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 칼럼] 원숭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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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9.07.30 09:13:44
  • 최종수정 2019.07.30 18:29
  •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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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의 짧은 소설 <원숭이 발>
민주화와 자력갱생, 두 가지 소원을 완성하는 동안 사라져버린 대한민국
세 가지 소원 중 우리에게 남은 단 한 번의 기회
잘못을 바로잡을 주문은 무엇일까. 당신이라면 어떤 소원을 외칠 것인가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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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 씨는 방바닥에 엎드려 정신없이 원숭이 발을 찾고 있었다. 문밖에 찾아온 것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그것을 찾아야 했다. 연속으로 총을 쏘는 것처럼 문 두드리는 소리가 온 집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빗장이 끼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풀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순간 원숭이 발을 발견한 화이트 씨는 미친 듯이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소설 <원숭이 발> 중에서.

화이트 씨 집에 모리스가 찾아온다. 인도에서 오랫동안 살다 온 그는 이런 저런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주머니에서 말린 원숭이 발을 꺼내 보여준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의 힘을 가졌지만 그 때문에 큰 곤혹을 치렀다며 이제라도 불태워 버리겠다고 말한다. 화들짝 놀란 화이트 씨는 자신에게 달라고 한다.

운명을 바꾸려는 사람은 불행해질 뿐이라며 모리스가 반대하지만 화이트 씨는 작은 원숭이 발을 손에 쥐고야 만다. 소원을 잘 골라 말해야 한다며 단단히 주의를 주고 모리스가 떠난다. 그런데 막상 화이트 씨는 무엇을 빌어야 할지 난감해진다. 아내와 아들도 허무맹랑한 일이라며 시큰둥해한다. 화이트 씨는 시험 삼아 200파운드만 달라고 장난처럼 말한다.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런 마법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소시지를 코에 붙였다 뗐다 하며 세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부부의 우화는 아쉬운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밑질 건 없었다. 로또 1등에 맞은 걸 알고 뛸 듯이 기뻤으나 시효가 지나버렸다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쉽진 않겠지만 미치지 않도록 정신 줄만 단단히 붙잡을 수 있다면 현재의 삶에서 마이너스는 없다. 그러나 영국 작가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의 짧은 소설 <원숭이 발>이 갖는 마법은 훨씬 더 두려운 것이다.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모르겠다. 필요한 건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욕심이 나서 원숭이 발을 손에 넣긴 했지만 화이트 씨는 딱히 이루고 싶은 소원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큰 부자도 아니었고 외국생활을 동경했으며 외딴 집에 살고 있는 데 대한 불만도 있었지만 가족 모두 건강했고 화목했다. 더 바랄 게 없는 만족한 일상이란 충분하진 않더라도 이미 갖고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소박한 삶이라는 걸 그때 화이트 씨는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이다. 만약 그 순간 멈추었다면, 호기심과 함께 원숭이 발을 불속에 던져 넣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음 날 아침, 돈다발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도 아버지 혼자 쓰진 말라고 농담하며 아들은 출근하고, 두 부부는 초인종이 울릴 때마다 혹시나 하다가 집배원을 맞이하는 식으로 깔깔대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저녁 무렵, 한 신사가 찾아온다. 아들이 기계 작업 중 사고로 죽었다면서 회사에서 보내온 위로금을 전한다. 정확히 200파운드.

말은 함부로 입 밖으로 내놓는 거 아니라 한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내가 불노소득으로 주머니를 불리면 다른 이의 주머니는 꼭 그만큼 빈다. 갑작스러운 행운은 나 아닌 누군가의 예기치 못한 불행이 된다는 것이다. 남이 아닐 수도 있다. 가족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꺼내온 행운일 수도 있고, 미래의 내 주머니에서 끌어온 복일 수도 있다. 너무 크나큰 행운이 결과적으로 독이 되는 이유이다.

경악과 슬픔으로 열흘을 보낸 아내는 잠에서 깨어난 듯 두 번째 소원을 빌라며 남편을 독촉한다. 죽은 아들을 살려내라는 것이다. 원래대로 모든 것을 되돌리고 싶은 건 화이트 씨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느냐고, 원숭이 발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우연이었을 거라며 반대하지만 아내의 고집을 꺾지는 못한다. 결국 화이트 씨는 주문을 외운다. 

“내 아들이 살아나기를 원한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융성시킬 기회들이 있었다. 현명했던 소수의 지도자들은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목표를 위해 불철주야 세계무대를 뛰어다녔고 그를 믿은 국민들은 경제성장의 길을 함께 닦고 풍요를 향해 힘차게 달려왔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시무시한 원숭이 발을 손에 쥔 누군가가 나타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며 주문을 외웠다. 이후 그들이 말하는 독재정권이 타도되었고 적폐라는 죄명으로 나라를 위해 일했던 인재들이 줄줄이 수감되었다. 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과 손잡고 평화가 왔다며 만세를 불렀다. 저들이 주장하는 공식 이름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니 민주화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생소원이 보리개떡'이라는 말이 있다. 일부러 원하지 않았어도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고 국민의 수준이 올라가면 서구유럽이 수백 년에 걸쳐 얻은 자유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무르익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을 섣불리, 그것도 너무 크게 욕심 낸 결과는 혹독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대한민국은 더 이상 없다. 200파운드의 바람이 이루어진 대신 억만 금을 줘도 되찾을 수 없는 아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것처럼, 민주화라는 덩굴이 이 땅을 온통 뒤덮고 대한민국을 집어삼켰다.

