산량은 증가하는데도 실제 생산량은 줄어들어 기근이 확산되어 3~4천만 명이 대약진운동 기간 중에 아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참담한 결과에 몇 년 쉬었다 다시 시작한 것이 1966~76년 중 실시되었던 문화대혁명이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가는 하방을 당하고, 역시 수 많은 희생자를 낸 후 마침내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면서 광기의 공산주의 혁명은 중단되었다. 그 후 덩샤오핑이 등장해 개혁개방으로 오늘날 주요 2개국(G2)의 중국을 건설했다. 1989년에 동독을 비릇한 동유럽 공산국가들도 서유럽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소득에 신음하다 붕괴되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국가로 편입되고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1990년에 붕괴되었다.

이들의 중요한 특징은 인간의 본성과는 배치되는 이상향을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그리고, 그 상상의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해 개인들의 사유재산을 몰수한다. 집단으로 수용하고 억압하면서 계획한 일을 추진하기 위해 구호와 선동으로 몰고 간다는 점이다. 대약진운동처럼 수많은 희생자가 나와도 유토피아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으로 왜곡 선전한다.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종국적으로 파국에 이를 때 까지 몰고 간다.

개인의 자유 말살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성과는 배치되는 일을 추진하면서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당초 구상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으로 포장하기조차 한다. 좌파들이 유독 선전선동에 능하고 거짓이 많은 이유가 이런데 있지 않은가 싶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본인들의 구상 자체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는 완전히 말살된다. 

이것이 토마스 모어가 그렸던 ‘자유로운 인간본성을 구현할 수 있는 이상사회’인가. 유토피아란 그리스말로 본래 ‘이 세상에 없는 것’이라는 의미라는 점이 아이러니컬하다.

이에 비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추구하는 길은 영국 보수당 강령에 잘 나타나 있다. 보수당 16개 강령 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첫째가 ‘자신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나는 믿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진솔한 인간의 본성을 얘기하고 있는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나는 물론 가족의 건강과 부, 행복이 증진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다는 의미다. 이런 것이 보장될 때 인간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 것임을 진솔하게 인정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가 국부의 원천을 바로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한 점과 통하는 주장이다.

이것을 외면하고 재산을 몰수해 공유하고 집단으로 일하도록 하면서, 심지어 전통적인 가족까지도 해체했기 때문에 구소련, 동유럽,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 베트남 등 모든 지구상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엄청난 희생자만 내고 종국에는 망한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공산주의 계획경제처럼 머리 속에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따른 제도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 추구

‘영국인들은 그들이 자유로울 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믿는다’. ‘영국은 어떤 경우에도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개인의 자유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간주한다. ‘모든 국민은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기회 균등이야말로 중요한 가치임을 나는 믿는다’ 기회의 균등을 주장하고 있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다.

‘책임 없는 자유는 있을 수 없으며 스스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노블레스 오블리쥬,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커야 하며 정부는 작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국민이 인간 본연의 야망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라고 나는 믿는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 큰 시장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면서 ‘누군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누군가 지식이 있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이 무식해 졌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부와 교육이 제로섬이 아니고 포지티브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고 머릿속에서 그린 이상향을 혁명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는 말살되고 참담한 희생자만 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반면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야 할 많은 흠결에도 불구하고 번영하면서 인간의 물질적 생활기반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그를 바탕으로 개인의 자유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키고 있다.

달리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이 바로 예다. 그런데 아직 시대착오적인 좌파 사회주의식 이데올로기가 횡행하고, 그를 바탕으로 한 수 많은 정책들이 인기영합적으로 추진되면서 다른 나라는 이미 20여 년 전에 끝난 이념전쟁이 불붙고 있는 이 대한민국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보다 더 잘 살기를 바라는 경제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 태산이 아닐 수 없다.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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