민주화는 마법 같은 것이다. 사적인 목적으로 여행을 가다 사고로 죽어도,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 부러진 나뭇가지에 맞아 다쳐도, 범칙금에 불복, 경찰에게 달려들었다가 부상을 당해도 국가가 모두 책임지고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진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개인의 행복을 무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당연해졌다. 건강한 심신을 가진 국민이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고 싶어도 법은 주 52시간 이상 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결과 누구도 땀 흘려 일하려 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신 쇄국정책을 고집하며 원숭이 발을 손에 쥐고 두 번째 주문을 외치고 있다. "자력갱생의 한반도를 원한다."

대한민국을 평양의 발아래 상납하는 것은 철저히 계획된 상황인 듯하다. 그 일환의 하나가 맹렬한 반일감정의 확산이다. 권력을 유지하려면 맞서 싸워할 적이 있어야 하는데 정치 무대에서 여야는 이미 한 몸뚱이다. 그들이 말하는 적폐세력은 모두 다 제거했고 자유 대한민국의 주적이었던 공산전체주의 북한과는 한 핏줄 한 형제라며 끌어안고 평화를 선포했다. 북한 대신 일본을 공공의 적으로 설정하고 그 계획을 실천해온 것은 이미 오래 되었다. 경제 몰락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국민의 불만을 해소시킬 새로운 주적을 눈앞에 내세울 타이밍이 되었을 뿐이다. 여기에 더해 아무런 도움을 줄 리 없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미국에게 한일 갈등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했다.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반일감정과 함께 빈미정서도 자동으로 완성될 것이다. 겨우 숨만 쉬고 있던 대한민국의 운명은 마침내 좁고 어두운 민족이라는 함정에 빠져 세계무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화이트 씨가 아들이 살아 돌아오길 소원한 그 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쾅쾅쾅, 부서져라,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집안을 뒤흔든다. 아내는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며 뛰어나간다. 사고 당시 너무 많이 상해서 아들의 시신인지 확인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게다가 죽은 지 열흘이나 지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아들이 집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던 화이트 씨는 다급하게 원숭이 발을 찾아 손에 쥔다. 그리고 마지막 소원을 간절하게 외친다. 집을 뒤흔들던 소음은 이내 사라지고, 문을 연 아내는 거짓말처럼 텅 빈 어둠 한가운데 서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다.

반일을 부추기고 불매운동을 하며 정신 승리하는 모습은 고작 소시지나 잔뜩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가, 마누라 코에나 붙어버리라고 했다가, 다시 떼어달라고 마지막 소원을 빌어야 했던 어리석은 부부 못지않다. 그러나 이 사태가 더 두려운 건, 세월호 사고로 죽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했던 권력자들이 이미 해결하고 봉인한 100년 전 일을 또다시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통한 일이라 해도 산 자는 죽은 자와 함께 살아갈 수 없다. 과거에 붙잡히면 현재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화이트 씨의 집 문을 두드렸던 아들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문 앞에도 조용히 잠들어야 했을 수많은 과거의 망령들이 부셔져라, 문을 두드리고 있다. 탕탕, 쾅쾅쾅, 꽝꽝꽝꽝꽝!

그런데 모리스는 왜 오랜만에 찾아와 원숭이 발을 보여주며 마법에 대해 이야기를 한 것일까. 그는 정말 화이트 씨가 원숭이 발을 욕심낼 줄 몰랐을까. 자신도 그 때문에 화를 당했다면서 화이트 씨 집안에 불행이 닥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화이트 씨 집안에 원한이 있었다 해도, 불행의 책임을 모리스에게 돌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 모리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경고를 무시한 채 행운을 바라고 선택한 건, 그래서 불운을 초대한 건 화이트 씨 자신이었다.

이대로 인민민주주의와 자력갱생의 우물 속에 밀어 넣어진다면 우리는 죽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화이트 씨 집안의 불행이 모리스만의 책임이 아닌 것처럼, 우리에게 닥친 이 엄청난 위기와 앞으로 감당해야 할 고통의 파도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다행히 세 번의 기회 중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았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소원을 되돌릴 마법의 주문을 우리가 시급히 찾아야 한다.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현재와 미래를 되찾을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당신이라면 무엇을 소원할 것인가.

깨어나라, 개인이여! 일어나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여!

TMTU. Trust Me. Trust You.

*‘TMTU. Trust Me. Trust Yo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전개하며 ‘개인이여,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체리 레몬 칵테일>, 산문집 <대한민국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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